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의원제 축소 딜레마···강성 당원들 “전당원 투표 부치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김은경 혁신위원회의 마지막 혁신안인 대의원제 축소를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비이재명(비명)계 의원들은 “대의원제 축소는 친이재명(친명)계의 당권 사수안”이라고 비판하고, 반대로 강성 당원들은 “전 당원 투표로 혁신안을 관철시켜야 한다”고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내년 총선을 8개월 앞두고 ‘당심이냐, 통합이냐’의 갈림길에 섰다.
이 대표는 강성 당원들에게 대의원제 폐지를 요구받고 있다. 민주당 국민응답센터에는 13일 ‘김은경 혁신안 이행 요구’ 청원이 올라온 지 사흘 만에 응답 성사 요건인 서명자 5만명을 충족했다. 앞서 혁신위는 지난 10일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뽑는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투표 반영 비중 30%를 없애고, 대신 권리당원 투표 70%, 국민여론조사 30%씩을 반영하는 혁신안을 발표했다.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1표에 권리당원 60표의 가치가 있으므로 표의 등가성을 위해 대의원제를 폐지하자는 당원들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것이다.
일부 당원들은 대의원제 폐지를 전 당원 투표로 정하자고 요구했다. 민주당 당원 게시판 ‘블루웨이브’에도 “대의원제 폐지는 비정상화의 정상화” “혁신안 당 내부 반대 심하면 당원 전체투표 상정하세요” “혁신안을 폄훼하는 세력은 반개혁세력으로 간주해 출당 조치도 과감히 도입해야 한다”는 등의 글이 다수 올라왔다. 이 대표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엔 대의원제 폐지에 반대하는 민주당 의원의 실명을 거론하며 낙선운동을 제안하는 글까지 올라왔다.
비명계 의원들은 대의원제 축소에 강하게 반발했다. 비명계 홍영표 의원은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지금 안은 ‘혁신 없는 혁신안’이고 그저 ‘당권사수안’에 불과하다”며 “제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전해철 의원은 SNS에 “전당대회 대의원 표 반영 비율 폐지는 돈봉투 사건의 원인과 해법이 될 수 없다”며 “총선을 앞두고 결정할 시급한 일도 아니며 전당대회를 준비하며 논의해도 충분하다”고 반대했다. 양소영 당 대학생위원장도 SNS에 “권리당원 중 수도권·호남이 75.4%를 차지하고 82.5%가 40대 이상”이라며 “세대, 지역별 보정을 위한 대의원제를 폐지하고 권리당원의 권한만을 강화하면 수도권과 호남, 40대 이상 이외 집단의 의견은 상시적으로 무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대의원제 축소를 두고 ‘당심이냐, 당 통합이냐’의 갈림길에 섰다. 이 대표는 자신의 가장 큰 지지세력인 강성 당원들의 대의원제 폐지 요구를 무시하기 어려운 처지다. 강성 당원들은 이 대표를 ‘사법 리스크’로부터 정치적으로 지켜줄 우군이자 이 대표의 차기 대선 가도에서 중요한 기반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내년 총선에서 승리해야 할 책임도 지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대의원제 폐지 문제로 내분이 일어난다면 이 대표 책임론이 커지거나 당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당내 최대 의원모임 ‘더좋은미래’와 친문재인계 의원모임 ‘민주주의 4.0’이 총선 전 대의원제 개편에 부정적이다. 총선을 앞두고 계파 간 통합을 강조해온 이 대표에게 의원들의 집단 반발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대표가 어떤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어디까지 혁신안을 수용할지가 관건이다. 이 대표는 지난 11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혁신안은 혁신위의 제안이기 때문에 당내 논의를 거쳐서 합당한 결과를 만들어내겠다”고 말했다. 당내 논의기구로는 최고위원회의, 의원총회, 당무위원회 등이 있다. 특히 대의원제를 축소하려면 당 지도부, 국회 상임위원장, 시·도당위원장, 당 소속 시·도지사 100명 이하로 구성된 집행기구인 당무위를 통해 당헌·당규를 개정해야 한다. 혁신안 수용에 당 구성원들의 동의가 필요한 것이다.
이 대표가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정치적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민주당 혁신위원 출신인 이동학 전 최고위원은 통화에서 “이 대표가 내년 총선 불출마·험지 출마 등 자기 헌신 카드를 먼저 제시하고 혁신안과 함께 재신임을 물으며 위기를 정면돌파해야 한다”며 “그래야 이 대표도 반대파를 누르고 민심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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