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수사력 불신 시대, ‘유튜버 자경단’이 뜬다
“공론화 앞당기는 순기능” vs “사적 제재 정당화 부작용 커”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지난 2일 오후 8시10분경, 서울 강남구 압구정역 인근에서 한 남성이 롤스로이스를 몰다 인도로 돌진했다. 이 사고로 20대 여성은 뇌사 상태에 빠졌다. 운전자 신아무개씨에게선 케타민을 포함한 7종류의 마약 성분이 검출됐는데, 경찰은 강제 수사에 착수하지 않고 구금 약 17시간 만인 지난 3일 오후 3시쯤 신씨를 석방했다. 변호사가 신원을 보장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변호사는 차장검사 출신이 운영하는 법무법인에 소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유튜브 채널 '카라큘라 탐정사무소'(카라큘라)를 통해 일파만파 확산했다. 카라큘라는 운전자가 각종 범죄로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으며 배후에 조직폭력배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관련 영상 4개는 13일 기준 약 1000만 회를 상회하는 조회수를 기록할 만큼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이후 신씨의 변호사는 지난 9일 자진 사임했고, 신씨는 11일 구속됐다.
구독자 응원 속 조폭‧마약 '우리'가 잡는다
마약과 '칼부림 사건' 등 각종 흉악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SNS와 유튜브를 중심으로 피의자의 신상을 폭로하는 계정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모습이다. 이들은 구독자들의 활발한 제보, 사적 인맥 등을 바탕으로 검찰‧경찰과는 별개의 '수사력'을 과시하고 있다. 일종의 '자경단'(치안 공백이 발생했을 때 시민들 중 일부가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구성하는 자발적 결사체)에 가까운 모습이다.
대표적인 채널은 '카라큘라'다. 카라큘라는 탐정사 자격증을 획득한 실제 사설탐정으로, 각종 사건의 내막, 피해 사실, 가해자 정보 등을 채널에 게시하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된 △부산 서면 돌려차기 강간 살인미수 사건 △압구정동 롤스로이스 돌진 사건을 집중 취재하기도 했다. 언론보다 빠른 취재력, 탐정에 걸맞은 정보수집능력, 검‧경과는 구분되는 결단력을 선보이면서 구독자 수도 크게 늘었다. 13일 기준 카라큘라는 105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했다.
카라큘라는 8일 영상을 통해 위험을 무릅쓰고 탐정 일을 하는 이유는 "피해자의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범죄 피해자들은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에 힘들어 한다. 수면제나 항우울제가 없으면 잠을 못 잔다"며 "피해자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조명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위로받을 수 있게 하는 거다. 그게 제가 생각하는 정의"라고 밝혔다.
'엄태웅TV'도 '조직폭력배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시청자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엄태웅씨는 구치소 동기였던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의 실체를 폭로해 화제를 모았다. 엄씨는 이후 수원 기반의 조직폭력배 '남문파'를 저격했다. 남문파 조직원이 좁은 길목에서 차량 정체를 고의적으로 유발했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엄씨는 남문파 조직원들의 습격을 받는 장면을 생중계하기도 했다.
엄씨는 최근 발생한 '압구정동 롤스로이스 사건' 운전자와의 통화 내용, 의심 범죄 혐의 등도 폭로했다. 엄씨는 나아가 해당 사건의 피해 가족을 돕겠다며 3억원의 현금 다발을 공개하기도 했다. 해당 현금은 '본인의 이름을 유튜브에서 언급하지 않는' 조건으로 엄씨가 특정인에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엄씨의 범죄 관련 콘텐츠가 인기를 끌며, 10만 명 아래에 머물던 채널 구독자 수는 최근 25만 명(13일 기준)으로 급증했다.
용기와 수사력에 시청자 환호…부작용 우려도
과거에도 온라인 기반의 자경단은 있었다. 다만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서 익명을 앞세워 특정인을 비판하는 속칭 '까판'이 대부분이었다. '까판'은 '폭로한다'는 의미인 '깐다'에 비슷한 부류나 업종을 의미하는 '판'이 합성된 신조어다. 마약 사건을 일으킨 황하나씨에 대한 사생활 논란, '호박즙 사태'에서 시작된 '임블리 사건', '장자연 사건'을 폭로한 윤지오씨에 대한 진술 신빙성 논란도 바로 이 '까판'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자경단의 양태가 바뀌었다. 우선 활동 무대가 동영상 기반의 유튜브로 바뀌었다. 또 '카라큘라'나 '엄태웅TV'처럼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고 저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익명 뒤에서 글이나 사진으로 이뤄지는 폭로보다 제기하는 의혹의 신뢰도와 화제성이 더 높아진 셈이다. 동시에 이 같은 폭로가 광고료와 후원금 등 '수익 창출'로도 이어지면서, 이들이 계속해서 관련 콘텐츠를 이어나갈 동력이 확보됐다.
전문가들은 '온라인 자경단'이 새로운 공론장을 만들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개인들이 경찰에 신고도 하지 못할 때 결국 온라인의 고발 기능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며 "누군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면 많은 사실들까지 쏟아내게 된다. 숨겨진 사건을 드러내는 순기능이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자경단의 '탈법 행태'를 두고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상당하다. 이들이 사적 제재를 가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가해자에 대한 신상공개인데, 이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및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은 '범죄자를 단죄한다'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지만, 이 같은 폭로가 정당화되면 '피의자 신상 공개제도' 등 이미 마련된 제도는 무력화 될 수밖에 없다. 또 법원의 판결도 나기 전, 여론에 의한 '마녀 사냥'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이수정 교수는 "특정 개인에 대해 고의를 가지고 '헐뜯기'를 할 가능성, 단순한 악의에서 시작돼 특정인을 공격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일각에는 이들의 부상이 '정치와 검찰‧경찰, 언론의 무능'과 이로 인한 '대중의 불신'에서 비롯됐다는 시각도 있다.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정부와 언론이 자세히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과, 부당한 일을 참고만 있을 수 없다는 분노가 '유튜버 자경단'의 탄생을 낳았다는 분석이다. 이들을 비판하기에 앞서 '소수'의 목소리보다 당장의 화제성에 집중하는 언론, 관습적 수사 관행에 젖은 검‧경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쓴소리가 제기되는 배경이다.
정당바로세우기 대표를 맡고 있는 신인규 변호사는 사건 고발 전문 유튜버들에 대해 "이들이 왜 생겨났을까. 한국 사회의 공적 시스템이 제 역할을 못 하면서 스스로의 신뢰를 갉아먹었기 때문"이라며 "수사기관이나 언론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고, 그 빈 공간에서 유튜버들이 활발히 활동하며 신뢰를 얻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유튜브 특성상 사건이 극단적으로 묘사되거나 '자극 경쟁'이 이뤄질 우려는 있다"면서도 "적절한 규제만 이뤄진다면 이런 모습(유튜버들의 자발적 취재)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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