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축구 이긴 호주 예술, 유럽에 기죽지않은 이유 [함영훈의 멋·맛·쉼]
[헤럴드경제(호주 애들레이드)=함영훈 선임기자] FIFA 여자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호주가 ‘예술 축구’로 불리는 프랑스를 꺾고 4강에 진출했다. 아시아·태평양의 희망이다.
축구에 까지 예술을 붙이는 프랑스는 유럽 예술의 중심인데, 유럽과 아시아 여러나라 사람들이 태평양 남단 호주 대륙을 점유해 연방을 만든 이후 원주민과 함께 꽃피운 호주 예술은 어떨까.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의 성립 역사는 230여년. 그들은 어떤 문화예술 족적을 지니고 있으며, 어떤 모습의 예술을 구현하고 있을까.
주지하다시피 호주는 영국이 1788년부터 무단 점거해 원주민인 에보리진 등의 땅을 잠식하면서 이민을 시작한 땅이고, 이후 많은 국적의 이민자들이 모여 형성한 나라이다.
호주라는 나라의 역사는 짧을지 몰라도, 지각변동 없는 가장 오래된 대륙이고, 퍼스트 오스트레일리언의 역사가 매우 길며, 주류층이 조상으로 여기는 유럽의 역사도 결코 짧지 않다. 시장에도, 와이너리에도, 거장의 예술적 채취가 묻어나는 점도 이채롭다. 우리는 호주의 문화예술을 살필 때, 230여년 연방국가 형성 만을 머릿속에 둘 때, 큰 오류에 빠지고 만다.
호주의 대표적인 공공 미술관은 멜버른에 있는 빅토리아 미술관과 애들레이드에 있는 남호주 미술관이다. ▶헤럴드경제 3월18일자 ‘멜버른 문화·예술·축제의 중심 V미술관·F광장’ 참조
▶빅토리아 다음 규모 남호주 미술관= 호주에서 두 번째로 큰 미술관 남호주 아트 갤러리(AGSA:Art Gallery of South Australia)는 애들레이드 중심부 녹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토렌스강에서 멀지 않다. 2023년 8월 FIFA여자 월드컵 축구대회 애들레이드 팬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에서 불과 300m 떨어져 있다.
이곳은 142년 역사를 갖고 있으며 4만5000여점의 예술작품을 소장한 남호주 최고 권위의 미술관으로, 비엔날레, ‘네이처 오브 컬쳐’, ‘리씽킹 오스트레일리언 아트’, ‘타르난티(Tarnanthi) 원주민 예술축제’, ‘엘더 윙’ 등 특별전시가 열린다. 미술관이 창립되기 25년전에 생긴 남호주 예술협회의 오랜 숙원사업으로 건설됐다.
도시의 문화구역 한복판에 있다. 노스 테라스 문화구역의 일부인 이 갤러리는 서쪽으로는 남호주 박물관, 동쪽으로는 경제학,이학 등에 강세를 보이는 호주 명문 애들레이드대학이 있다. 주립도서관, 박물관, 파크랜드도 멀지 않다.
빅토리아 여왕은 이 미술관을 위해 작품을 대여해줬고 초창기 미술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엘더 경이 사망 전 작품구입에 쓰라고 막대한 자금을 기부했다. 엘더 경의 기부는 호주 공공미술관 최초의 고액기부였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오스트레일리아 예술 전승도= 초입에는 2018 비엔날레에 출품됐던 조각품 ‘더 라이프 오브 스타’(The Life of Stars)(린디 리)가 지키고 있다. 스테인리스 스틸 표면은 낮에는 주변 환경을 반사하고 밤에는 빛을 발산하며 3만개 이상의 천공된 구멍은 내부에서 조명을 비추었을 때 우리 은하의 지도와 유사하다.
로비의 괘종시계 컨셉트의 진자운동을 하는 설치미술은 애들레이드 시간의 영속성과 문화적 균형감을 상징한다.
남호주의 행정에 관여했던 헨리 에드워드 폭스영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살던 자신의 증조할아버지 소장품을 기증했는데, 이 갤러리에 들어가 처음 맞는 전시관에 걸려있다. 어린 아이가 새에게 먹이를 주는 풍경이다. 호주 정부의 문화기부운동에 오스트리아-오스트레일리아 두 나라에 걸쳐 대를 이은 가문이 동참한 것이다.
남극 바로 앞 섬 태즈마니아 출신 존 글로버의 1849년 평화로운 서정의 풍경화도 걸려있다.
유럽의 회화로는 스페인 고야, 이탈리아 성전 화가 바르톨로메오 파사로티, 프란체스코 과르디, 폼페오 바토니, 프랑스 피사로, 장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 영국의 윌리엄 홀먼 헌트,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등의 작품들이 소장돼 있다. 조각에는 로뎅, 무어, 허쉬톤, 여류조각가 바바라 헵워스 등의 작품을 전시한다.
▶원주민-아시아 수천년 예술, ‘호주인상파’도= 유럽 작품 외에, ▷초기 유럽 정착인이 남호주에 와서 처음 본 식물들의 그린 그림첩(엘리자 스트로브리지 1818 영국 태생 1897 호주서 사망), ▷퍼스트 오스트레일리언, 즉 원주인의 목각 예술품, 배젓는 노에 그린 조각, ▷원주민의 목걸이, ▷전시실 한 칸을 온통 붉은색 실의 다채로운 얽힘으로 표현한 설치미술, ▷기차의 부설과 금광 채굴 등 호주개척의 역사에 동원된 동-서양 노동자의 앙상한 몸과 그들의 고단한 헌신을 담은 역사모형, ▷동서양 도자 예술품 등도 있다.
한국 파라다이스시티, 일본 나오시마에 있는 노랑 호박 전시실에선 비디오아트를 볼 수 있다.
호주를 대표하는 예술인들로는 19세기 후반에 활약한 톰 로버츠, 호주 인상파(하이델베르크 학파), 20세기 여성 모더니스트들, 한스헤이센, 제임스 애쉬톤, 제퍼리 스마트 등이 있다. ‘호주 인상파’인 제퍼리 스마트의 1946년작 ‘휴일 리조트’는 강변에 별다른 시설이 없어도 편안히 휴식을 취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담았는데, 19세기 후반 조르주 쇠라의 ‘휴식하는 노동자’ 그림을 연상케 한다.
다문화 존중 첫 자치 도시인 남호주(애들레이드)의 정서에 걸맞게, 남호주 아트갤러리에는 호주내 다른 도시와는 달리, 이른시기인 1904년부터 아시아 작품을, 1939년부터 원주민 예술가의 작품을 걸기 시작했다. 요즘 이곳 여행을 해보면, “참 착한 도시이구나”라는 점을 몸소 느낄 수 있다.
▶퍼스트 오스트레일리안 문화예술에 진심인 남호주 공공미술= 지금은 남호주 아트갤러리 내에 원주민 유산과 작품이 30% 가량 될 정도로 많다. 특히 ‘쿨라타추타(Kulata Tjuta)’ 원주민 민속예술그룹과 활발하게 협업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시아작품도 20% 이상 되는 듯 하다.
비엔날레는 파트너 갤러리로 독일계 명칭을 가진 ‘잠스타크(Samstag) 박물관’ 뿐 만 아니라 애들레이드 식물원, 머큐리 시네마 및 잼팩토리 등에서도 다채롭게 진행되는 도시축제이다.
다채로운 상설전시 이외에, 18세기 화가-계몽가-문학가 였던 영국예술가를 기리는 ‘램지(Ramsay) 아트 프라이즈’ 특별전시가 오는 27일까지의 일정으로 열리고 있다.
남호주 아트 갤러리에서 걸어서 3분이면 가는 남호주 박물관(South Australia Museum)은 호주에서 가장 큰 원주민 미술, 역사문화, 민속, 화석 및 고생물학 컬렉션 소장 기관이다.
1856년에 설립됐으며, 1965년 초기 정착 리더 중 한명의 이름을 딴 라빙톤 보니손 분수를 메꾸고 어룡의 척추뼈를 컨셉트로 이 박물관을 리모델링했다.
▶“We Are The World” 노래 분위기 같은 호주 예술문화= 1997년 박물관 내에 원주민 문화 갤러리를 따로 특화시키기도 했다. 호주 정부는 이 박물관의 목적에 대해 ‘세계적 수준의 컬렉션 기법을 통해 호주 원주민 및 태평양 문화, 지구 및 생명 과학에 중점을 둔 새로운 지식을 만들고 공유하는 것’으로 못박았다. 원주민 보호, 자연과 생명의 존중을 전파하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다른 나라 뮤지엄과는 달리 비장한 느낌도 있다. 남호주의 원주민 커뮤니티 ‘카우나(Kaurna)’가 참여한다.
박물관에는 400여개의 유물과 표본이 있다. 퍼스트 오스트레일리언의 문명과 고생물학, 토착유물, 남호주의 생물다양성 표본 뿐 만 아니라, 고대이집트 등 다른 문명에 관한 것들도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박물관의 초대 큐레이터의 족적을 기리는 의미의 워터하우스 미술상 전시회, 호주와 남극대륙의 상호작용에 대한 족적을 담은 ‘남극 횡단: 호주 경험’ 등 특별전이 열렸고, 애들레이드 페스티벌 조직위, 오스트레일리안 지오그래픽 등이 이 박물관을 지원하고 있다.
“200년 역사에 뭐가 있겠어”라는 선입견을 무색케 할 정도로 호주의 미술관, 박물관은 다채로운 면면을 자랑한다.
유럽의 내로라 하는 미술관 보다 호주의 미술관, 박물관이 뛰어난 점은 ▷유럽 못지 않은 저명 예술가 작품 컬렉션 다수 보유 ▷유럽에서 자라다 호주로 이주해 죽을때까지 살던 이민 화가들의 화풍 변화, 즉 삶터와 예술 간의 상관관계 조망 ▷수천년 원주민 미술의 재발견 ▷차별시대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차별없는 세상을 지향하려는 강력한 메시지의 발현 등을 들수 있다.
이게 끝이 아니다. 호주 예술문화는 ▷아시아 문화, 미술, 조각, 건축과의 접목도 활발하게 벌이고 ▷시장에 아인슈타인 장보는 모습을 그려넣거나, 와이너리에 살바도르 달리의 거대 조각을 세워놓을 정도로 생활 친화적이라는 점 ▷지구에서 지각 변동 없이 가장 오래된 대륙의 특성을 담은 지질,고생물,선사 유적과 문화를 보여준다는 점 등도 유럽 보다 우월한 부분으로 평가받는다.
호주 여자 축구가 유럽 예술축구를 제압했으니, 토털 컬쳐의 허브라는 자부심으로, 내친 김에 우승까지 노려볼 만 하겠다.
■FIFA 여자월드컵 계기, 호주 애들레이드-탕갈루마-브리즈번 여행, 글싣는 순서
▶2023.8.7. ①포근하게, 짜릿하게..애들레이드의 매력 ②애들레이드, 첫 다문화 자치도시의 정감 ③애들레이드 남호주 오션로드 700㎞ 비경
▶2023.08.13. ④예술축구 이긴 호주 예술, 유럽에 기죽지않은 이유
▶2023.08.15. ⑤호주에선 왜 남호주 와인만 강세일까..벤 농가의 하루 ⑥애들레이드 힐스 로프티 고택이 주는 작은 평화 ⑦남호주 해상마차 타봤니..코알라 안아주기는?
▶2023.8.17. ⑧탕갈루마 야생 돌고래 먹이주기 감동여행 버킷리스트 ⑨K-드라마 같은 탕갈루마 야생돌고래-인간 40년 우정 ⑩퀸즈랜드 탕갈루마 바다 15척의 난파선, 보물선? ⑪탕갈루마섬 사막 질주, 펠리칸 대화..BTS 아미도 ⑫퀸즈랜드-탕갈루마, 우영우 혹등고래 가장 역동적
▶2023.8.20. ⑬브리즈번 ‘퀸즈워프’와 올림픽 준비 현장 가보니.. ⑭브리즈번 강남스타일- 사우스뱅크 르네상스 ⑮브리즈번 스토리대교, 낮엔 오르고, 밤엔 취하고.. (16)파란만장 보타닉과 더 밸리의 나이트 피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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