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페이팔, 페이팔 하는데”...얼어붙은 코인시장 구원투수? [뉴스 쉽게보기]

임형준 기자(brojun@mk.co.kr), 박재영 기자(jyp8909@mk.co.kr) 2023. 8. 1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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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온라인 결제 서비스 업체 ‘페이팔’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마치 ‘그들만의 리그’처럼 여겨지며 최근 들어선 대중적인 화제가 될 만한 일이 없던 암호화폐(코인) 시장, 그런데 어제(8일) 주요 언론들이 일제히 주목한 소식이 있었어요. 바로 미국 온라인 결제 서비스 업체인 ‘페이팔’이 암호화폐를 출시했다는 뉴스였어요.

우리나라에선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페이팔은 온라인 결제 서비스 업체 중 ‘부동의 1위’로 꼽히는 기업이에요. ‘애플페이’ 등 강력한 경쟁자들이 많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1위 기업 페이팔의 영향력은 막대해요. 세계적으로 활성화된 계정 수만 4억 개 이상이고,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선 ‘비자(VISA)’나 ‘마스터카드’ 같은 일반적인 신용카드만큼 보편화된 결제 수단이에요.

이런 회사가 직접 암호화폐를 개발해서 출시했으니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미국 주요 금융기업이 코인을 출시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페이팔은 이 코인이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서 결제 서비스를 혁신하기 위해 설계됐다’고 설명했어요. 페이팔은 2020년부터 암호화폐로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 왔는데, 이젠 더 적극적으로 직접 개발한 코인을 사업에 쓰겠다는 거예요.

무슨 코인을 출시한 건데?
페이팔이 만든 암호화폐의 이름은 ‘페이팔 USD(PYUSD)’예요. 코인 이름에 ‘USD’가 붙은 건 이 코인의 가치와 USD(미국 달러)의 가치가 일치하기 때문이에요. 항상 ‘1PYUSD=1달러’인 거죠. 이렇게 가치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코인을 ‘스테이블 코인’이라고 불러요.

보통 ‘암호화폐’라고 하면 시세가 오르락내리락하고, 급하게 변하기도 하면서 투자자들이 주식처럼 사고파는 가상자산을 떠올리게 돼요. ‘가격 변동성’이 크다는 특성 때문에 암호화폐는 일상적인 결제나 송금 수단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많이 나왔고요.

스테이블 코인은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가상자산이에요. 예를 들면 암호화폐를 발행하되, 가치를 ‘1개당 1달러’로 정해두는 거예요. 물론 이게 가능해지려면 ‘담보’가 있어야 해요. 코인을 만든 회사가 담보로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거죠.

“우리가 만든 암호화폐는 개당 1달러예요. 대신 그 가치를 보장하기 위해서 저희는 충분한 달러도 담보로 보유하고 있어요”라고 밝히는 식이에요. 코인 회사에 문제가 생기거나 아예 망하더라도 코인을 사서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상해 줄 돈을 쟁여두고 있는 셈이에요.

페이팔이 출시한 코인의 경우 고객이 1달러를 맡기면, 1PYUSD가 발행되는 식으로 운영된다고 해요. 고객이 맡긴 돈은 그대로 보관하거나, 대표적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를 사서 보유한대요. 다른 곳에 쓰지 않고 100% 담보로 갖고 있겠다는 거죠.

페이팔의 스테이블 코인 ‘페이팔USD(PYUSD)’가 표시된 휴대전화 화면. /자료=페이팔
가격이 오르지도 않는데 굳이 스테이블 코인을 만드는 건 기술적으로 유용하기 때문이에요. 블록체인 기반으로 만든 스테이블 코인을 활용하면, 은행이나 신용카드 업체 같은 금융회사들을 거치지 않아서 더 적은 수수료, 더 빠른 송금 등 기술적 이점을 누릴 수 있어요.

페이팔이 세계적인 결제 서비스 업체이긴 하지만, 결국 송금이나 결제를 할 땐 신용카드 회사나 은행 송금망을 거쳐야 해요. 그런데 자체 개발한 코인을 활용하면 독자적인 송금·결제망을 활용할 수 있게 돼요.

테라·루나 사태 이후 이어진 침체기
기술적 편의성이 주목받으며 다양한 업체에서 개발됐던 스테이블 코인은 지난해부터 침체기를 겪어왔어요. 지난해 6월 스테이블 코인의 가치가 순식간에 증발했던 ‘테라·루나 폭락 사태’가 큰 영향을 미쳤죠. 한국인이 개발한 코인 가격이 폭락하며 무려 수십조원의 막대한 피해를 일으켰던 사건이라 기억하는 분도 계실 거예요.

설계대로라면 스테이블 코인 ‘테라(UST)’는 ‘루나(LUNA)’라는 코인과 함께 유기적으로 거래되면서 1개당 1달러쯤에서 유지돼야 했어요. 하지만 잘 유지되던 가격은 한순간 폭락해 버렸고, 결과적으로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불신을 키웠죠. 앞서 언급했듯 보통의 스테이블 코인은 ‘담보’를 통해 가치를 유지하는데, 테라의 경우 ‘알고리즘’과 ‘거래 시스템’에 대한 믿음으로 가치를 유지하려다가 실패했어요.

테라·루나 가격 폭락 사태가 일어났던 지난 6월 한 시민이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표시된 루나 시세 변동 그래프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스테이블 코인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어요. 담보가 있는 코인과, 알고리즘 기반 코인이에요. 똑같이 1개당 1달러의 가치를 갖는 스테이블 코인이지만, 페이팔이 발행한 PYUSD의 경우 담보가 있는 코인이고, 테라(UST)는 담보 없이 알고리즘(거래 시스템)으로 가치를 유지하려 했던 코인인 거죠.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 코인은 테라·루나 사태 이후 취약성이 드러나면서, 담보를 함께 활용하는 코인이 늘어나는 추세예요.
페이팔 코인이 분위기 바꿀까
테라의 가격 폭락으로 조 단위 피해가 발생한 이후 ‘스테이블 코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예전보다 더 신중해졌어요. 세계 각국 정부는 스테이블 코인이 또 다른 피해를 양산해선 안 된다며 각종 규제 도입을 검토하기 시작했어요.

이런 분위기에서 페이팔의 스테이블 코인이 출시되자 “시장을 활성화할 기회”라는 기대감이 암호화폐 업계에 퍼지고 있어요. 페이팔이 출시한 PYUSD의 경우 미국 달러와 국채 등 안전 자산을 담보로 발행된다는 점에서 테라(UST)와 구별되긴 해요. 하지만 거대 기업이 스테이블 코인을 활용한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만큼, 암호화폐 투자자들 입장에선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침체됐던 분위기도 점점 바뀔 거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겠죠.

전문가들은 페이팔이 암호화폐를 이용한 결제 서비스 분야에서 선도적인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코인 발행’이라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고 있어요. 지난해 6월 페이팔이 컨설팅 기업인 딜로이트와 공동으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유통업체의 75%는 2년 안에 암호화폐 결제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해요. 또한 약 85%의 업체는 ‘코인 결제가 5년 안에 아주 흔한 일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대요.

이런 변화를 감지한 페이팔 입장에선 다른 대기업보다 먼저 ‘결제용 스테이블 코인’을 출시하는 게 중요했을 것으로 보여요. 페이팔이 온라인 결제 서비스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이번에 출시한 코인을 단순 송금이나 결제 외에 ‘디파이(De-Fi)’로 불리는 탈중앙화 금융(Decentralized finance) 분야에 활용할 거라는 전망도 나와요.

PYUSD 출시 다음 날 ‘규제안’ 발표한 연준
페이팔이 PYUSD를 출시하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바로 다음 날인 8일(현지시간) 기다렸다는 듯이 스테이블 코인을 관리·감독하기 위한 새로운 규제안을 발표했어요.
미국 워싱턴 D.C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건물 <로이터연합뉴스>
연준은 은행권을 대상으로 스테이블 코인 발행에 관한 감독 체계를 마련한다고 밝혔어요. 은행이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거나 보유·거래할 때는 연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에요. 스테이블 코인을 취급하기 위해 은행들은 운영 위험, 사이버 보안 위험, 유동성 위험, 불법 금융 위험, 소비자 보호 위험 등 각종 위험 요인을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해요.

일단 연준이 직접 감독할 수 있는 기관인 은행을 통제함으로써 기존 금융감독 체계에서 벗어난 암호화폐 규제에도 활용하겠다는 것으로 보여요. 이런 규제 움직임에 대해선 “정부 차원의 스테이블 코인 통제가 시작됐다”는 견해와 “앞으로 스테이블 코인 발행이 많아질 것이라는 방증”이라는 분석이 동시에 나와요. 지킬 규제가 많아지는 것 자체는 암호화폐 업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스테이블 코인이 곧 제도권 내로 진입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해졌으니까요.

페이팔의 코인 발행을 두고 주요 언론들은 “본격적인 디지털 화폐 시대가 가까워졌다는 의미”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는데요. ‘테라 사태’ 이후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는 듯했던 스테이블 코인은 페이팔의 시도에 힘입어 다시 한번 부활의 꿈을 꾸게 될까요?

<뉴미디어팀 디그(d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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