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부호 살인교사는 무죄”… 광복회 총사령관 박상진 의사 국내 유실 판결문 보니
이보람 2023. 8. 13. 14:54
박중훈씨, 국내 미공개 독립운동 자료 등 일본서 발굴
국내에서 유실됐던 울산 출신 독립운동가인 고헌 박상진 의사(1884~1921)의 사형선고 1심 판결문이 공개됐다. 이 판결문에는 박 의사가 ‘무죄’를 선고받은 부분도 나온다.
박상진 의사 추모사업회와 박 의사의 증손인 박중훈씨는 13일 “최근 2년간 일본에서 박 의사의 독립운동과 관련한 자료 30여건, 600여쪽 분량을 발굴했고, 이 가운데는 유실된 판결문 등 국내 미공개 자료들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박 의사 관련 미공개 자료는 1919년 2월 28일자 광복회 공주지방법원 1심 판결문이다. 이 판결에서 박 의사와 광복회원들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광복회는 친일부호들에게 독립운동에 쓸 돈을 내라는 포고문을 보냈고, 따르지 않는 친일 인사는 사살했다. 악질 친일파 도고면장 박용하, 경북 관찰사 장승원 등이다. 조선총독 암살, 직산과 상동 광산 습격도 시도했다.
판결문엔 박 의사가 ‘무죄’를 선고받은 부분이 나온다. ‘피고 박상진이 음력 6월중 장승원 살해교사를 한 점은 증거가 충분하지 않아 무죄를 선고함’, ‘정치상 부덕한 언동(말과 행동)을 하기 위해 치안상 방해를 한 점, 살인방조, 공갈 등에 대해선 인정할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라는 내용이다. 판사의 이름도 확인된다. 조선총독부판사 와다 시로(和田四郞·재판장), 히키치 토라지로(引地寅治郞), 문양규(文鍚圭) 등 3명이다. 박 의사는 이 재판을 포함해 6번의 재판을 받았다.
박 의사의 아버지인 박시규 옹의 아들 구명운동 관련 자료도 나왔다. 아들의 구명 청원에 대한 일본 조사서, 일본 사령관 우쓰노미야타로(宇都宮太郎)에게 보낸 탄원서 등이다. 조사서엔 ‘조선인 박시규의 청원에 대해 심사했다’는 내용과 당시 조선총독부 내무대신, 외무대신, 법제국장, 내각총리대신 등의 서명·직인이 담겨있다. 박 의사의 사형 집행을 두고 일본 내각에서 여러 차례 회의가 열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박상진 의사의 동생인 박하진 옹의 판결문도 발굴했다. 박하진 옹은 일본인 간수를 포섭, 형에게 필기구를 제공했다. 이를 통해 수감된 독립운동 동지들과 형이 계속 연락을 취하도록 도왔다. 이런 사실로 체포된 그는 1918년 9월 11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1921년 일본 여류시인이자 아나키스트(계급제와 지배를 거부하는 사람들)인 다카무레 이쓰에(高群逸枝·1894~1964)의 시가 담긴 시집, 즉 원문을 확보했다. 일본의 고서점을 통해서다. 박 의사의 죽음을 애통해하면서 발표한 ‘오수시의 제국의 도읍(午睡時の帝都·낮잠시간의 황성)’이라는 시다. 독립투사에게 강도, 살인, 방화의 오명을 씌워 살해한 일본 정부에 대한 분노와 조선 식민지배에 대한 비난을 담은 내용이다. 시는 1921년 헤이본샤(平凡社)에서 펴낸 시집 ‘도쿄는 열병에 걸려있다(東京は熱病にかかっている)’에 수록돼 있다. 국내에서 2011년 이영희 씨의 논문 ‘일제 강점기 일본 근대시 속의 조선묘사’를 통해 한글로 번역된 시구 일부가 처음 소개됐다.
박중훈씨는 “1921년 8월 13일 자 ‘매일신보’ 기사 속 대구감옥 일본인 소장 인터뷰에 나온 ‘박상진의 사형집행 때문에 각의가 서너 차례나 열렸다’라는 내용을 근거로 추적 끝에 이들 자료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당시 조선총독부 측에서 사형 집행을 강행했으나 그 과정에 일본 정계의 반대 입장도 있었다는 내용이 보이는 만큼 다각도의 추가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박 의사는 1915년 의병 계열과 계몽운동 계열을 통합해 광복회를 결성했고, 대표인 총사령에 추대됐다. 광복회는 1910년대 독립을 목적으로 무장투쟁을 준비했던 대표적인 비밀결사단이다. 박 의사는 1918년 체포돼 21년8월11일 38세 나이로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했다.
박 의사는 1963년 건국독립훈장 독립장에 추서됐다. 서훈 등급으로 따지면 대한민국장(1등급), 대통령장(2등급)에 이은 3등급에 해당한다. 이에 서훈 등급을 올리자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국가보훈부는 ‘독립운동 훈격 국민공감위원회’를 통해 박 의사 등 7명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다. 다른 6명의 독립유공자는 김상옥(1962년 대통령장), 이상룡(1962년 독립장), 이회영(1962년 독립장), 최재형(1962년 독립장), 나철(1962년 독립장), 헐버트(1950년 독립장)이다. 결과는 올해 연말쯤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울산=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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