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일 칼럼] 기업이 심폐 소생시킨 잼버리, 정치가 답할 때
"정부가 친 사고를 이번에도 기업들이 다 치웠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11일 막을 내린 가운데,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초반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을 때 이를 해결한 것도 기업이었고, 2021년 요소수 품절 대란을 해결한 것도 기업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번에도 기업이 국가적인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몫을 했다.
이번 잼버리는 시작부터 당국의 미숙한 준비와 안일한 판단으로 파행이 계속됐다. 온열 환자가 속출하고 위생 문제 등에 대한 대원들의 불만이 높아졌다. 미국과 영국을 시작으로 주요국의 퇴소 결정이 이어질 때는 조기 종료라는 국가 망신을 당할 뻔 했다. 만약 전 세계 참가 대원들에게 상처와 함께 '한국은 다시는 가기 싫은 나라'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준 상태로 끝났다면, 이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국격 추락'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에 강한 우리 국민과 기업들은 자발적인 지원으로 나라를 살렸다. 미국 경제전문 매체인 포브스는 최근 기사에서 행사 참석 대원 부모들의 말을 인용해 "매일 더 나아졌다. 일생 일대의 경험을 했고 한국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됐다"고 이번 행사를 총평했다.
특히 기업들의 역할이 컸다. 생수 등 구호물품과 의료진, 지원인력 투입까지는 과거 국가 재난 때마다 이어지던 일반적인 패턴이었지만, 태풍 '카눈'이 북상하면서 위기가 더 커지자 기업들은 한 발 더 나아갔다.
삼성, SK, 현대차, LG, 롯데, 포스코, GS, 대한항공, 코오롱 등은 숙소 제공은 물론 사업장을 개방해 첨단 반도체 제조공장을 둘러보는 등의 견학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도자기를 만드는 체험 행사를 비롯해 첨단 과학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의 장을 제공해 잼버리 참가 대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현대차그룹은 기아 오산교육센터에 머무른 필리핀 잼버리 대원들이 연수원 직원들에게 "헌신적이고 친절한 응대에 감사드린다"며 마카푸노와 건조 망고 등 필리핀 전통 간식은 물론 전통 고깔모자 살라콧 등을 선물로 전달했다고 전했다.
결과적으로는 이번 잼버리 논란은 지난 문재인 정부 당시 극에 달했던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됐다. 기업들의 이 같은 적극적인 지원은 주요 대기업 총수들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게 후문이다.
기업이 국가 위기에 반드시 나서야 할 법적 책임은 없다. 그러나 '국격 추락'은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데 총수들이 공감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들의 이 같은 경영전략의 변화는 수년 전부터 이어진 것이지만, 국민들은 진정성을 의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경우 지난 2017년 이미 "사회적 가치 창출은 사회적 기업은 물론 영리기업의 존재 이유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면서 "경제적 가치만 창출하는 기업은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사라지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제는 정부가 화답해야 할 때다. 정치권은 과거 조선시대부터 국가주도 성장기 때까지 이어졌던 기업을 '하대'(下待)하는 고리타분한 사고를 버리고, 이제 기업을 동반자로 인식해야 할 때다.
윤석열 정부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낡은 규제를 고치겠다고 약속했다. 24년째 이어지고 있는 과도한 상속세율이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1999년 말 세법 개정 이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최대 60%에 이른다. 이는 중견·중소기업의 생존을 위협할 수준이다. 하지만 정부는 최근 부의 대물림을 촉진한다는 반대 여론 등을 고려해 상속·증여세 개편안을 내년으로 미룬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기업 규제는 여전히 3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재계가 3·4세 시대에 진입하면서 기업을 개인 소유로 생각하던 시대도 끝났다. 이제 규제의 방향성도 가진 것을 빼앗는 '하향 평준화' 방식이 아닌, 소득에 대한 과세와 분배를 더 정교하게 만들어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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