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사건 조사자를 징계해 ‘긁어 부스럼’ 만든 軍 [신대원의 軍플릭스]
해병대, 前수사단장 인터뷰 빌미 16일 징계위 통지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집중호우 피해 지원에 나섰다가 안타깝게 숨을 거둔 故 채수근 상병이 사망한 지 한 달여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논란과 의혹만 증폭되고 있다.
채 상병 사건 조사를 맡았다 오히려 보직해임되고 ‘집단항명 수괴’ 등의 혐의로 수사대상이 된 전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과 군의 입장이 팽팽히 엇갈리면서 법적 대결로 치닫고 있다.
이미 난타전을 주고받고 있는 양측은 향후 ‘군검찰수사심의위원회’와 ‘군인 징계위원회’ 소집을 둘러싸고 추가 충돌을 예고하고 있다.
박 대령 법률대리인 김경호 변호사는 “박 대령은 국방부 검찰단 수사에 대한 ‘정당방위’를 주장했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제3의 기관은 바로 ‘군검찰수사심의위’”라며 “국방부 검찰단에 14일부로 수사심의위 소집을 정식으로 신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 검찰단은 박 대령의 수사심의위 신청서가 정식으로 접수되면 규정과 지침에 따라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수사심의위는 故 이예람 공군 중사 사망 사건 이후 군검찰의 공정성 제고를 위해 제정됐다.
5명 이상 20명 이하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수사 계속 여부와 공소 제기 또는 불기소 처분 여부, 구속영장 청구 및 재청구 여부 등을 심의한다.
김 변호사는 “국방부 장관의 지침에 따라 수사심의위에서 사건 수사와 결정을 촉구한다”며 “이종섭 장관은 자신에게도 제기된 의혹을 풀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사법제도 등에 학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 덕망과 식견이 풍부한 사회 각계 전문가를 위원으로 위촉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해병대는 박 대령 측에게 오는 16일 오후 해병대사령부 부사령관실에서 박 대령을 대상으로 징계위를 열겠다는 내용의 출석통지서를 보냈다.
박 대령이 국방부 검찰단 출석이 예정됐던 지난 11일 채 상병 사건 수사과정에서 국방부로부터 수사외압과 부당지시가 있었다며 국방부 검찰단 수사를 거부하는 등 반발하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령은 같은 날 채 상병 사건 수사과정을 시간순으로 정리한 ‘해병대사령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진행경과’를 통해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이 일련의 과정에서 자신의 제안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우유부단’한 태도로 고심만 했다거나, “어떻게 하지”라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해병대는 특히 박 대령이 잇단 TV 인터뷰를 통해 채 상병 사건 축소 및 외압 의혹을 폭로한 것을 문제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보안업무 훈령과 해병대 공보정훈업무 규정 등에 따르면 군인은 사전승인 없이 언론 인터뷰에 응해서는 안 된다.
앞서 국방부는 박 대령의 인터뷰에 대해 “법에 의한 공정한 수사는 거부하면서 규정을 위반해 모 방송사 생방송에 임의로 출연, 사실이 아닌 내용을 일방적으로 허위 주장한 것은 군인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어서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행위”라며 “강한 유감과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방부는 박 대령의 인터뷰를 방송한 해당 방송국에 대해서도 “피의자 신분으로 군 검찰의 수사를 받아야 하는 박 대령을 임의로 출연시켜 일방적 주장을 편파적으로 방송함으로써 수사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국민들께 혼란을 초래했다”면서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 대령 측은 징계위 출석과 관련, 우선 해명에 필요한 진술권 보장과 방어권 행사를 위한 징계기록 정보공개 청구, 그리고 판례로 인정된 징계위원 이름 공개 청구 등을 통해 연기를 신청하되 16일 강행할 경우 불출석한다는 방침이다.
김 변호사는 “연기신청에도 16일 징계위를 강행하면 위법하고 사유 위반으로 불공정한 징계이므로 참석에 의미가 없다”며 “‘불출석 사유서 및 서면심리 요청서’를 제출하고 불출석한 뒤 항고와 행정소송법에 따라 징계 취소소송에 바로 돌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병대가 자체 조사 결과를 유족에게 전달한 뒤 국회와 언론을 대상으로 예고했던 설명을 돌연 취소하면서 시작된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을 지경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국방부보다 ‘윗선’이 개입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이젠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 형국이다.
언뜻 보기에 박 대령 측과 군이 쟁점마다 엇갈린 법적 해석과 주장을 내놓고 있어 사안은 복잡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 국민 눈높이에선 사람이 죽었는데, 이를 조사하던 사람이 오히려 징계를 받고 수사를 받게 됐다는 가장 기초적이고 명백한 사실이 문제다.
쟁점별로 상반된 박 대령과 군의 법리적 해석과 주장은 부차적인 문제다.
논란과 의혹이 증폭되자 해명에 나섰던 국방부 관계자조차 박 대령의 채 상병 사건 조사에 대해서는 “군사법원법을 보면 법률 해석에 엇갈리는 게 있어서 이견이 있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장관이 박 대령의 조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결재하지 말고, 충분한 법리적 검토를 거친 뒤 이첩을 보류했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정말 그렇게 했으면 좋았겠다’는 취지로 답변하기도 했다.
사안이 어디로 튈 지 모르는 형국으로 흐르면서 군 내부에서는 책임을 떠넘기려 하거나, 나부터 먼저 살겠다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는 후문이다.
채 상병 사망 뒤 우리 군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차라리 ‘외압’ 때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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