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DNA 가져”… 교사에 ‘내 아이 지도 지침’ 보낸 공무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희원 2023. 8. 1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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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에게 편지 보내 “잘못해도 편들어달라” 요구
‘아동학대’ 조사한 검찰 “부모가 교권 침해” 결론
“내 아이처럼 남의 아이도 소중해…역지사지 필요”

지난 10일 저녁부터 이틀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키워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왕의 DNA’ 입니다. 어디에서 나온 말일까요. 조선 왕조 전주 이씨의 후손을 얘기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지난달 말부터 우리 사회 화두로 떠오른 ‘교권 침해’ 이슈의 연장입니다.

13일 초등교사노조에 따르면 교육부 사무관 A씨는 지난해 11월 3학년 자녀의 담임 교사 B씨를 아동학대로 신고했습니다. B교사가 자신의 아이를 방임했고 따돌림을 조장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에 B교사는 관련 법령에 따라 즉시 직위 해제됐습니다. A씨는 늦은 밤 B교사에게 자주 전화했으며, 자신이 교육부 사무관임을 강조하면서 아이 2학년 때도 민원을 통해 담임을 교체했다는 등 협박성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왕의 DNA’ 논란은 그 이후에 등장합니다. A씨는 B교사의 직위 해제 후 교체된 담임에게 자신의 아이를 대할 때 지켜야할 행동지침을 편지로 전달했습니다.

노조가 공개한 편지의 내용은 5가지로 요약돼 있습니다. 1번은 “하지마, 안돼, 그만!! 등 제지하는 말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입니다.

노조에 따르면 A씨의 아이는 ‘수업 방해와 다른 학생들에 대한 폭력 행사로 지도가 필요한 학생’이었습니다. 편지를 보면 A씨도 아이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A씨는 자신의 아이에 대해 “강력제지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분노가 솟구쳐오른다. 지시하거나 명령하는 식으로 말하면 아이는 분노만 축적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A씨는 담임교사에게 ‘하지 말아주십시오’ 등 부탁의 말이 아닌 ‘하지 않습니다’라는, 상당히 위압감을 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마치 지침을 ‘하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논란의 ‘왕의 DNA’ 언급은 4번에서 나옵니다. A씨는 “지시, 명령투보다 권유, 부탁의 어조를 사용해 달라. 왕의 DNA를 가진 아이이기 때문에 왕자에게 말하듯이 듣기 좋게 돌려서 말해도 다 알아듣는다. 반장, 줄반장 등 리더 역할을 맡게 되면 자존감이 올라 학교 적응에 도움이 된다”고 적었습니다.

백번 양보해 부모로서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부탁한 것이라고 치더라도, ‘왕의 DNA를 가진 아이이니 왕자에게 말하듯 해달라’는 것이 대체 무슨 뜻인지 그저 궁금할 따름입니다. 모든 아이들이 자기 집에선 다 공주이고 왕자이지만, 학교 선생님도 그렇게 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보통 상식을 가진 부모는 하기 힘들 것 같은데 말입니다.

지난해 말 자신의 자녀 초등학교 담임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한 교육부 5급 사무관이 교체된 담임에게 보낸 편지. 자신의 아이를 대할 때 지켜야할 내용을 담았다.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 제공
가장 심각한 것은 3번입니다. A씨는 담임에게 “또래와 갈등이 생겼을 때 철저히 편들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미 잘못을 알고 있어서 감정을 충분히 읽어주시면 차츰 행동이 수정된다”고요. 마치 아이가 잘못할 것을 알고 당부하는 말 같습니다. 

자기 아이가 잘못해도 철저히 편들어달라는 말, 같은 학부모로서 경악스럽습니다. 그런 부당한 일을 교사에게 요구하다니요. 만일 교사가 그러겠다고 해도 그걸 보는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어릴 적부터 공정과 상식이 통하지 않은 세상을 배우겠지요.

게다가 상대 아이는 어떻습니까. A씨의 요구는 잘못도 없는 아이를 친구들 앞에서 선생님께 혼나게 만들라는 말입니다. 특별한 케어가 필요한 내 아이를 위해 다른 아이의 감정과 자존감은 짓밟혀도 된다는 생각인지요. 더욱이 다른 부처도 아닌 교육부 공무원이 이런 태도를 갖고 있다는 것에 참담함을 느낍니다.

A씨의 행동은 분명 잘못됐습니다. 이는 교사들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닙니다. 검찰도 A씨의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했습니다.

대전지방검찰청은 B교사의 행위가 아동학대가 아니라고 판단해 지난 5월 사건을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검찰은 피의사건처분결과통지서에서 A씨에 대해 △아동학대를 주장하며 B교사의 직위해제 등 처분을 요구하며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을 시 언론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했으며 △교체된 담임교사에게 자녀를 특별히 대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해 반복적으로 부당하게 간섭’했고 △B교사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침해하는 ‘명예훼손’을 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자료와 진술 등을 종합해 볼 때 “본 건을 교육활동 침해 행위로 인정한다”고 적시했습니다. B교사의 아동학대 혐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신고자인 A씨의 교권 침해만 확인된 것입니다.

학교는 6월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 A씨 행위를 명백한 교권 침해로 판단하고 서면 사과와 재발 방지 서약 작성 처분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노조에 따르면 A씨는 이 처분을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이에 대해 교육부는 “해당 사무관은 1월 1일 자로 대전시교육청으로 전출 간 상황”이라며 “대전광역시교육청에 A씨에 대한 조사개시 통보 후 직위해제를 요청했다. 조사 결과에 따라 엄중하게 조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부모가 되어보니 아이 문제 앞에서 객관적이고 이성적이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평범한 아이의 부모도 그런데 특별한 보살핌이 필요한 친구들의 부모는 더욱 민감할 수 있겠지요. 주호민 작가 부부의 교사 고소 사건도 이와 비슷한 상황으로 보입니다.

이해는 갑니다. 그러면서도 복잡한 마음이 듭니다. 어떤 아이든지 타인과 어울리며 어엿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교육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나와 다른 친구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태도 또한 모두가 배워야지요.

하지만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가짐으로 해결될 수 없는 희생까지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특별한 아이들의 부모들도 대부분 그것을 원치 않습니다. 오히려 몇몇 학부모의 비뚤어진 자식사랑 때문에 다른 아이들까지 ‘문제학생’으로 낙인찍힐까 걱정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내 자식 소중한 만큼 남의 자식도 소중합니다. 내 자식이 왕자·공주면, 남의 자식도 왕자·공주입니다. 그리고 교사도 소중한 누군가의 자식이지요. 지극히 상식적인 얘깁니다. 지금 우리 교육 현장에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가 필요해 보입니다. 독자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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