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는 보수정부가 아니다

한겨레 2023. 8. 13.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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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관련 제18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소셜코리아 운영위원장

세간에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그래도’ 경제는 보수가 잘한다고들 한다. 그런데 지금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을 보면 ‘경제는 보수가 잘한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닌 것 같다. 윤석열 정부에 제대로 된 경제정책이 있나 싶을 정도다. 오죽 답답하면 사회정책을 전공한 필자가 이런 글을 쓰겠나.

국내외 기관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4%로 낮춰 잡았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주요 선진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성장을 시작한 1960년대 이래 경제 위기가 발생한 경우를 제외하면 성장률 추정치가 1%대를 기록한 적은 없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코로나 위기 이전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 추정치가 2.5~2.6%였고, 코로나 위기 시기(2020~2021)에도 2% 수준이었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 1.4%는 정부가 경제 운영만 잘하면 달성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치다.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낮은 성장률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는 데 있다.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빈곤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었던 기제는 ‘공적 복지’가 아니라 ‘성장이 만든 일자리’였기 때문이다. ‘경제는 보수가 잘해’라는 신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도 권위주의 정권이 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 절대 빈곤을 낮추고 불평등을 완화했기 때문이다.87년 ‘민주화’ 뒤 들어선 두 보수정부 10년도 성장을 통해 민생 문제에 대응했다. 경제는 성장하는데 그 성과를 소수 기업과 부자가 독점했다면, ‘경제는 보수가 잘해’라는 신화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공적 복지가 취약계층은 물론이고 중산층의 안정적 삶을 보장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 성장률마저 낮아진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재앙이다. 한국 사회는 중산층조차 시장에서 장시간 일하지 않으면, 최소한의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삶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가 어려워지면 정부가 재정을 풀어 경기를 방어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정부 소비가 감소하면서 성장률을 0.4% 포인트나 끌어내렸다고 한다. 코로나19 위기가 팬데믹에서 풍토병화를 뜻하는 엔데믹으로 전환된 것을 고려해야겠지만, 경기 전망이 점점 더 나빠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제 역할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정부가 할 일을 제대로 했다면 경제 상황이 지금보다는 나아졌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어쩌면 정부가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할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올 상반기에만 세수 감소가 40조원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무분별한 감세정책이 세수 감소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세수가 이렇게 감소하니 위기 상황에서도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국채를 발행해 정부 지출을 늘리기도 어렵다. 윤석열 정부 스스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며 정부 부채를 줄여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겠다고 호언장담했기 때문이다. 경제와 민생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실효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하지만 정부가 ‘감세’와 ‘건전재정’이라는 모순된 정책을 고집하는 한 답이 없는 상황이다. 민생을 지원할 정부의 곳간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희망을 찾는다면, 윤석열 정부가 대부분의 주류 경제학자가 ‘멍청한 짓’이라고 비판했던 가격통제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낮추려고 했다는 점이다. ‘자유 시장’을 신봉하는 정부가 기업을 압박해, 라면값을 낮춘 것이다. 현 정부 경제팀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나타난 인플레이션이 기업의 과도한 이윤 추구로 인한 ‘탐욕 인플레이션’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

중요한 사실은 윤석열 정부가 필요하다면, 기존의 교조적 입장을 버리고 정책을 실용적으로 실행했다는 점이다. 자유 시장을 강조하는 정부가 서민의 생활고를 덜기 위해 기업을 압박해 ‘라면값’을 낮추었다면, 민생을 위해 경제운용 기조를 긴축과 감세에서 적극적 재정정책으로 전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래도 경제는 보수가 잘해’라는 세간의 신화가 윤석열 대통령 집권 기간에 깨져서야 되겠나. 자존심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다. 실용적으로 생각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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