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이 먼저다. 처음에 형태를 잡고 의미를 담는다’

한겨레21 2023. 8. 13.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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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의 글쓰기]문체는 곧 그 사람… ‘지나놓고 보니’ 알게 되는 것
영화 <일일시호일> 속 한 장면. 출처 씨네21

<매일매일 좋은 날>이란 산문집을 원작으로 한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란 일본 영화가 있습니다. 이십 대 주인공이 다도를 배우면서 인생의 의미를 깨달아간다는 내용이죠. 다도를 배우는 동안 취업도 안 되고 결혼을 약속한 사람과 헤어지기도 하고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도 합니다. 그만둘 만도 한데 계속 배웁니다.

형식이 먼저다

일본 다도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규칙이 많더군요. 부엌에서 물단지를 안고 다실에 들어가기부터 어렵습니다. 왼손으로 문을 7부쯤 연 뒤 남은 부분은 오른손으로 엽니다. 물단지를 가슴쯤에 들고 들어오되, 물이 철렁철렁 흔들리지 않게, 팔꿈치는 허리에 붙이고 손가락은 가지런히 잡아야 하고요. 방에 들어설 때는 왼발부터 내디뎌야 합니다. 다다미 한 장을 여섯 걸음으로 걸어야 합니다. 다다미 둘레는 절대로 밟으면 안 됩니다. 찻수건으로 찻잔 닦는 법도 엄격합니다. 수건의 긴 쪽을 당겨 늘린 뒤 앞쪽으로 세 번 접고 다시 크게 한 번 접어 밑을 향해 덮은 다음 잔 안에 넣습니다. 수건을 한 손에 그러쥐고 잔 안에서 히라가나의 ‘ゆ’(유) 자를 쓰라고 합니다.

처음 배우는 사람 머릿속에선 ‘꼭 그래야만 할까?’ 하는 의문이 솟구칩니다. 참다못해 묻습니다. “왜 ‘유’ 자를 쓰죠?” 선생님 대답도 아리송하네요. “왜 쓰냐고 물으니 참 곤란해지네요. 의미는 몰라도 되고 아무튼 그렇게 해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따라 하라는 거죠. 차 한잔 마시는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끓는 물에 티백 휘휘 저어 홀홀 불어 마시면 될 일을 굳이 이렇게 성가시고 복잡한 절차를 따라야 하는지 의심이 듭니다. 다도 수업을 마칠 무렵, 선생님이 덧붙입니다. “차는 형식이 먼저예요. 처음에 형태를 잡고 거기에 마음을 담는 거죠.” “형식만 따르면 너무 형식주의잖아요. 뭔가 의미가 있는 건가요?” “머리로만 생각하니 그런 생각이 들겠죠.”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형식이 먼저다. 처음에 형태를 잡고 거기에 의미를 담는다.’

‘형식이 먼저다’라는 말은 그 자체로 모순입니다. 무엇을 하기 위해 형식이 있는 거지 형식만 덩그러니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그런데도 다도 선생님은 이런 의문에 대해 ‘머리로만 생각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먼저 몸으로 익히라는 겁니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보면 언젠가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순간이 찾아오고, 그럴 때 비로소 의미가 담긴다는, 아니 어떤 의미든 담을 수 있다는 뜻이겠죠. 몸이 저절로 움직이기 전까지는 ‘시키는 대로’ 따라 해야 합니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전통문화공간 ‘무계원’에서 시민이 다도 체험 특강을 듣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반복하는 삶, 그 안에서 축적되는 스타일

당신은 어떤 스타일의 사람인가요? 질문이 뜬금없군요. 바꿔서 물어보죠. 당신은 어떤 스타일의 옷을 좋아하나요? 당신은 어떤 스타일의 신발을 즐겨 신나요? 당신은 어떤 스타일의 사람을 좋아하나요?

‘어떤 스타일의 옷을 좋아하냐’는 질문엔 재미있는 구석이 있습니다. 묻는 건 옷이나 신발처럼 어떤 대상이지만, 실제로는 ‘나(당신)’를 향하고 있습니다. 어색하지만, ‘당신은 어떤 옷을 좋아하는 스타일이야?’가 더 정확한 질문이겠죠.

우리는 무한히 열린 세계에 무한히 열린 가능성으로 살지 않습니다. 옷가게에 걸린 모든 옷을 다 입어보면서 고르지는 않죠. 사람마다 좋아하는 색깔, 크기, 디자인이 있습니다. 이 기준을 동원하면 진열대에 옷이 아무리 많더라도 범위가 확 줄어들죠. 스타일은 취향이라 할 수도, 습관이라 할 수도, 패턴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생활력이 떨어져서 그런지 제 스타일을 정확히 모르겠더군요. 저는 늘 옷 고르는 일이 힘듭니다. 어떤 옷이 저한테 어울리는지 몰라 망설이다 시간을 하염없이 보냅니다. 아내의 지도 편달이 없으면 결코 아무것도 사지 못합니다. 무능력자죠.

등산을 즐기는 사람 중에는 항상 같은 모자를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을 모아 최신 유행의 모자를 선물해도 늘 그 모자를 쓰고 집을 나섭니다. 모자챙은 군데군데 실밥이 튀어나오고 여기저기 땀과 얼룩 자국이 있는 모자. 그게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누구든 취향이 있습니다. 저는 한 사회의 문화가 ‘이유는 잘 모르지만 옛날부터 그렇게 써왔어’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에게도 문화가 있습니다. ‘개인문화’라 불러봄 직한데, 다른 선택이 가능해도 그냥 그쪽으로 손이 가고 발길이 향하고 몸과 마음이 편한 것들의 묶음. 반복에서 온 습관이자 삶의 형식. 그게 평생에 걸쳐 쌓이고 쌓여 취향이나 스타일이 되는 거죠.

누구에게나 특유의 ‘말투’라는 게 있죠. 어린이도 알 수 있게 쉬운 말로 하는 사람도 있고, 고사성어나 어려운 용어를 섞어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빠르게 말하는 사람도 있고, 느릿느릿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정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고, 불량스럽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점만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번 시작하면 10분 이상 떠들어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난 그게 싫어’라고 분명히 말하는 사람이 있고, ‘그건 좀 그렇다’며 말끝을 흐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문제의 원인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는 식으로 논리적인 사람도 있고, 이 얘기 저 얘기 왔다 갔다 하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끝내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말투를 보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미루어 짐작합니다. 말투는 정작 자신은 잘 모르는데, 타인은 잘 압니다.

출처 게티이미지

사인을 만들 때를 떠올려보세요

이제 글쓰기 얘기로 돌아옵시다.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 틈틈이 물어봐야 하는 질문을 꼽으라면, ‘나는 어떤 문체를 갖고 있는가’를 들고 싶습니다. 말투와 마찬가지로 문체도 자신은 잘 모르지만 타인은 압니다.

문체는 기교나 수사법이 아닙니다. 문체는 글쓴이의 목소리이자 글쓴이 고유의 표현 양식입니다. 문체는 곧 그 사람입니다(샤를 바이). 반복을 통해 어떤 동작을 몸에 익히듯, 글쓰기에서 문체를 찾는 것도 글을 쓸 때 자신에게 익숙한 습관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시작을 어떻게 하지? 어떤 예를 갖고 올까? 문장의 끝맺음은 뭐로 할까? 어떤 단어를 쓸까? 단문으로 할까, 복문으로 할까? 글쓰기에는 불변의 원칙이란 게 없습니다. 그렇다고 순간순간 무한수의 가능성으로 글을 쓰는 것도 아닙니다. 그 사이에 자신만의 문체(스타일)로 글쓰기라는 당면한 과제를 헤쳐나가는 것입니다.

자기 사인(서명)을 만들 때를 떠올려보세요. 이것저것 고려합니다. 한글로 할지 영어로 할지, 한 획에 이어서 쓸지 따로따로 쓸지, 이름만 쓸지 성만 쓸지 다 쓸지 등등. 사인이라는 형식 안에 내가 타인에게 보이고 싶어 하는 뭔가를 담으려 했을 겁니다. 부드러움? 강인함? 경쾌함? 간결함? 권위? 같은 것 말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저의 문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내세울 건 아니지만 몇 가지 스타일이 있더군요. 문장은 주로 단문을 씁니다. ‘-다’가 아닌 거로 문장을 끝맺으려 합니다. 전문용어 사용을 피하려 합니다. 주변에서 찾은 얘기를 주제와 강제로 연결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려 합니다(말을 어떻게 끝맺느냐가 그 사람의 성격이 드러난다는 글을 쓰면서 ‘접시에 고춧가루가 하나 붙어 있으면 애써 한 설거지가 도루묵이 된다’는 얘기를 쓰더군요). 대비되거나 모순된 표현을 자주 씁니다(‘시인은 문법과 비문법의 경계 위에서 줄타기하는 광대다’ ‘우리말은 더럽지도 않지만 아름답지도 않다’ ‘감정을 싣지 않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감정을 싣지 않고 해석하는 건 더 어렵다’). 유보적 표현도 자주 쓰더군요(‘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과한 말이지만’ ‘다른 얘기지만’). 웃기거나 과장된 표현을 포함하려고도 합니다(‘이 글을 읽고 ‘재미가 하나도 없다’고 하는 사람보다 ‘재미가 1도 없다’고 하는 사람에게 이가 더 갈릴 것 같다’ ‘망측하게도 한 단어인 ‘너구리’를 잘라 ‘너’는 동댕이치고 ‘구리’만 갖다 쓰다니! 말의 입장에선 순교’).

영화 <작은 아씨들> 속 한 장면. 출처 씨네21

삶을 진지하게 관찰하고 곱씹는 사람의 글

어떤 글에든 문체가 있습니다. 독자 글에서도 고유의 문체를 엿볼 수 있습니다. 매번 글을 보내는 정선님의 문체를 볼까요? 정선님의 글을 읽어보면 기억을 매우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복원하고 있습니다. 화려하기보다는 담백하고 담담하게 감정을 풀어나가더군요. ‘이분은 참 정갈하게 살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엄마의 손칼국수’라는 글만 봐도 삶을 진지하게 관찰하고 곱씹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설명을 합니다.

(엄마는) 얼른 밀가루 반죽을 시작하셨다. 벽장 안에 세워 둔 홍두깨와 밀판을 꺼내오라고 하셨고 부엌 옆방에 돗자리를 까셨다. 엄마가 만드는 칼국수는 콩가루를 섞어서 그런지 고소한 맛이 나고 씹을 때 쫄깃하기도 하였다. 홍두깨질이 거듭되면서 둥글게 뭉쳐져 있던 밀가루 반죽은 점점 더 얇고 큰 원 모양이 되었다.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밀가루를 뿌려가면서 홍두깨에 반죽을 감아서 안에서 바깥쪽으로 두 손바닥으로 살살 밀면서 늘려주는 동작을 옆에서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적당한 얇기로 반죽이 다 밀어지면 가운데를 접고, 접고 또 접어서 칼로 일정한 두께로 썰어서 쟁반에다 가지런히 담았다. 가끔 마지막의 꼬랑지를 얻어서 연탄불에 석쇠를 놓고 구워서 먹기도 했다.

콩가루 반죽을 칼로 써는 모습.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어머니의 음식에 담긴 정성을 쓰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겁니다. 정선님은 어머니가 손칼국수를 만드는 장면을 택했습니다. 육수 만드는 법이나 국수를 먹는 가족의 모습은 택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글도 어떤 경험의 특징적인 장면을 포착하여 별다른 기교를 부리지 않고 구체적으로 보여주려고 합니다. 반면에 세연님의 ‘손자와 밥’이란 글은 다른 느낌입니다. 손자를 위해 음식을 장만하는 모습을 썼는데, 준비하는 음식을 나열하는 방식을 택해 판소리의 휘모리장단처럼 속도감과 리듬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냉장고를 열어 가지, 당근, 양파, 쇠고기, 마늘, 토마토를 꺼내고 냉동실에선 조기를 꺼낸다. 아 참, 밥부터 안쳐야지? 쌀을 듬뿍 푸고 보리쌀도 한 줌 넣어 훌훌 씻어 밥솥에 붓는다. 이제 된장찌개 육숫물을 올려야겠네. 채소들도 손질해야지. 채소들은 여덟 살 손자가 먹을 거니까 얇고 작게 썰어야지, 매우면 안 되니까 풋고추는 빼고. 된장찌개에 넣을 감자와 호박, 두부도 손자 입에 쏙 들어갈 크기로 썰어둔다. 냄비를 꺼내 썰어둔 가지, 양파, 당근을 볶다가 쇠고기를 넣어 함께 볶는다. 한여름 점심때인데다 바삐 서두르며 불 앞에서 젓다 보니 땀이 흐른다. 옆 냄비 속에선 된장찌개가 끓고 있다. 밥솥에선 치익칙 밥이 끓는 소리 요란하다. 마지막에 파프리카를 얹어 쇠고기가지볶음이 다 되었다. 밥솥도 조용하게 밥을 뜸 들이고 있다. 조기도 다 구워지고 된장찌개도 다 되었다.

어떤 글이든 어떤 인생이든 예술이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문체를 가졌는지 탐색할 때 점검해야 할 게 뭐가 있을까요? 사실은 글의 모든 것을 다 검토해야 합니다. 왜냐? 글은 형식이니까요. 문체만이 여러분을 보여주는 것이니까요. 단어, 문장, 문장의 나열 방식, 글의 구성(흐름), 수사법, 글감과 주제를 연결하는 방식, 주제에 대한 글쓴이의 정서나 세계관, 독자를 대하는 태도.

자신의 문체가 어떠한지 살펴보기 바랍니다. 여러 벌의 옷을 입다보면 자기 스타일을 찾아갈 수 있듯이, 반복해서 쓰고 그 속에서 자신이 어떤 스타일의 글쓰기 방식을 좋아하는지 파악해보기 바랍니다. 자신의 문체가 어떠한지 몇 가지라도 말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하다못해, ‘나는 어떤 문체를 갖고 있나?’라고 묻는 것만으로도 더 좋은 글을 쓰게 될 겁니다.

다음 시간에는 나만의 문체를 갖는 몇 가지 방법에 대해 얘기해볼까 합니다.

김진해 경희대 교수·<말끝이 당신이다> 저자

[독자 글]
숨 막히도록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열일곱 분이나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번 호엔 본문이 길어 독자 글에 짧게나마 코멘트를 달기도 어렵군요. 글을 소개하는 거로 대신하려고 하니, 너무 실망하지 않으시길 빕니다. 우리의 목적은 누구의 평가나 칭찬을 받으려는 게 아니라, ‘그저 쓸 뿐’이니!
어머니의 실패한 콩국수 얘기와 골판지로 식탁을 대신할 정도로 가난했던 이민 생활(Eddie Park님), 자연주의 밥상으로 갱년기를 이겨내면서 얻은 즐거움(리아님), 직장 동료와 복숭아를 먹으며 든 상념(선옥님),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고봉밥을 떠올림(영미님), 돈가스김치나베를 먹으며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가 예전에 제사음식을 한꺼번에 끓여 만든 ‘제사죽’을 떠올림(정애님), 장례를 치르며 문상객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려고 애쓰다 정작 본인은 새벽에서야 먹게 된 밥(호진님), 산책을 나섰다가 온갖 나물을 뜯어와 봄나물전을 부쳐 남편과 먹는 즐거움(숙연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좋아하는 김밥도 먹기 어려워질 것 같아 느끼는 안타까움과 무력감(혜욱님), 문화에 따라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차이(원영님), 가난할 때 먹던 찐 감자를 지금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소중한 음식을 남김없이 먹음(기섭님), 목포 여행을 하면서 먹은 민어 요리(영준님), 항암치료 중인 아내를 위해 희망을 담아 만드는 음식(kccsd기사협님), 밥동무로 정성껏 식사 기도하는 동료 선생님 이야기(은광님), 오랜만에 본가에 들러 전복삼계탕을 먹고 다시 힘을 내게 된 학생(담이님), 주변 사람에게 맛보게 하는 게 취미가 될 정도로 독특한 매력의 평양냉면(형주님). 정선님과 세연님은 본문에서 다뤘으니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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