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올 9% 이상 수익 못내면 성과급 못받아···운용역 달래기 고육책
전주이전후 6년간 164명 떠났는데
인센티브마저 없으면 반발 불보듯
3년 단위 물가상승-수익률 연동도
장기투자 기금성격에도 맞지 않아
보건복지부는 6월 열린 국민연금 위험관리·성과보상전문위원회 회의에 ‘성과급 최소 지급 요건’을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개편안을 상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정부 안팎에서 “시기가 좋지 않다”는 우려가 잇따르면서 결국 보류됐다. 글로벌 금융시장 약세로 지난해 역대 최악의 기금운용수익률(-8.28%)을 기록한 상황에서 운용역 성과급 지급 문턱을 낮추는 개편안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국민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던 분위기가 최근 급변하기 시작했다. 5월 기준 기금운용수익률이 8.27%를 기록하면서 지난해 평가손실을 대부분 회복했다는 발표가 지난달 말 나왔기 때문이다. 또 정부의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 발표가 두 달 앞으로 다가오며 연금 개혁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지는 분위기라 수익률 제고를 위한 성과급 제도 개편 논의가 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성과급 최소 지급 요건 폐지 카드를 다시 꺼내든 이유다.
13일 투자 업계와 관계 부처에 따르면 복지부는 다음 달 열릴 위험관리·성과보상전문위 회의에 운용역 성과 평가 체계 개편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개편안의 핵심은 기금운용본부 운용역에 적용되는 성과급 최소 지급 요건을 없애거나 완화하는 것이다. 관련 논의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위원회 내부에서도 성과급 지급 요건을 손볼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국민연금 성과 평가 보상 지침에 규정된 성과급 최소 지급 요건은 일명 ‘허들(장애물)’로 불린다. 3년 평균 기금운용수익률이 3년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넘기지 못하면 운용역에 성과급을 아예 주지 못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도입 이래 이 요건이 충족되지 못한 적은 없었지만 규정 자체가 ‘성과급 0원’이라는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라 허들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하지만 국내외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서 규정 속에서만 존재할 것 같던 ‘성과급 제로’ 문구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가파른 물가 상승에 주요국 모두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리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려 기금 수익률 역시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성과급 지급 여부를 결정할 때 최근 3년의 수익률과 물가를 기준으로 삼는 만큼 그 여파가 내년에 지급될 성과급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투자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물가를 고려하면 올해 9%를 웃도는 수익률이 나지 않으면 내년 운용역들이 성과급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문제는 ‘성과급 제로’가 현실화할 경우 운용역의 이탈 행렬을 부추겨 안정적인 기금 운용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금운용본부의 전주 이전과 낮은 기본급 등으로 이미 운용역 이탈은 심각한 상황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기금운용본부가 전주로 이전한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퇴사한 운용역은 164명이다. 매년 평균 27.3명이 기금운용본부를 떠나는 셈이다. 기금운용본부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연기금은 물론 국내 민간 업계를 봐도 성과급 최소 지급 요건과 같은 규정은 없다”며 “고물가 등 통제할 수 없는 요인으로 성과급을 받지 못할 경우 운용역들의 반발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운용역의 이탈 행렬은 기금 수익률을 높이는 게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지금 더욱 문제가 될 수 있다. 올 3월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는 “기금 수익률을 1%포인트 올리면 기금 소진 시점은 2055년에서 2060년으로 늦춰진다”고 밝혔다. 이는 현재 9%인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1%로 올리는 것과 같은 효과다. 보험료율 인상에 대한 반발 여론이 거센 상황에서 수익률 제고가 묘수로 떠오른 이유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앞서 “국민연금공단의 기금운용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시하기도 했다.
지급 요건 자체가 국민연금의 기금 투자 성격과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국민연금은 장기 투자 기관인 데 반해 수익률은 최근 3년 치만 본다는 게 합리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또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위험자산인 주식 투자 비중을 늘리면서 수익률 변동이 커진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 또한 나온다. 실제로 요건이 도입된 2008년 14.5%에 그쳤던 주식 투자 비중은 2028년 55% 내외로 커진다. 이러한 이유로 올 5월 국민연금 전문가 포럼에서는 이 요건을 폐지하거나 수익률 기준을 5년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국민연금은 성과급 지급 요건 개편을 시작으로 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운용 인프라 개선 방안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등에 해외 사무소를 새로 세우고 기존 사무소에 인력을 추가 배치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현재 국민연금의 해외 사무소는 3곳(뉴욕·런던·싱가포르)에 불과해 캐나다(8곳)와 네덜란드(6곳) 등 주요 연기금과 비교하면 아직 적은 수준이다.
뛰어난 운용역을 유치하기 위해 이들의 전문성과 능력에 맞는 보수를 줄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 마련에도 나설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큰 규모의 예산이 필요하고 법적 정비도 필요한 사안들”이라며 “우선순위 등을 고려해 할 수 있는 것부터 차츰 해나겠다”고 말했다.
세종=곽윤아 기자 ori@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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