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LH 비리 척결?… 어림없다
뇌물·투기·카르텔 논란 때마다
늘 '고강도 혁신' 강조하지만
다른 유형 비리 불쑥 튀어나와
'비리 공기업' 낙인 피하려면
정보 독점·권한 대폭 손봐야
비아냥이 아니다. 필자는 LH 직원의 비리 근절은 어렵다고 본다. 적어도 지금 같은 접근법으로는 어림없다. 이번에 LH 아파트 15곳의 부실 원인을 보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황당하다.
기둥 302개 중 126개에서 철근을 빼먹은 남양주 별내 아파트는 다른 층 도면을 보고 설치를 했다. 154개 기둥 모두 철근을 빼먹은 양주 회천 아파트는 콘크리트 하중 등 구조계산을 아예 하지 않았다. 이건 소홀했다기보다 대충 한 것이다. 추가로 철근 누락 단지 5곳은 보고조차 안 됐다니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LH 아파트는 대개 중산층 서민들이 분양가나 임대료가 낮아 선택한다. 철근이 무더기로 빠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입주민과 계약자의 심정이 어땠을까.
부실공사 배경으로 LH 퇴직자들이 지목됐다. 설계·감리사에 일하는 퇴직자들이 LH 공사를 수주받아, 재하청을 주면서 공사가 부실해졌다는 것이다.
LH는 전관예우 척결을 위한 고강도 대책을 '또' 내놓았다. 부실시공 설계·감리업체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을 적용하고, 전관특혜 의혹 업체는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임원 5명에게 전원 사직서도 제출받았다.
하지만 이한준 LH 사장이 내놓은 대책은 뒷북도 한참 뒷북이다. 전관 카르텔이 LH에 만연한 사실은 이 사장도 이미 알지 않았나. 지난해 취임 후 '전관예우 전면 차단'을 LH 혁신안으로 발표하며 왜 실질적인 대책은 실행하지 않았나.
이 때문에 '고강도 대책', '척결', '원스트라이크 아웃', '검찰 고발' 같은 결의도 공허하게 들린다. 2009년 LH 출범 후 충분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토지공사와 주택공사가 통합되고 이지송 LH 초대 사장이 대표에 취임하며 강조한 것도 부정부패 '척결'이었다. 1회 적발 때 바로 퇴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도 물론 포함됐다.
그래서 비리가 척결됐을까.
그해 12월 파주 교하신도시 입찰 비리가 적발됐는데, LH 간부가 현금 2000만원과 향응을 건설업체로부터 제공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듬해 5월 판교, 군포, 안산 등 LH가 시행한 공사에서 3급 간부들이 용역업체에서 수억 원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6월에는 LH 직원이 매입한 땅값 3억5000만원을 한 전기공사 업체가 대신 내게 한 사실이 감사원에 적발되기도 했다. 2012년 7월에는 차장급 직원이 경남 양산물금지구 조경공사 감독관으로 있으면서 금품을 받은 사실이 적발됐다. 그 외 숱하게 많은 비리는 지면 사정상 생략한다.
이지송 대표도 비리 척결을 위해 노력을 안 한 것이 아니다. 비리 연루자는 승진 대상에서 제외하고, 입찰 심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뇌물 업체는 그 후 공공 공사 수주를 못하게 했다.
사장이 바뀔 때마다 '비리 척결'은 LH 혁신의 단골 현안이었다. 하지만 비리 유형과 방법이 더욱 교묘해져 하나를 누르면 다른 게 튀어나오는 '두더지 게임'처럼 돼 버렸다.
내부 정보를 이용해 택지지구 단지 내 상가를 헐값에 편법으로 낙찰받거나, 공사장 내 식당인 함바식당 운영권을 뇌물을 받고 발주하기도 했다. 고위 임원 사무실 책상에 거액의 현금을 보관하고 있다가 적발된 경우도 있다. 2년 전 온 나라를 뒤집어놓은 LH 직원들의 토지 투기는 거론할 필요도 없다.
필자가 LH 직원의 비리 근절을 어렵다고 보는 이유다. 이쯤 되면 직원들의 윤리·도덕의식을 강조하거나 강력 처벌만으로는 LH 혁신이 요원하다. 수천억 원, 수조 원에 달하는 개발 정보를 독점하고 막강한 권한을 가진 공기업의 시스템을 손봐야 한다.
이한준 사장은 'LH 비리를 척결한 사장'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그런 결의가 있으면 우선 역대 모든 비리 유형을 '비리 백서'로 엮어 직원들이 경계로 삼도록 하라. 이번 기획마저 놓치면 LH는 대한민국 역대 가장 부패한 공기업이라는 낙인을 지우기 어렵다.
[서찬동 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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