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섭의 기업과 경제] 자사주 소각 강요는 '정책'이 아니라 '정치'
시총만 줄 뿐 주가 상승 미미
주주친화 수단 될 수 없어
내 재산 팔아 월급 올린 꼴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발전심의회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제안했고, 금융위는 상장사 의견 등을 청취한 뒤 '의무화'는 아니더라도 자사주 소각을 촉진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정책 목표는 '주주 친화적' 수단을 통해 주식시장을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경제가 좋아진다는 전제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자사주 소각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주가를 높이거나 경제에 좋다는 근거를 전혀 찾을 수 없다.
첫째, 자사주 보유분이 시가총액에서 제외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시총에 합산된다. 따라서 보유 자사주를 소각하면 시총이 그만큼 줄어든다. 자사주는 유통되지 않기 때문에 유통 주식 수에는 변화가 없다. 시총이 줄고 유통 주식은 변하지 않는데 자사주 소각이 주가 상승을 가져올까? 많은 사람들이 자사주 소각의 ABC를 모르는 상태에서 소각하면 주식 숫자가 줄어 주당 가치가 오를 거라고 막연히 기대하는 것 같다.
둘째, 매입하는 자사주만 소각하는 경우에 한정하더라도 주가가 중장기적으로 오르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 경우 기업가치는 달라지지 않고 주당순이익(EPS·순이익/주식 수)만 주식 수(분모) 감소 효과 때문에 상승한다. EPS 상승이라는 겉모습에 취해 주가가 단기 상승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또 회사가 자사주를 매입하는 기간에 '사자' 물량이 많아지니까 주가가 잠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중장기 주가는 이익증가율이나 사업 성장성 등에 의해 결정된다. 인텔은 2000년부터 지금까지 거의 1300억달러(약 160조원)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하지만 주가는 반 토막 나 있다. 반면 TSMC는 자사주 매입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가는 10배 가까이 뛰었다. 자사주 매입이 주가를 올린다고 말하는 것은 내 재산을 팔아 내 월급을 인상한 뒤 올라간 월급만 가리키며 내 재산 가치가 올랐다고 호들갑 떠는 것과 다름없다. 돈을 풀어 소득을 올려주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소득주도성장 논리와도 큰 차이가 없다.
셋째, 이번 정책은 세계적으로 자사주 매입·소각 관련 규제가 어떠한지 검토하지 않은 채 진행되는 것 같다. 안동현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장은 "소각 의무화를 시행 중인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주주 친화적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각 의무화는 미국에서조차 아메리칸 스탠더드가 아니다. 골드만삭스나 AIG, 이베이, IBM, 코닝 등 유통 주식보다 자사주를 더 많이 갖고 있는 회사가 즐비하다. 소각 의무화는 캘리포니아주 정도나 시행하고 있다. 미국의 다른 주나 일본, 유럽 등에서 의무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그것이 어떤 이유 때문인지 따져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기업은 다양한 목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한다. 인수·합병(M&A)에 현찰보다 주식이 유용한 경우가 많다. 현대차와 KT의 경우처럼 주식 교환을 통해 전략적 제휴를 공고화할 수도 있다. 경영자나 근로자의 보상에 사용할 수도 있다.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면 담보 삼아 비상금을 조달할 수도 있다. 한국의 경우는 그룹 경영권을 안정시키는 데도 사용할 수 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이렇게 많은 자사주 매입 이유들이 다 쓸모없다고 단정 짓는 것이다.
나름대로 자사주 연구를 해왔던 필자의 시각에서 보면 이렇게 합목적성이 없는 정책은 포퓰리즘 '정치'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기업은 투표권이 없다. 반면 '개미'라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은 투표권을 갖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반(反)기업정서의 관성도 있는 것 같다. '자유기업'을 표방하는 정부로 바뀌었어도 기업의 선택을 제한하는 규제를 너무 쉽게 도입하려는 것 같다. 정책이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경제논리와 현실을 충분히 살핀 뒤 정치적 재량 여지를 살펴봐야 한다. 지금은 거꾸로 되어 있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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