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학들 외국인교수 뽑아만 놓고 '나몰라라'

박나은 기자(nasilver@mk.co.kr) 2023. 8. 13. 17:3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제화점수 채우려 채용 급급
영어 강의만 맡는 경우 다수
논문 실적·제자 양성도 미미
언어·처우 문제로 떠나기 일쑤
5년간 외국인 교원수 '제자리'

국내 모 국립대에 재직 중인 외국인 교수 A씨는 최근 비자를 연장하는 과정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재직 중인 대학과의 고용계약을 증명하는 서류가 필요했는데, 대학에서 이를 관리하는 담당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A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교직원이 대신해서 업무를 해줘 겨우 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A씨는 "평소에도 체류나 비자, 주거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대학에서 행정적인 부분을 전혀 지원해 주지 않으니 교원들의 업무 능력도 떨어지고 실력 있는 교원들은 학교를 떠나게 된다"고 토로했다.

대학들이 국제화를 명목으로 외국인 교원(교수, 조교수, 부교수)을 꾸준히 채용하고 있지만 허울뿐인 숫자 맞추기용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채용 이후 사실상 방치하다시피 하면서 외국인 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실력 있는 외국인 교원은 국내에 잘 들어오지도 않을뿐더러 재직 중인 교원들의 업무 실적도 부진한 실정이다.

13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전국 40개 국공립 대학 중 25곳의 외국인 교원이 재직 기간 내 쓴 논문 편찬 건수는 2022년 3.7개였다. 국내 최고 대학이라 손꼽히는 서울대도 같은 해 외국인 교원 1인당 3.3개뿐이었다. 한 국립대학 관계자는 "재직하는 3~5년 동안 연구를 하지 않아 논문 게재 건수가 없다거나, 대학원생을 아예 맡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외국인 교수 한 사람이 지도교수가 돼 석·박사 학생을 배출하는 경우도 내국인 교수들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18개 대학에서 외국인 교수 한 명이 제자를 석·박사로 배출한 비율이 내국인 교수보다 높았던 대학은 강원대, 서울시립대, 충북대 세 곳뿐이었다. 대부분 대학의 외국인 교수들은 석·박사 지도 없이 영어 강의만 맡는다는 의미다.

대학들이 외국인 교원을 채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내외 주요 '대학 국제화 지표'에 외국인 교원 수가 평가 항목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 지표는 국제화 시대에 대학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요인이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외국인 학생을 유입하는 데 도움이 돼 대학들은 국제화 지수를 중요하게 여기기도 한다.

본래 목적인 '국제화'를 위해 외국인 교원들을 채용했다면 이들의 숫자는 매년 증가했어야 하지만, 5년 동안 비슷한 수치를 유지 중이다.

강 의원실에 따르면 전국 27개(2019년은 26개) 국공립대에 재직 중인 외국인 교원은 2019년 278명, 2020년 280명, 2021년 297명, 2022년 288명, 2023년 291명이었다. 모두 2%가 채 되지 않았다.

'숫자 맞추기용'으로 외국인 교원을 채용하다 보니 관리·감독·지원은 부실하게 이뤄진다. 한 국립대에 13년째 재직 중인 외국인 교수 B씨는 "처음에는 여러 차례 건의하고 목소리를 내면서 변화를 꾀했지만 학교는 변한 게 전혀 없었다"며 "결국 대학은 외국인 교수들에게 교육이나 연구 등 실적 내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숫자로 실적을 맞추는 것에만 관심을 보인다"고 비판했다. 불만이 있는 교원이 떠나면 또 다른 교원을 채용해 숫자를 채우면 된다는 것이다.

외국인 교원들의 업무 활용도가 낮아지는 악순환도 이어지고 있다. 안 그래도 북미나 유럽권 대학에 비해 대학 경쟁력이 떨어지는데, 처우까지 좋지 않으니 실력 있는 교원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 국립대 외국인 교수 C씨는 "연구를 하려면 연구비를 따와야 하는데 언어장벽으로 신청이 쉽지 않고 지지 기반도 내국인 교수에게 밀리는 경우가 많아, 열정을 갖고 들어왔어도 포기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박나은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