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의 업적은 김일성에 의한 한반도 공산화 막은 것 [김형준 쓴소리 곧은소리]
이승만·박정희·김영삼-김대중, 각각 건국·산업화·민주화 이끈 탁월한 대통령들
(시사저널=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최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 그동안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좌파와 이념주의적 역사학자는 물론이고, 보수 쪽에서조차 그의 공적을 상대적으로 축소하고 과오만 집중적으로 부각해 매도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단편적이고 이념적이고 편향적인 것에서 벗어나 총체적이고 실증적이고 균형적인 시각에서 이뤄져야 한다.
청년 이승만은 군주제·신분제 폐지 앞장서
이승만 대통령은 청년 시절, 모든 사람은 천부적으로 평등하고 정부를 선택할 수 있는 민주주의 사상을 접하고 군주제와 신분제 폐지에 앞장섰던 개혁파였다. 고종 때 왕정 폐지와 공화국 수립을 도모했다는 반역의 죄목으로 17개월 동안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청년 이승만은 급진적 개혁 투쟁가이자 실천적 급진주의자였다. 이후 이승만은 1919년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자 마지막 주석을 거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이 대통령 국정 운영 12년(1948~1960)에 대한 평가는 정치, 외교, 경제, 교육, 사회 등 여러 분야에서 총체적으로 살펴봐야 의미가 있다. 우선, 해방 직후 좌우 이념 대결의 혼란기에 직면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최대 업적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정부 수립이다.
이승만은 남한 단독 선거를 통해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관철시켰다. 진보 세력들은 이를 두고 분단 고착화라고 맹비난하지만 김일성의 한반도 공산화를 막았다는 점에서 큰 업적이다. 1952년에는 일명 '이승만 라인'을 선포해 독도를 수호하는 조치를 취했다. 따라서 평생을 독립운동을 했던 이승만을 친일 세력이라고 하는 좌파의 주장은 허구다.
또한, 이 대통령이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설득해 1953년 10월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것은 가장 손꼽히는 업적 중 하나다. 진보 세력들은 우리나라의 안보를 외세에 의존하게 만든 굴욕적인 조약이라고 거세게 비난하지만 미국이 제공하는 군사적 보호 우산 아래 국가 안보를 강화하고 나라를 경제적으로 발전하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대통령의 또 따른 중요 업적은 기존의 지주 토지 소유제를 청산하고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에 따라 자작농적 토지 소유제를 확립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농민들에게 자주성을 부여하고 생산력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 자본주의를 태동시키는 데도 기여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6·25 전쟁이 일어난 직후 충주비료공장, 문경시멘트공장, 인천판유리공장을 준공했다. 이는 장기적으로 사회간접자본 건설의 밑거름이 됐고 박정희 정부에서 핵심적인 사업이 된 중화학공업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교육 분야에서 6년 의무교육제를 도입하고 성인을 대상으로 문맹 퇴치운동을 전개했다. 이런 획기적 교육정책으로 1960년대 이후 산업화를 통한 '경이적' 경제성장의 인적 토대의 기반이 조성되었다. 여하튼 이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의 국가 방향을 설정했다는 점은 큰 공적이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이 "현재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은 이승만 대통령이 만든 토대 위에서 이뤄졌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장기집권 욕심, 친족정치 허용 등은 큰 과오
그렇다면 과는 무엇일까? 건국 초대 내각에 해외유학파 출신 측근들이나 친일관료들을 과거 청산 없이 대거 발탁하고, 장기집권에 대한 욕심으로 사사오입 개헌을 단행해 의회와 선거 제도를 존중하지 않았으며, 3·15 부정선거와 같은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국가보안법을 구실로 경향신문을 폐간시키는 등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고, 잦은 개각에서 자질이나 능력, 전문성보다는 충성심에 좌우됐으며 친족정치를 허용한 것은 큰 과오다. 결국 형식적인 민주주의의 겉모습만 유지된 것은 패착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정당한 비판은 인정하고 보호돼야 한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왜곡은 걸러져야 하고, 시정돼야 한다. 독재자로만 폄하하기엔 그가 대한민국 만들기에 남긴 업적은 너무나도 크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인 알몬드(Almond)와 파웰(Powell) 교수는 《비교정치: 시스템, 과정, 그리고 정책》이라는 책에서 모든 국가는 체제 발전을 위해 다섯 가지 유형의 도전을 겪게 된다고 주장한다. 첫째, 충성과 헌신의 '민족 만들기(nation building)', 둘째, 침투와 통합의 '나라 만들기(state building)', 셋째, 국내 경제의 생산능력을 증대시키는 '경제 만들기(economic building)', 넷째, 사회 각 집단이 정책 결정에 의견을 개진하는 '참여(participation)', 다섯째, 소득과 부의 '분배(distribution)'다. 그런데 정치 발전을 이룩한 선진국들은 이런 도전들이 순차적으로 나타나면서 문제가 해결된 반면, 후진국에서는 이런 도전들이 한꺼번에 나타나고 해결 능력이 없기 때문에 발전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최대 빈곤국이었던 대한민국이 빠른 시일 내에 세계를 놀라게 하는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건국→산업화→민주화를 단계적으로 거치며 기적적으로 연착륙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단계적 발전론'이 함축하고 있는 것은 매 발전 단계마다 이를 이끌어가는 탁월한 국가 지도가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국은 이승만 대통령, 산업화는 박정희 대통령, 민주화는 김영삼과 김대중 대통령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함축한다. 다른 말로 이런 탁월한 대통령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경제 선진국과 민주주의 대한민국은 없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대통령은 이념과 진영의 논리에서 벗어나 거시적인 관점에서 높이 평가받아야만 한다. 특히, 냉전과 분단의 냉엄한 현실 속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반공이라는 특유의 신념과 열정으로 '나라 만들기'의 토대를 만든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에 대해 독재자라는 주홍글씨로 결코 폄훼·왜곡해서는 안 되고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기승전결(起承轉結) 중 나쁜 일부 결과만 보고 나머지 전체를 모두 부정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뜻이다. 똑같은 논리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공(功) 70%, 과(過) 30%'라며 그를 무조건 우상화하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된다. 단언컨대, 다르게 보면 다른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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