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이는 한전 적자, 대한민국 전력 인프라가 망가지고 있다 [사설]
한국전력이 올해 2분기 2조2724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2021년 2분기 이후 9분기 연속 적자 행진이 이어진 것이다. 누적 적자는 47조원에 달한다. 한전 적자가 쌓이면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송·배전망 투자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국가 전력 공급망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전력망 관리에 구멍이 나면 대정전까지 올 수 있다.
대한민국 전력 설비는 이미 심하게 망가지고 있다. 동해안에는 화력발전소가 속속 들어서고 있지만 송전망 건설이 지연돼 전력을 생산하고도 보내지 못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동해안의 한 발전사가 적자가 쌓였다며 한국전력거래소를 상대로 전력 도매가 인상을 요구하는 가처분 소송을 내기도 했다.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난립으로 인한 송전망 부족도 심각한 문제다. 올봄 호남지역에서는 태양광 발전량이 급증하자 원자력발전소가 출력을 제어하는 일이 수차례 벌어졌다. 송전망이 제한된 상황에서 태양광 발전량 과잉으로 원전이 유탄을 맞은 것이다. 태양광 패널이 많은 호남·영남 등은 전기가 남아돌아 걸핏하면 발전소를 세우고 있다. 이는 이전 정부가 한전의 투자 여력이 있을 때조차 송전망 투자를 게을리한 탓이 크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전은 지난 5월 발전소와 송·배전망 등 건설을 늦춰 2026년까지 1조3000억원을 절감하겠다는 자구안을 발표했다. 전기차 시장 급성장, 반도체 라인 증설 등 전기 수요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자구'가 아닌 '자해'다. 전력망 투자 지체는 국가 첨단산업에 위협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미래 세대에 비용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다. 인프라 확충을 위해서는 '역마진 구조'인 전기요금의 현실화가 시급하다. 정부와 한전은 송전망 투자에 민간을 참여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는데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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