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 조달 위해 부패 인사에 손벌린 우크라 정부···젤렌스키 ‘부패와의 전쟁’ 딜레마
우크라이나 정부가 지난해 러시아의 침공 이후 무기를 조달하기 위해 부패 혐의로 조사를 받은 전력이 있는 의원 출신 무기상과 거래를 해왔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와의 전쟁과 ‘부패와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권이 처한 모순적 상황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부패 척결은 2019년 대선 당시 젤렌스키 대통령의 핵심 공약 중 하나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에는 서방의 지속적 지원을 확보하고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 가입을 위한 개혁 조처의 일환으로 부패와의 전쟁에 속도를 내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올해 초 주지사, 국방부 차관, 검찰 부총장, 대통령실 차장, 지역 개발 담당 차관 등을 부패 혐의로 해임했고, 지난 11일에는 돈을 받고 징병 대상자들의 국외 도피를 알선한 전국 병무청장들을 모두 해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비리 병무청장 해임과 관련해 “부패는 반역”이라고 했다.
그러나 대표적인 부패 인사인데도 우크라이나 정부가 도움을 요청한 경우도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 무기협회 대표를 맡고 있는 세르히이 파신스키가 대표적이다. 젤렌스키 정부 출범 전 의회 안보방위 위원회 의장을 지낸 그는 국영기업들이 자신이 사실상 소유하고 있는 무기업체 또는 사업상 파트너들의 업체와 거래하도록 함으로써 불법적인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는 의혹을 받았다.
파신스키는 젤렌스키 정부 출범 이후 반부패청의 조사를 받았다. 우크라이나군은 파신스키가 소유한 업체와의 거래를 중단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019년 방송에서 “거리에 나가서 파신스키가 범죄자인지 아닌지 물어보라. 100명 중 100명은 범죄자라고 얘기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전쟁 초기 서방의 지원이 도달하기 전 막대한 양의 무기를 백방으로 수소문하던 우크라이나 정부는 파신스키와 접촉했다. 당시 우크라이나군이 필요로 했던 구소련제 무기 재고를 풍부하게 확보하고 있던 불가리아는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판매를 거절했다. 파신스키는 불가리아와 폴란드 등에 구축해놓은 사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불가리아와 폴란드를 거쳐 무기를 들여왔다. 이후 계속된 거래를 통해 파신스키가 소유한 무기업체 우크라이나 아머드 테크놀로지는 지난해 한 해 동안에만 3억5000만달러(약 466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 과정에서 파신스키처럼 과거 부패 의혹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무기업체들의 거래를 허용하고,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마련했던 상당수 조치들도 폐기했다.
그러나 파신스키가 자신의 부패 혐의에 대해 면책을 받은 것은 아니다. NYT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우크라이나 아머드 테크놀로지의 가격 정책 및 관료들과의 유착 의혹과 관련해 파신스키에 대한 조사를 최근 재개했다고 전했다.
NYT는 “정부가 ‘범죄자’라고 규정했던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 무기를 구매하는 동시에 (부패 혐의에 대한) 조사도 진행하고 있다”면서 “불편한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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