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에서 스타트업 투자 계약서가 무용지물 될 뻔했다는데 [긱스]
스타트업과 투자사의 목적은 스타트업의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투자사는 돈이 부족한 스타트업을 돕습니다. 협력 관계라고 하지만 사실은 서로 이익을 위해 손을 잡고 있죠. 보통 투자 받은 스타트업이 기업 경영을 주도합니다. 투자사는 간혹 시어머니처럼 '잔소리'를 하긴 하지만 경영 간섭을 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투자사는 투자 계약서에서 여러 가지 장치(조항)를 마련합니다. 이를 보통 '경영 사항에 대한 사전 동의권'이라고 합니다. 이 조항을 두고 스타트업과 투자사 간 갈등이 생기기도 하죠. 최근에는 관련 대법원이 판결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최앤리 법률사무소의 최철민 대표가 관련 법적 이슈를 소개합니다.
지난 7월에 스타트업 업계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던 투자계약의 유효성 여부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해당 소송에서 원고인 투자자가 피고인 스타트업에게 투자계약서 상 '경영사항에 대한 사전 동의권' 조항 위반으로 인한 투자 상환금 및 위약벌 청구를 한 것이다. 해당 사건의 에피소드를 판례에 나온 내용을 기반으로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경영 사항 사전 동의권 두고 법정 공방
해당 스타트업(A 회사)가 2016년에 투자사(B 투자자)로부터 신주 발행으로 20억원 투자받았다. B 투자사는 지분 5% 정도 취득했다. 당시 투자계약서에서도 일반적인 투자 계약서 관례와 마찬가지로 '경영사항에 대한 사전 동의권'이 기재되어 있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상환권 청구 및 위약벌 조항이 담겨 있었다. 해당 경영사항에 대한 사전 동의권 조항은 본 투자 벨류에이션(기업 가치)보다 낮은 기업 가치로 투자를 받거나 별도의 자본금 증감 사항 등이 있을 때도 사전동의를 받도록 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A 회사가 2년 뒤인 2018년에 두 차례 B투자자의 사전 동의나 통지도 없이 이사회를 통해 후속 투자를 유치한 것이다. B 투자자가 이에 항의해 시정 요구를 하였다, 하지만 A회사는 이에 불응하고 유상 증자를 강행하였다. 비록 B 투자자가 투자할 때의 기업 가치보다 높은 벨류에이션이었지만 자본금 증감에 관한 사항이었음에도 투자자에게 사전 동의를 받지 않은 것이다.
결국 B 투자자는 법원에 상환권 행사에 따른 투자금 반환 및 위약벌 지급 청구의 소를 제기한 것이다. 주요 경영사항에 대한 사전 동의권을 잠시 살펴보면 이 조항은 현행 스타트업 투자 계약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투자자 보호 조항이다. 투자자는 수억, 수십억 이상에 달하는 거금을 투자하지만 취득하는 지분은 대개 10% 내외이다. 스타트업 투자자는 경영권 인수를 목적으로 하는 PE(사모펀드)와는 달리 여간해서는 20% 이상 지분을 취득하지 않는다.
10% 남짓의 소수 지분으로는 주주총회에서 유의미한 경영권 행사나 거부권 행사가 어렵다. 또한 이사회 참여를 통한 경영 참여도 어렵다. 투자자들은 보통 해당 라운드 투자자들 간 합의로 1명 정도를 비상무이사로 선임하기 때문에 감독, 감시하는 수준에 그칠 뿐이다. 이런 이유로 투자자들은 효과적인 경영 감독과 감시를 위해 중요한 경영 사항에 대한 사전에 동의를 받는 조항을 필수 삽입하는 것이다.
원심(1심)에서 A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소수 주주이자 일부 주주에 불과한 B 투자자가 주요한 경영 사항에 대한 사전동의권을 갖는 것은 상법의 원칙 중 하나인 '주주 평등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주주 평등의 원칙이란 주주는 회사와의 법률 관계에서 그가 가진 주식의 수에 따라 평등한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원리다. 만약 주주 평등의 원칙을 위반해 일부 주주에게만 우월한 권리나 이익을 부여하기로 한 계약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무효다. 원심은 B투자자가 다른 주주들에게 인정되지 않은 우월한 권리를 부여 받았고 투자 자본 회수를 절대적으로 보장받았으며 그 위반 부분조차도 경미한 경우라고 본 것이다.
항소심 판결 이후 스타트업 투자업계가 발칵 뒤집어졌었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해오던 투자 계약서 내용이 무더기로 무효가 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앞으로 체결할 투자 계약서도 투자자를 제대로 보호할 수 없다는 위기감도 생겼다. 투자자가 대법원에 상고를 하였고 2년이 지난 올해 7월에 대법원 판결이 나온 것이다.
대법원 판결까지 계속 바뀐 법원 판단
대법원은 원심(2심)을 뒤집었다. 결국 투자자의 승리로 끝이 났다. 대법원은 주주 평등의 원칙은 인정하면서도 회사가 일부 주주에게 차별적 권리를 부여하더라도 법률이 허용하는 절차와 방식에 따르거나 그 차등적 취급을 정당화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이에 따른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였다. 이번 사건에 적용하자면 1.A 회사와 지배주주(대표이사)가 투자자 B사에 우월적 권리를 부여하는 데 동의하였고, 2.투자자 B 사의 투자로 인해 A 회사의 자금 상황이 좋아져 전체 주주들의 이익 증진에 기여하였으며, 3.경영 사항에 대한 사전 동의권은 회사나 지배 주주의 경영활동에 대한 감시와 감독의 기회를 준 것이고 이는 다른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 판결로 스타트업 투자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이번 판결이 스타트업 업계는 물론 일반 회사법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존의 주주 평등의 원칙을 재확인하면서도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주주 간 차등적 취급이 유효할 수 있다는 것을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며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이 경영 사항에 대한 동의권의 유효성을 인정했다고 해서 모든 사항이 주주 평등의 원칙의 예외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해당 사건은 사실 유상 증자에 대한 것이었다. 유상증자는 기본적으로 이사회 결의 사항이고 이사회가 없을 경우에만 주주총회 보통 결의 사항이다. 만약 해당 사건이 '정관 변경', '스톡옵션 부여'와 같이 주주총회로만 가능한 사안이었다면 법원의 판단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아직 스타트업과 투자자 간 분쟁이 재판으로까지 번지는 경우는 드물다. 재판에 가더라도 대법원까지 가는 경우는 더 찾아보기 힘들다. 스타트업 업계가 워낙 좁기도 하고 평판에도 민감해서 재판까지 가는 상황을 쉽게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스타트업 투자 계약과 관련한 건강한 토론이 활성화되길 바란다.
최철민 최앤리법률사무소 대표
△연세대 법과대학 졸업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공무원 연금공단 감사관
△창업진흥원 예비·초기창업패키지 법률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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