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실패를 대하는 자세
"부하 직원이 실패했을 때, 당장의 손실을 막으려고 바로 개입하고 싶은 유혹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때 실패가 일어나도록 놔두는 게 낫다. 그래야 그로부터 교훈을 얻고 실패가 반복되지 않는다." 미국 본사의 내 빅보스가 실패에 대해 설명한 말이다. 반복되는 실패는 습관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떠올리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기업에서는 실패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문화를 만들자고 한다. 비즈니스를 이끄는 리더들에게는 팀원들의 실패가 반가울 리 없다. 마음을 다잡아 하루빨리 실패를 극복하고 성공으로 가자며 '회복탄력성'부터 서둘러 강조한다. 여기서 방점은 실패가 아니라 성공에 찍힌다. 그러나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이 더 큰 실패"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그 실패의 시간을 좀 더 들여다보고 곱씹어 보면 어떨까 싶다.
세상은 실패 위에 세운 성공에 집중하고 그걸 칭찬하지만, 실패를 통과하며 경험한 고통과 좌절의 시간은 쉽게 주목받지 못한다. 하지만 실패와 좌절 없는 성공은 거의 없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의 아버지'인 넬슨 만델라는 말했다. "얼마나 많은 성공을 했느냐로 저를 평가하지 말고, 제가 얼마나 많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섰는지로 평가해주세요." 우린 얼마나 많이 크고 작은 일상의 삶 속에서 넘어지고 또다시 일어나고 있을까.
얼마 전 회사에서 여성 리더십 관련 대화의 시간을 가질 때였다. 계속되는 좌절의 시간을 겪으면서 안면 마비가 와서 '여성으로서, 직업인으로서의 시간이 멈추는 게 아닐까' 하며 한없이 낮아지고 겸손해졌던 때와 이 시간이 이후 내 커리어 성장에 어떤 힘이 되었는지에 대한 경험을 나눴다. 그때 직원들 반응이 가장 뜨거웠다.
실패가 피할 수 없는 여정이라 하더라도, 결국 그것을 어떤 마음과 자세로 딛고 일어서는지가 중요할 것 같다. 실패와 고통의 시간을 겨우 겪어내며 낭비하는 게 아니라 배움과 성장의 기회로 값지게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친한 언니가 일터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큰 도움과 위로가 되었던 책의 한 구절을 나눴다. 지금 이 어려운 시간을 훗날 내가 어떻게 '명명할지'를 생각해 보라는 대목이었다고 한다. 그 시간이 누군가에겐 '방학'일 수도 '쉼표'일 수도 있었겠다. 수년 전 이그제큐티브 코칭 클래스에서 "눈을 감고 직장에서 실패했거나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떠올리라"고 하더니 "5층, 15층으로 더 높이 올라가서 이 상황을 내려다본다고 여기고 이 상황을 다시 느껴 보라"고 연습을 시켰다.
당장은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 같이 답답하지만, 제3의 관점에서 오늘을 재해석한다면 그 안에 자유함과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길 것 같다. 불행의 기준을 바꾸면 회복 능력이 생긴다는 말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중 마지막 장면. 사랑하는 여성들을 좇다가 비탄에 빠지고 자포자기한 주인공 호프만에게 뮤즈가 나타나 말한다. "인간은 사랑을 통해 성장하지만 눈물과 시련이 너를 훨씬 더 많이 성장시킬 것이다."
[황성혜 한국존슨앤드존슨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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