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부 투자금 ‘전액 반환’ 약정···대법 “주주평등원칙 위반, 무효”

김희진 기자 2023. 8. 1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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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대법원. 경향신문 자료사진

일정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특정 주주에게만 투자금 전액을 반환하도록 한 약정은 주주 전원이 동의했더라도 ‘주주평등원칙’에 어긋나 무효라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투자자 A씨 등 3명이 B사 등을 상대로 낸 투자금 반환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 판결을 일부 파기하고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A씨 등은 2019년 6월 바이오테크놀로지 회사 B사와 신주 인수계약을 맺었다. B사 주식 약 16만6000주를 A씨 등 3명이 2억5000만원에 인수하는 게 계약 조건이었다. 다만 B사가 개발 중인 조류인플루엔자 소독제를 2019년 10월까지 질병관리본부 제품등록, 12월까지 조달청 조달등록을 마치지 못하면 투자금 전액을 반환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B사 대표이사가 이해관계인으로 계약에 참여했고, 기존 주주이자 연구개발 담당자 C씨도 투자계약에 따른 의무를 연대보증했다.

B사가 제품을 기한 내 질병관리본부와 조달청에 등록하지 못하자 A씨 등은 약정에 따라 투자금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냈다.

1·2심 법원 판단은 엇갈렸다. A씨 등이 B사와 맺은 약정이 ‘주주평등원칙’에 부합하는지가 쟁점이었다. 주주평등의 원칙은 주주가 주주로서 갖는 법률관계에 관해 원칙적으로 보유한 주식만큼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상법상 원칙이다. 만약 회사가 일부 주주에게만 우월한 권리·이익을 주는 약정을 맺을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무효가 된다.

1심은 주주 전원이 투자계약 체결에 동의했으므로 주주평등원칙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봤다. B사가 A씨 등 3명에게 투자금을 돌려줘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2심은 이들이 맺은 약정이 주주평등원칙에 어긋나 무효라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조항은 B사 주주인 A씨 등에게 투자자본의 회수를 절대적으로 보장하면서 다른 주주에게 인정되지 않는 우월한 권리를 부여했다”고 했다.

대법원도 B사가 A씨 등에게 투자금을 반환할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 조항은 B사의 자본적 기초를 위태롭게 하고 (A씨 등이) 주주로서 부담하는 본질적 책임에서조차 벗어나게 한다”며 “특정 주주에게 상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초과하는 권리를 부여한 것으로, 법질서가 허용하지 않는 강행법규 위반에 해당한다”고 했다. 이어 “기존 주주들 전원이 동의했더라도 주주평등의 원칙을 위반해 조항의 효력이 없다”고 했다.

다만 A씨 등이 회사가 아닌 대표이사·C씨와 맺은 계약 조건은 주주평등원칙이 직접 적용되지 않는 문제로, 투자금 반환 의무와 연계성 등을 따져 다시 재판하라고 했다. 대법원은 “주주와 다른 주주·이사 등 개인 사이 계약에는 주주평등의 원칙이 직접 적용되지 않아 주주와 회사가 체결한 계약 효력과는 별개로 봐야 한다”며 “2심은 대표이사와 C씨가 부담하는 투자금 반환의무 존재 여부를 심리·판단했어야 한다”고 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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