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집어삼킨 산불…실종자 1000명 '최악의 재앙' 또 사람 탓?

박가영 기자 2023. 8. 13.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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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 시작 단계라 89명인 사망자 늘듯,
아직 화재 진압 못해 "나무뿌리 타는 중"…
참사 원인으로 기후변화·부실 대응 지목

화마(火魔)가 '지상 낙원' 하와이를 집어삼켰다. 지난 8일 시작된 하와이 마우이섬의 대형 산불이 닷새째 이어지면서 사망자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생사가 파악되지 않은 실종자도 다수다. 가장 큰 피해를 본 라하이나 지역은 여의도 3배 규모의 면적이 불에 타 잿더미가 됐다. 이 지역을 재건하는 데만 7조원 넘는 비용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12일(현지시간) 하와이 마우섬 라하이나 지역의 야자수가 산불에 탄 모습/AFPBBNews=뉴스1
사망자 89명…"100년 만의 최악 산불"
로이터통신·CNN 등에 따르면 조시 그린 하와이 주지사는 12일(현지시간) 밤 기준 최소 89명이 산불로 인해 목숨을 잃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날로 하와이 산불은 미국에서 100여년 만에 최악의 참사를 낸 산불로 기록되게 됐다. 근래 최악의 산불 피해는 2018년 캘리포니아 북부에 번진 산불로 85명이 숨진 것이었다. 1918년에는 미네소타 북부 지역 등에 산불이 발생, 수백명이 사망했다.

문제는 아직 수색이 본격화하지 않아 인명 피해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사망자들은 대부분 건물 밖에서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연락이 끊기거나 소재 파악이 안 된 실종자는 1000명이 넘는다. 사체 탐지견들은 수색 예정 지역의 3%밖에 돌아보지 못한 상태다. 존 펠티어 마우이 카운티 경찰서장은 "우리가 수색해야 하는 지역은 최소 5평방마일(약 13k㎡·393만평)"이라며 "사망자 수가 더 증가할 수 있으며 그 규모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라하이나 지역 산불 피해 집계 내용/사진=마우이 카운티 홈페이지

이번 산불로 가장 극심한 피해를 본 곳은 마우이섬 북서부의 라하이나 지역이다. 태평양재해센터(PDC)와 미 연방재난관리청(FEMA)의 산불 피해 조사 내용에 따르면 라하이나 지역의 면적 총 2170에이커(약 8.78㎢)가 불에 탔다. 여의도 면적(약 2.9㎢)의 약 3배가 소실된 셈이다. 파손되거나 전소된 건물은 총 2207채로, 이 가운데 86%가 주거용 건물이다. 대피소가 필요한 이재민은 4500여명으로 집계됐다. 이 지역 재건에 필요한 비용은 55억2000만달러(약 7조3500억원)로 추정된다.

하지만 3개의 대형 산불은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어 피해는 커질 전망이다. 전날 오후 기준 라하이나 지역은 85%, 중부 해안인 풀레후·키헤이 지역은 80%, 중부 내륙인 업컨트리 지역은 50% 진압된 것으로 보고됐다. 마우이에서 소방관들과 동행하고 있는 전문 사진작가 대니얼 설리번은 CNN에 "나무뿌리들이 땅속에서 불타고 있다. 현재 토양 온도는 화씨 180∼200도(섭씨 82∼93도)"라며 "(지상에) 불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무뿌리를 태우고 있는 불은 어디서든 튀어 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가 불러온 산불, 피해는 사람이 키웠다
산불의 정확한 발화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기후변화가 산불 확산의 주범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례적인 가뭄에서 비롯된 재해라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하와이대·콜로라도대 연구진이 2015년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서 1990년 이후 하와이의 강우량이 우기에는 31%, 건기에는 6%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가뭄 상황은 최근 몇 주간 더욱 악화했다. 미국 통합가뭄정보시스템(NIDIS)에 따르면 지난주 하와이 전체 지역의 83%가 비정상적으로 건조하거나 심각한 가뭄 단계인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라니냐 현상이 약해지고 하와이 상공의 구름층이 얇아지면서 기후변화가 심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클라크대 기상학자인 애비 프래지어는 NYT에 "이러한 모든 요인이 기후변화와 관련 있다"며 "우리가 보는 모든 것에 기후변화의 신호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허리케인 '도라'도 산불을 키우는 데 한몫했다. 지난 9일 하와이 주변 해상을 지난 도라가 최고 시속 130㎞의 돌풍을 몰고 오면서 불길이 빠르게 번지고 진압에 어려움을 겪었다.

산불로 폐허가 된 라하이나 지역/AFPBBNews=뉴스1

이번 산불 참사가 인재(人災)라는 지적도 나온다. 산불 당시 화재 경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하와이는 쓰나미 등 갑작스러운 자연재해에 대비해 세계 최대 규모의 옥외 경보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자랑해왔다. 하와이 전체에 400개, 마우이섬에는 80개의 사이렌이 갖춰져 있다. 하지만 이번 화재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지난 8일 화재가 발생하고 불길과 연기가 치솟았지만 사이렌은 울리지 않았다. 애덤 와인트라웁 하와이 비상관리국 대변인은 "우리 기록에 따르면 주 정부나 마우이 카운티 당국 누구도 사이렌을 작동시키려 시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와이 비상관리국은 휴대전화, 텔레비전, 라디오 등으로 산불 발생을 알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기와 통신이 끊기면서 이마저도 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라하이나에 거주하는 콜 밀링턴은 CNN에 "휴대전화에 비상 경보가 떴지만 대피 통지는 없었다"며 "상공의 거대한 검은 연기"를 보고서야 위험을 감지했다고 지적했다.

산불 대응이 부실했다는 논란이 커지면서 주 당국은 진상 조사에 나섰다. 앤 로페즈 하와이주 법무부 장관은 성명을 통해 "마우이섬 산불 전후에 있었던 주요 의사결정에 대한 포괄적인 조사를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박가영 기자 park080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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