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통련’이 반국가단체? 여전한 ‘야만의 시간’

김효실 기자 2023. 8. 13.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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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충실히 복기한 ‘한통련 반국가단체 낙인’의 역사

‘애국’이란 무엇인가. 반면교사로 살펴보자. 한 국회의원은 한국스카우트 대원 80여 명이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주최 쪽의 성폭력 사건 부실 대처 등을 이유로 퇴영을 결정하자 이렇게 규탄했다. “최악의 국민 배신” “‘반대한민국 카르텔’이 작용한 것은 아닌지 (규명이 필요하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한 <쿠키뉴스> 인터뷰에서 “과거 종북주사파가 추진했던 대한민국 붕괴 시나리오의 일환”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뉴스를 보고 코웃음 치는 사람이라면 색깔론은 구시대의 유물이자 시대착오적 인식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 비판과 반국가행위를 동일시할 순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옛 논리’로 ‘반국가단체’라는 낙인이 찍힌 채 반세기 동안 차별받는 집단이 존재한다. 1973년 일본에 사는 한국계 재일동포들이 만든 민주화·통일운동 단체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이다. <야만의 시간>(김종철 지음, 진실의힘 펴냄)의 부제는 ‘반국가단체 만들기에 희생된 한통련의 50년’이다. 제목만 보면 ‘민주화 이전 독재정권 시기를 다뤘나’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한통련이 2023년 8월에 설립 50돌을 맞았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책 제목 <야만의 시간>은 현재진행형의 의미를 갖는다. 우리가 바로 지금 ‘야만의 시간’을 함께 살고 있다는 뜻이다.

한통련은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조작 사건에 끼워 넣어져 ‘반국가단체’가 됐다. 정부는 중앙정보부, 보안사, 검찰, 법원, 언론 등을 총동원해 한통련을 국가보안법 제2조에 따른 ‘반국가단체’(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단체)로 못박았다. 독재정권의 눈엣가시였던 정치인 김대중의 구명에 힘쓰고 한국 민주화운동을 국외 시민사회단체에 알려 국제연대를 도모한 결과다.

문제는 민주화 이후 정부들이나 법원도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간첩 조작 사건의 개인 희생자들은 재심으로 뒤늦게나마 무죄를 받았지만, 단체 한통련은 여전히 반국가단체다. 이 때문에 일부 간부는 여권을 받지 못해 입국이나 재외국민 투표가 어렵고 일본에서조차 유무형의 차별을 겪는다.

기자 출신인 저자는 다양한 관련자 인터뷰, 사료 등을 통해 한통련이 반국가단체가 된 전후 과정을 충실히 복기한다. 정치권력이나 기득권 카르텔의 선동 바깥에 서되 섣부른 판단이나 의견 제시를 자제하고 독자가 직접 진실의 모자이크를 짜맞출 수 있도록 돕는다. 잘 만든 영화의 장르 구분이 무의미한 것처럼 <야만의 시간>은 역사서면서 저널리즘, 민주주의 교과서로도 손색없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이탈리아로 가는 길

조귀동 지음, 생각의힘, 1만8천원

한국은 경제·문화 강국이라 얘기하지만 정치는 헛돌고 개혁은 요원하다. 선진국 한국의 다음 경로는 산업화 시대 누적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가부장적 문화가 만연하며 정치 영역에서 ‘포퓰리즘의 약속의 땅’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탈리아에 가깝다고 저자는 말한다. <세습 중산층 사회>에서 1990년대생의 불평등 문제를 짚은 작가 조귀동의 새 책.

이중섭, 그 사람

오누키 도모코 지음, 최재혁 옮김, 혜화1117 펴냄, 2만1천원

일본 <마이니치신문> 서울 특파원을 지낸 오누키 도모코는 이중섭을 알게 되고 7년에 걸쳐 그의 생애와 예술가로서 발자취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이중섭 연구자와 정치·역사 전문가를 만나고, 각종 문헌을 섭렵했으며, 이중섭의 배우자 야마모토 마사코를 인터뷰해 미공개 편지 등을 통해 그의 새 면모를 발굴했다. <이중섭, 편지화>(최열 지음)와 함께 나왔다.

못생긴 서울을 걷는다

허남설 지음, 글항아리 펴냄, 1만6천원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는 중계동 백사마을, 가파른 골목길의 다산동 주택밀집 지역, 좁은 골목길에 옛집이 가득한 창신동, 기술 장인이 몰린 청계천 인근과 세운상가 등을 비추는 책. 저자는 유행과 거리가 멀고 살기 불편하며 미관상 좋지 않다는 ‘재개발’ 이슈를 품은 서울의 거리를 찾아다닌다. 경제논리로 넘어설 수 없는 도시의 생태논리를 찾아서.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문학동네 펴냄, 1만6800원

2016년 <쇼코의 미소>, 2018년 <내게 무해한 사람>을 낸 뒤 5년 만에 엮은 세 번째 소설집.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을 받은 표제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비롯해, 중단편 7편을 모았다. 타인과의 관계가 어그러지는 균열점을 미세하고 치열하게 포착해내는 작가의 ‘장기’가 녹아 있는 것은 물론, 글쓰기와 가족 등을 열쇳말로 삼은 작품들이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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