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공인’일까 아닐까 [법조 인앤아웃]

장혜진 2023. 8. 1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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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공인’일까 아닐까.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박병곤 판사는 최근 노 전 대통령 부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에게 징역 6월을 선고하면서 노 전 대통령을 더이상 공적 인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명예훼손죄 성립 여부를 판단할 때 피해자가 공인 인지 여부는 재판부의 주된 고려 요소 중 하나다. 문제가 된 말이나 글이 공직 인물에 대한 공적 관심사에 관한 것이라면 ‘표현의 자유’가 ‘인격권 보호’보다 우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
박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정 의원)이 이 사건 페이스북 글을 올릴 무렵 피해자들은 공적 인물이 아니었다”며 “공적 인물에 대한 공적 관심사에 관한 의혹을 제기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정 의원이 해당 글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것은 2017년 9월이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2008년 2월)한지 약 9년, 사망(2009년 5월)한지 약 8년여가 지난 시점이다. 

“피해자들은 노 전 대통령이 살아있을 때, 특히 대통령으로 재임한 기간 동안에는 우리 사회 전체 구성원들에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공적 인물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서거한 뒤 한참이 지난 지금 (2023년 8월 현재)까지도 역사적인 평가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징적인 인물이며,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재임한 기간 동안 정치인으로서 추구한 이념이나 시행한 정책은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와 현실 정치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판결문 내용 중에서)

박 판사는 “하지만 피고인이 이 사건 페이스북 글을 올린 시점은 이미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8년이 지난 무렵이었다. 그 무렵 이미 서거한 노 전 대통령이나 그의 아내 권양숙 여사가 우리 사회와 현실 정치에 상징적인 수준을 넘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고 볼만한 자료도 없다”면서 “따라서 노 전 대통령이 과거 대통령으로 재임했다는 이유만으로 피고인이 이 사건 페이스북 글을 올릴 무렵 피해자들이 공적 인물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이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박 판사는 또 정 의원의 글이 ‘공적 관심사’에 관한 것도 아니라고 봤다.

“이 사건 글은 ‘노 전 대통령은 박원순 전 시장의 주장처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정치보복 때문에 비극적인 결심을 하게 된 게 아니다. 권 여사와 노 전 대통령의 아들이 뇌물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뒤 피해자들이 부부싸움을 했고, →권 여사는 그 부부싸움 끝에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날 가출을 했으며 → 그로 인해 노 전 대통령은 혼자 남아 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부부싸움’, ‘가출’, ‘혼자 남아 있다가 목숨을 끊은’ 같은 표현은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에 대한 내용으로 객관적으로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이나 사회성을 갖춘 사안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판결문 내용 중에서) 

다만 법조계에선 이 같은 1심 판단에 대해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문제가 된 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핍박에 의한 것’이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며 “글의 맥락상 공적 관심사에 속한다고 볼 여지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박 판사가 판결문에 ‘사망’ 대신 ‘서거’, ‘권양숙씨’ 대신 ‘여사’라는 표현을 줄곧 사용 것을 두고 일각에선 가치 중립적이어야 할 판결문에 판사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 드러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의 모습. 연합뉴스
반면 부장판사 출신의 또다른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이 여전히 공인이라는 것은 결국 피고인 측에서 입증을 해야 하는 문제”라며 “판결문에 ‘피해자가 우리 사회와 현실 정치에 상징적인 수준을 넘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고 볼만한 자료도 없다’고 언급된 것을 봤을 때 피고인 측에서 판사의 요구에도 이에 대한 입증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여전히 공인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별다른 이견이 없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9년 11월 방송통신위원회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다룬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제재한 조치는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방송내용 중 역사적 평가 대상이 되는 ‘공인’의 명예가 훼손되는 사실이 적시됐어도 심의규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공공의 이익에 해당하는 지 여부를 두고는 7대 6으로 팽팽하게 의견이 엇갈렸다. 대법원은 “표현 방식이 다소 거칠고 세부에서 진실과 약간 차이가 있거나 과장된 부분이 있기는 하나, 방송 전체의 내용과 취지를 살펴볼 때 그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된다”면서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봤다. 

반면 당시 조희대·권순일·박상옥·이기택·안철상·이동원 대법관은 “방송은 모욕적 표현으로 사자를 조롱하는 내용으로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하지만 과반수를 넘지 못해 법정의견으로 채택되진 않았다.

장혜진 기자 jangh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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