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중고’에 식어 가는 세계의 공장… 中, 장기불황 가능성 우려 [뉴스 인사이드-커지는 中 경제 경고등]

이귀전 2023. 8. 1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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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의 ‘리오프닝’ 효과 미미
6월 소매판매 3.1% 증가 그쳐 크게 둔화
수출액, 12.4% 줄어 41개월 만에 최대폭
GDP 20% 차지 부동산 판매·건설 하락
더딘 경기 회복에 경제 활동 위축 악순환
정부, 소비확대·부동산 부양책 내놨지만
3년 코로나 통제로 中企·자영업자 한계
소득 증대 구체 계획 없어 비판 쏟아져
청년 실업대책도 뚜렷한 효과 못 봐 비상

“소비하면 지원해주겠다는데 수중에 돈이 있어야 소비를 할 것 아니냐.”

중국이 3년 만에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을 했지만 경제 회복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등은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앞다퉈 하향 조정하고 있다. 중국 당국이 내수 소비 활성화 등을 위해 다양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소득 증대나 실업 문제 해결 등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던 중국이 경기가 침체하며 물가가 떨어지는 ‘D(deflation·디플레이션)의 공포’가 닥치는 것 아니냐는 경고음까지 커지고 있다. 중국이 ‘잃어버린 30년’을 겪은 일본식 장기불황의 문턱에 서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미·중 간 지정학적 긴장 등의 영향으로 중국의 성장이 주춤하자 세계 경제도 영향을 받는 모습이다.
중국 장쑤성 난징에서 지난 6월 열린 취업박람회에서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 청년들.
◆경제 지표 ‘빨간불’… 커지는 ‘D의 공포’

9일 블룸버그통신,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모건스탠리와 JP모건은 최근 중국의 연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치를 5.7%, 5.5%에서 5%로 각각 낮췄다. 씨티그룹도 JP모건과 마찬가지 5.5%에서 5%로 조정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도 5.5%에서 5.2%로, 노무라증권도 5.5%에서 5.1%로 각각 이 전망치를 내렸다.

이들이 중국의 성장률을 하향 조정한 것은 지난달 17일 2분기 GDP 성장률이 발표된 전후다. 중국의 2분기 성장률은 6.3%로 1분기 성장률 4.5%는 넘었지만, 로이터통신 예상치(7.3%)보다 1.0%포인트나 낮았다. 지난해 2분기 성장률이 0.4%로 낮았던 점을 감안하면 그나마 기저효과로 6%대 성장률을 기록한 것이어서 중국 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더 힘을 받는 모습이다.
경제 성장을 이끄는 두 축인 내수와 수출이 모두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고 있다. 내수 경기의 가늠자인 소매판매는 6월의 경우 전년 동기에 비해 3.1% 증가해 5월(12.7%)보다 크게 둔화했다. 6월 수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12.4%나 줄어들고 7월엔 14.5% 줄어 낙폭이 더 커졌다. 코로나19 발생 직후인 2020년 2월 이후 3년5개월 만에 최대 감소율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경기침체 등으로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이 현실화한다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중국 내 6월 주택 판매와 주택 건설이 전년 동월 대비 각각 18%, 10% 감소했다. 중국에서 부동산 부문은 전체 GDP의 20%에 달해 이 분야의 침체는 경제 성장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에 소비자물가지수(CPI)를 보면 지난 2월 1.0% 오른 뒤 3∼5월 1% 미만 상승률을 보이다 6월 0%에 이어 7월 0.3%로 하락했다.
생산자물가지수(PPI) 상황도 심각하다. 6월 -5.4%까지 떨어진 후 지난달 -4.4%를 기록하며 10개월째 마이너스를 유지하고 있다. 더딘 경기 회복으로 중국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경쟁적으로 제품 가격을 인하한 것이 물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상품 가격 하락으로 소비자들이 지출을 미뤄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이에 기업들이 다시 가격을 낮추면 투자와 일자리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일본이 수십년간 겪었던 장기 침체 가능성이 중국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일자리 못 찾는 청년들

미래 동력인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점 역시 중국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6월 16∼24세 청년 실업률은 21.3%로 기존 최고 기록이던 5월 실업률 20.8%보다 0.5%포인트 커졌다. 지난해 12월 16.7%에서 계속 상승해 지난 4월 20.4%를 기록, 사상 처음 20%를 돌파했고, 계속 최고치를 새로 쓰고 있다. 중국 당국은 국유기업과 공공기관의 신규 채용 확대, 청년 고용 업체에 대한 자금 지원 등 여러 고용 촉진책을 내놨으나 청년 실업률은 7∼8월 신규대졸자들이 취업 시장에 가세하면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취업을 못 한 자녀가 집에서 식사와 청소 등을 하는 대신 부모에게 월급을 받는 ‘전업 자녀’(全職兒女)가 생겨나고, 주머니 사정이 안 좋은 대도시 청년들 사이에서 팔다 남은 음식으로 구성된 ‘잔반 랜덤 도시락’(剩菜盲盒)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대학에선 취업률 목표치를 맞추기 위해 취직 못 한 졸업생들에게 ‘가짜 취직 증명’을 요구하는 일마저 벌어지고 있다. 중국에선 졸업생 취업률이 두 해 연속 60%를 못 미친 학과는 신입생 모집인원이 줄어든다. 대학 상당수가 교수와 전담 직원 등을 동원해 학생들에게 ‘가짜 취직 증명서’에 서명하도록 회유·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교육 당국은 논란이 커지자 실태 조사에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실업 상태인 청년 수가 정부 공식 통계보다 훨씬 많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베이징대 장단단(張丹丹) 교수팀은 지난 3월 기준 중국의 16∼24세 청년층의 실제 실업률은 46.5%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장 교수는 “탕핑(躺平·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족과 부모에게 의존해 생활하는 ‘캥거루족’을 합친 청년이 1600만명에 달한다”며 “이들을 실업자로 포함하면 3월 기준 청년 실업률은 46.5%로 당국이 발표한 19.6%를 훨씬 웃돈다”고 밝혔다. 정부가 발표한 청년실업자는 630만명이다.

◆대책 쏟아내지만 현실과 괴리

경제 회복이 더디자 중국 거시경제 주무 기관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잇달아 소비 촉진 방안을 발표했다. 우선 지난달 18일 친환경 가구·전자제품·주택 구입 지원 방안, 스마트 가전제품 신규 구매 지원 방안, 금융기관의 주택매수용 대출상품에 대한 신용지원 강화 등이 담긴 가계 소비 진작을 위한 11개 정책을 발표했다. 지난달 말에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유명무실했던 유급 휴가제를 시행하고, 탄력 근무제를 장려하는 한편 관광을 활성화하는 내용의 ‘소비 회복 및 확대 20개 조치’를 내놓았다.

또 중국인 자산의 70%가 묶여 있는 부동산 시장 부양을 기류 변화도 감지된다. 2019년부터 매년 4월과 7월 정치국회의 발표문에 포함됐던 ‘집은 거주하는 곳이지 투기 대상이 아니다’는 문구가 지난달 정치국 회의에서는 빠졌다.
지난 8월 중국 동부 장쑤성의 한 항구에서 선적을 기다리고 있는 차량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소비 촉진 방안 등에 대해 쓸 돈이 없는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은 지난 3년간 강도 높은 코로나19 방역 통제로 중소 민간 기업들과 자영업자들이 도산하거나 심각한 운영난에 직면했다. 경기 회복의 핵심일 수 있는 주민 소득 증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되지 않은 것이다.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경제력 있는 사람들은 정부 지원을 받아 차도 바꾸고, 주택도 리모델링할 수 있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라며 “지금 가장 중요한 정책은 소비 유도가 아니라 어떻게 돈을 벌 수 있게 하느냐는 것”이라고 꼬집는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중국 내 경제학자들도 감세 등 간접적인 지원책으로는 경제 활성화를 꾀하기 어렵다며 현금을 지급할 것을 여러 차례 건의했으나 당국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중국 당국은 경기 회복이 둔화하고, 경기부양 능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경제 전문가들에게 디플레이션 등 경제에 대한 부정적 발언을 자제하도록 지시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는 “중국 정부가 내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경기 부양책을 늘리려고 하고 있다”면서 “글로벌 성장이 둔화하고 많은 나라가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고 있기 때문에 수출 수요 호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구나 지난 7월부터 시행된 개정 방첩법(반간첩법) 등은 외국 기업들의 불안을 키워 중국에 대한 투자 등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로디엄그룹이 중국 정부 통계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중국 내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올해 1분기 200억달러(약 26조4000억원)를 기록했다. 지난해 1분기의 1000억달러의 5분의 1 수준이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최근 중국 경제성장 둔화에 대해 “여러 국가, 특히 아시아 국가는 자국 경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중국의 탄탄한 성장에 의존한다”며 “중국의 성장 둔화는 미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세계 경제 전반에 부정적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베이징=이귀전 특파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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