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DNA’ 뭔가 했더니… 한 연구소서 ADHD 환자 이르는 말이었다

김유나 2023. 8. 1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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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ADHD 환자는 ‘왕의 DNA’ 가지고 태어나
왕자·공주처럼 대하고, 약물 없이 치료할 수 있어”
전문가들 “아이 상태 빠른 진단과 치료가 필요”

최근 교육부 직원이 교사에게 보냈다고 알려진 글에 있는 ‘왕의 DNA를 가진 아이’란 표현이 한 민간연구소가 자주 쓰는 표현인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되고 있다. 해당 연구소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아이들은 ‘왕의 DNA’가 있는 아이들이어서 왕자·공주처럼 대해줘야 하고, 약물 없이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ADHD는 빠른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3일 교육계에 따르면 A연구소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자폐나 언어장애, 학습장애 등을 약물 없이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해당 커뮤니티 운영진은 “ADHD 환자는 ‘왕의 DNA’를 가지고 태어났고, 우뇌가 극도로 발달한 ‘극우뇌’”라며 “이 아이들에게 ‘좌뇌 보강’을 시켜야 한다”는 글 등을 올렸다. 해당 글에는 “좌뇌보강을 통해 질서나 규칙을 지키지 않는 점 등이 부분 개선된다. 약 먹인 상태보다 더 좋아진다”며 한 달에 200만원 내외의 금액을 내면 ‘좌뇌 보강’을 할 수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지난 8일 공교육 정상화 교육주체연대가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교권확보를 위한 특단의 대책 수립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해당 커뮤니티에서는 ADHA 등으로 인한 아이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한 커뮤니티 이용자는 자신의 아이가 ‘왕의 DNA’를 타고났다며 “아이가 매일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져 깨뜨리고, 이곳저곳에 오줌을 싼다”며 “보강 시작 초기에는 살짝 눈치를 보면서 그런 행동을 했다면 지금은 그런 기색도 없다. 그런 모습을 보면 고통스럽지만 밝은 내일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주군을 모시는 신하 입장으로 (아이를) 대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아이가 하늘로 힘차게 비상할 날이 올 테니 그때까지 잘 참아야겠다”는 각오도 남겼다. 

최근 논란이 됐던 교육부 사무관이 교사에게 보냈다는 글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초등교사노동조합이 공개한 글에는 “하지 마, 안돼, 그만 등 제지하는 말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왕의 DNA를 가진 아이이기 때문에 왕자에게 말하듯이 듣기 좋게 돌려서 말해도 다 알아듣습니다”, “지시, 명령투보다는 권유, 부탁의 어조로 사용해주세요”, “극우뇌 아이들의 본성“ 등의 표현이 담겨 있다. ‘왕의 DNA’, ‘극우뇌’ 등의 표현은 일반적으로 많이 쓰지 않는 표현이라는 점에서 교육부 직원도 이런 연구소의 영향을 받은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실제 해당 연구소가 주장하는 치료법에는 ‘(아이가) 갑의 입지를 느껴야 유익한 신경전달물질이 생산되므로 내려다보지 않기’, ‘왕자 또는 공주 호칭 사용해 우월한 존재임을 확인시켜주기’, ‘사과는 뇌 기능을 저해하는 요소’, ‘고개를 푹 숙이는 인사는 자존감을 하락시킨다’ 등 교육부 사무관의 편지에 나오는 내용이 상당수 포함돼있다.
지난 2022년 자신의 자녀 초등학교 담임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한 교육부 5급 사무관이 교체된 담임에게 보낸 편지. ‘왕의 DNA’ 가진 아이라는 표현이 나와 있다.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 제공
전문가들은 이런 잘못된 정보가 ADHD 등 정서·행동장애에 대한 편견을 심화시키고 혐오를 조장한다고 우려한다. 아이에게 정서·행동장애가 있는 것으로 추정될 경우 아이의 상태를 진단받고 인정하는 것이 교육의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유희정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너무 겁내지 말고 일단 치료가 필요한지부터 전문의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라며 "아이의 피해를 우려한 지나치게 방어적인 태도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근 ADHD로 병원을 찾은 어린이와 청소년 환자는 급증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ADHD 진료를 받은 만 6∼18세 어린이와 청소년은 2018년 4만4741명에서 지난해 8만1512명으로 82.2% 늘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다만 진료 인원이 늘어난 것은 증상을 가진 아이가 급증했다기보다는 ADHD에 대한 인지도가 늘면서 전보다 더 병원을 찾는 아이가 늘어난 영향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인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세계적으로 ADHD 진단을 받은 아동·청소년이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는데 진단 기준은 바뀌지 않았고, 유병률 자체가 늘었다기보다는 질환에 대한 인식이 강화됐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최근에는 선생님들도 ADHD가 병이고 치료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겼다. 실제로 (ADHD는) 치료받으면 증상이 많이 호전되는 등 치료의 이득이 크고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세종=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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