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놈놈놈’의 모티브가 된 사건···조선은행의 만주진출에서 비롯됐다 [사-연]
남산에서 내려와 볼까요. 남산을 둘러 돌아 내려오는 길인 소파로와 소월로는 일제가 서울성곽을 허물고 조선신궁 참배길을 만든 길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길을 따라 내려와 시청 방향으로 틀면, 한국은행과 신세계백화점, 서울중앙우체국이 둘러싸고 있는 한국은행 앞 사거리에 닿게 됩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수많은 인파가 오갔던 광장이었고, 경성의 경제중심지였기도 했습니다. 지은 지 백여 년이 넘은 근대건축물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고, 그중 일부는 온전하게 그 기능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이곳 ‘선은전 광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 보겠습니다.
조선의 근대 우편제도의 도입은 1884년 세워진 우정총국을 시작으로 합니다. 하지만 우정총국의 개국 축하연에서 갑신정변이 발발하였고, 이 사건의 여파로 이후 조선에서는 수년간 우편제도의 도입이 중단됩니다. 갑오개혁 이후에야 제도가 정비되며 우편제도가 부활하였고, 전국에 통신국과 우체사가 설치되었습니다. 하지만 몇 년 되지 않아 1905년 한일통신합동조약이 맺어지며 우리의 체신 업무가 통째로 일본에 넘어가게 됩니다. 우정총국은 후에 경성우편국으로 흡수됩니다.
1909년 통감부는 ‘한국은행조례’를 공포하고, 한국 정부와 일본인이 각각 30%, 68%씩 출자해 자본금 1,000만원의 한국은행을 설립합니다. 한국은행은 제일은행 조선지점의 업무와 역할, 점포와 직원을 전부 승계했습니다. 하지만 업무를 시작한지 채 10개월이 되지 않아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었고, 이후 일제는 한국의 명칭을 다시 조선으로 환원하기 시작합니다. 1911년 시행된 조선은행법에 따라 한국은행도 조선은행으로 개칭합니다.
조선은행이 규모를 확장하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대륙 침략이 본격화되면서입니다. 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동시에 일본은 만주 점령 야욕을 노골화했습니다. 이 때 침략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조선은행을 이용합니다. 1915년 조선은행 총재로 부임한 쇼다 가즈에는 ‘조선은행의 역할은 일본-조선-만주를 관통하는 경제 안정대, 소위 엔 블록을 결성하는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이듬해 출범한 데라우치 내각은 더 나아가 ‘선만일체화(鮮滿一體化)’를 내세워 조선과 만주를 하나로 만들어 지배하며 조선은행이 만주의 중앙은행 역할을 겸하도록 했습니다.
이는 조선은행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지는데, 조선은행은 일찍이 일본 정부에 만주 진출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의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로 인해 유출된 일본은행권을 해외 시장인 만주에서 보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주 지역의 일본인이나 상인들에게 조선은행권으로 대출을 해 주고, 회수는 일본은행권으로 하면서 자산을 확보하고자 함이었습니다.
하지만 호황기에 만주지역에서 무분별하게 시행된 대출과 불량채권들의 연체로 조선은행은 경영 악화의 수렁에 빠지게 됩니다. 1920년대 후반 닥친 세계 대공황과 이후 만주에서의 철수는 부실한 조선은행에 2연타를 날리는 격이었습니다. 1932년 만주중앙은행이 출범하고 만주국폐의 금권화에 따라 조선은행권은 1935년 말로서 만주 내 유통이 전면적으로 금지되었습니다. 만주 일대의 지점들도 만주흥업은행에 넘어갔습니다. 이 시기 조선은행은 중앙은행임에도 일본정부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아 연명했습니다.
1940년대들어 전쟁이 장기화되며 인플레이션이 심해졌고, 이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통화가 증발했습니다. 일본 본토 인플레이션의 방어선 역할을 한 조선은행권은 일본은행권이나 대만은행권에 비해 월등히 통화 증발 추이가 빨랐습니다. 조선은행은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을 등에 업고 이윤을 창출하고 규모를 키울 수 있었지만, 이를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과 손실, 피해는 결국 식민지 조선이 다시 떠맡아야 했습니다.
<참고문헌>
ㅇ정수진, 「서울의 인문학」, 창비
ㅇ김기호,「서울 남촌 : 시간,장소,사람」, 서울시 간행물
ㅇ차현진,「중앙은행 별곡」, 인물과사상사
<사-연 지난화 보기>
ㅇ사-연 지난화 모음
https://www.mk.co.kr/news/running-story/S00010078
ㅇ 식민지 경성의 중심, 남촌의 근현대 역사를 따라 걷다 (1) / 질퍽대는 동네에 일본인 몰려왔습니다...화려한 불빛이 슬퍼지네요 [사-연]
https://www.mk.co.kr/news/premium/10793740
ㅇ 식민지 경성의 중심, 남촌의 근현대 역사를 따라 걷다 (2) / 일제가 남산에 세운 신궁 허물고...그 자리를 채운게 스키장?
https://www.mk.co.kr/news/premium/10799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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