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은진이 미스캐스팅? 그건 무척 과하고 섣부른 지적이다('연인')
[엔터미디어=정덕현] 지금까지는 깔아놓는 이야기에 불과했다? MBC 금토드라마 <연인>이 드디어 이장현(남궁민)과 유길채(안은진)의 진가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이 드라마는 병자호란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비극을 전제하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가던 남녀가 이 전쟁 통에 어떤 변화를 겪게 되고 그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로에게 애틋한 감정을 갖게 되는가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인지 <연인>은 시작점에서 이 두 사람의 진가를 꺼내놓지 않았다. 오랑캐들에게 쫓겨 남한산성으로 피난하게 된 왕의 소식을 듣고 모든 마을의 청년들이 왕을 구하러 나서자고 충심을 드러낼 때, 이장현은 "왜 도망친 왕을 백성들이 구해야 하느냐?"는 현실적인 질문을 던졌다. 모두가 전쟁에 나갈 때도 그는 피난을 선택했다. 그는 대의보다는 자신의 이익이 먼저라 생각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물론 이장현의 그런 모습은 이기적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일찍이 후금이나 몽골과 거래를 하면서 그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오랑캐니 몰아내야 한다는 식의 명분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저들이 오면 도망치라는 게 그의 현실적인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유길채 역시 마찬가지다. 드라마의 첫 시작에도 등장하지만, 새에게 자신의 미모를 묻고, 미래의 낭군님이 누가 될 것인가에 환상을 갖는 이 인물은 동네 남자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존재지만, 이렇다 할 주체적인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이는 그런 평범한 인물이었다. 오로지 남연준(이학주)에 대한 연심이 있을 뿐이지만, 그의 마음이 은애(이다인)를 향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을 접지 못하는 그런 인물이다.
조선의 시대적 상황으로 바라보면 이처럼 걱정할 것 없이 자라난 사대부의 딸로서 특별히 명랑하고 긍정적인 유길채라는 여성의 모습은 충분히 납득될 수 있는 인물이지만, 현재적 관점이 투영되기 마련인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보면 지나치게 '생각이 없어 보이는' 인물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심지어 이 역할을 맡은 안은진 배우에 대해 미스캐스팅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그건 사실 과하고 섣부른 지적이다.
유길채라는 인물의 초반 설정은 실제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데, 그건 병자호란이라는 전쟁을 겪으며 이 인물이 변화하는 모습을 좀 더 극적으로 담아내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쟁 같은 거대한 비극을 맞이하면서 변화하는 여성상은 이미 여러 명작들 속에 종종 등장하곤 했던 것들이다. 대표적인 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다. 평범하게만 살아왔던 이 인물은 남북전쟁의 참상을 겪으며 변화하고 성장하지 않았던가.
이제 병자호란이 터지고, 오랑캐들이 마을을 도륙하고 여자들을 잡아가는 살풍경한 상황이 전개되면서 유길채는 어쩔 수 없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오랑캐들이 추적하는 위급한 상황 속에서 길채는 은애와 종종이(박정연) 그리고 출산이 임박한 방두네(권소현)를 이끄는 인물이 된다.
추운 한겨울의 날씨에 방두네의 아기까지 받아낸 길채는 아기가 얼어 죽을 위기에 처하자 산 속에 오랑캐들에게 죽은 이의 털옷가지를 챙겨오고, 방두네를 업은 채 눈길을 뚫고 나간다.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은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따뜻한 밥'을 이야기하며 함께 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다. 또 은애가 오랑캐에 의해 겁탈 당할 위기에 처하자 이장현이 필요할 때 쓰라며 건네준 은장도로 오랑캐를 찔러 죽인다.
이런 변화는 유길채만의 모습이 아니다. 그저 피난 가는 줄 알았던 이장현 역시 마을로 돌아와 자신을 챙겨주던 나이 든 머슴이었던 송추(정한용)와 이랑(남기애)가 오랑캐들에 의해 살해된 걸 보고는 칼을 빼든다. 그는 약탈을 일삼는 저들을 하나하나 도륙해가며 끝내 위기에 처한 은애와 일행들을 구해낸다.
병자호란이 터지며 이제 <연인>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이장현과 유길채도 평시 모습과는 다른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과연 이들은 이 전쟁통에 어떤 운명의 엇갈림을 마주하게 될까. 그 끝은 이미 알고 있다. 첫 회에 무수한 적들 앞에 홀로 칼을 들고 서 있는 지친 모습의 이장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몹시 궁금하다. 어떤 아프지만 설레고 그래서 더더욱 애틋한 과정들을 이들은 겪게 될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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