종업원 된 사장님…3번 폐업 뒤 ‘육수통 전쟁’ 하루 14시간
하루 40만원 매출 올려도 재료비·월세 빼면 빈손
김현우(가명)ㅣ식당 노동자
매일 아침 8시 집을 나선다. 마트에 들러 하루 동안 쓸 마늘 1.5㎏ 한망과 파 한단을 산다.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식당에 도착해 조금은 비장한 마음으로 문을 연다.
주방과 홀이 맞붙은 식당은 10평 남짓. 우선 덕트 환풍기를 튼다. 웨~엥 하는 소음과 함께 가게 안에 차 있던 냄새가 빠져나간다. 새벽에 배달된 채소 상자들을 냉장고에 넣고 육수통을 올려둔 화구에 불을 붙인다. 대형 가스버너 화구 여섯개 가운데 육수를 끓이는 버너와 조리용 버너는 가게 문을 닫을 때까지 상시 가동된다. 열기에 주방은 후끈 달아오른다.
국수를 뽑기 위해 20㎏ 밀가루를 반죽기에 쏟아붓고, 반죽이 돌아가는 동안 파를 다듬어 채를 썰고, 10㎏짜리 김치 상자를 뜯어 김치를 먹기 좋게 썰어 김치통에 나눠 담는다. 반죽기가 다 돌아가면 국수를 뽑는다. 오전에 한번, 오후 브레이크 타임에 한번 국수를 뽑을 때마다 1시간이 소요된다. 육수가 끓는 동안 테이블 닦고 수저와 물컵을 정리하고 가게 바닥을 쓸고 닦는다. 100m 달리기를 하듯이 재빨리 움직여야 가게 문을 여는 11시까지 준비를 마칠 수 있다. 믹스커피를 마실 10분가량 짬이 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즈음 사장님이 들러 전날 매출 현황과 새로 주문할 식재료 등을 의논한다. 가끔 아르바이트가 올 때도 있지만 주로 혼자 조리와 접객을 감당한다. 점심이 가까워지며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버너 앞에서 음식을 조리하며 쉼 없이 밀려드는 손님들을 맞이하다 보면 정신이 없다. 홀에서는 에어컨 두대가 맹렬하게 냉기를 뿜지만 버너 앞까지 와닿지는 않는다. 윗옷에는 어느새 소금꽃이 한가득이다. 한창 바쁠 때 식당 일은 ‘참호전’을 하는 것 같다던 전임자의 말이 떠오른다.
이렇게 하루 14시간씩 주말 포함해 주 6일 일하고 받는 월급은 실수령액 기준 250만원가량. 매주 수요일은 식당 문을 닫고 쉰다. 고만고만한 규모 동네 식당 노동자들 급여는 대개 200만원을 갓 넘는 수준이다. 최저시급이나 주 52시간 근로를 떠올려보지만 현실과 괴리가 크다. 장사는 잘되는 편이지만 사장님은 ‘최저시급 때문에 자영업자들 다 죽게 생겼다’고 푸념한다.
나는 군대에서 취사병으로 일하며 식당 일에 눈뜨기 시작했다. 조리에 관심도 있었고 남들이 못 가진 기능을 익혔다고 생각해, 2010년 무렵 제대 뒤 대학에 복학하는 대신 식당을 창업했다. 고향인 지방도시에서 2천만원 남짓 보증금을 마련하고 직접 인테리어를 하다시피 해 일을 시작했는데, 세번 연달아 망했다. 하루 매출 30만~40만원을 올려도 재료비와 월세 등 경비를 빼면 남는 게 별로 없었다. 경비를 줄이려고 종업원을 안 쓰면 주문을 감당하지 못해 매상이 줄었다. 비용과 매출 사이에서 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다.
가장 최근에는 2019년, 돼지뼈 해장국을 주메뉴로 국밥집을 열었다. 처음에는 나쁘지 않았다. 주문이 밀리면 버너 네개를 한꺼번에 가동할 정도였다. 혼자 운영하는 가게였고 월 매출이 1천만원 수준으로 조금만 더 고생하면 빚도 갚고 돈도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2020년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매출이 뚝 끊겼고, 개점휴업 상태로 다른 식당 주문 배달 아르바이트로 가게 월세를 벌어야 했다. 매일 밤 소주 두병씩은 마셔야 겨우 잠들 수 있었고, 결국 가게를 접었다.
지금 식당에서는 1년 전쯤부터 일하기 시작했다. 비용과 매출 고민은 덜한 대신, 인내의 한계선 근처를 오가는 노동강도를 견뎌야 한다. 사정을 빤히 알기 때문에 차마 월급과 휴식시간을 더 달라고 말하지 못한다. 내가 가게 운영을 전담하는 정도가 되자 사장님은 앞으로 3년 뒤 자신은 은퇴하고 미련 없이 가게 운영권을 넘기겠다고 했다. 물론 무슨 계약서를 쓴 것은 아니지만, 고용관계가 애매해졌다.
아르바이트 구직사이트에는 늘 식당 일자리가 제일 많이 올라온다. 일은 힘든데 처우가 박하니 이직도 빈번하다. 이러다 보니 대개 부부 등 가족끼리 식당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고, 점심시간 등 필요한 때만 잠시 파트타이머를 고용한다. 자영업자의 수익성, 식당 서비스의 질, 식당 노동자의 처우…. 이들은 이렇게 서로 맞물려 있다. 길을 걷다 만나는 수많은 식당 주방 안에서는 버너의 화염을 견디며 정신없이 채소를 다듬고 면을 삶고 설거지를 하고 ‘어서 옵쇼’를 외쳐대는 누군가가 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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