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년 만에 알려진 731부대원 추적기‥뒤늦은 단죄 가능할까

신수아 newsua@mbc.co.kr 2023. 8. 1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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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어떤 '이름들'이 발견됐다. 83년 만이었다. 한 일본 학자의 노력 끝에 1940년 작성된 731부대의 내부 직제표가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 83년 만에 알려진 이름들

마츠노 세이야 연구원은 이 기밀문서에 731부대 제1부장부터 제4부장까지, 자재부장과 교육부장, 진료부장 등 간부 97명을 포함해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부대원 총 222명의 실명이 적혀 있다고 밝혔다.

간부 명단에서는 731부대를 총괄 지휘한 제1대 부대장 이시이 시로, 신생아까지 얼렸던 동상실험의 책임자 요시무라 히사토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이시이 시로는 도쿄제국대학 의사로, 요시무라 히사토는 731부대 희생자들을 통해 얻은 동상실험 논문으로 전후 일본 사회에서 이름을 떨친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명단 대다수의 이름들은 기록으로 남지 않았다. 1945년 8월, 일본 관동군은 731부대의 모든 자료와 증거물을 소각하라고 명령했다.

- 이 명단이 나왔으니 731 부대원들의 흔적을 찾거나 후손을 찾는 게 가능해진 건가요?
=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도 있지만 지금까지 저나 다른 연구자들이 조사해 온 것 중에 아직 잘 모르는 이름이 많습니다. 앞으로 그런 사람들이 어떤 연구를 했는지, 전후 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예를 들면 대학교수로 돌아갔는지, 의사가 됐는지 등을 포함해서 731부대와 의학계와의 관계를 알아볼 수 있는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 731 부대원들 중 처벌받은 사람은 있나요?
= 없습니다. 도쿄전범재판에서는 아무도 처벌되지 않았습니다. 731부대는 전쟁 범죄를 저질렀지만 그 책임은 추구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이 전쟁에 진 뒤 미군은 731부대에 대해 자세히 조사를 해갔습니다. 그 결과 731 부대가 세균전이나 인체실험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미국 측은 이를 독점적으로 입수하는 대가로 이시이 시로우 등의 전쟁범죄를 면책하고 책임을 추구하지 않는 그런 거래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731부대에 관해서는 일절 전쟁의 책임이 추구되지 않았습니다.

- 이번에 새로 공개된 이름들 중에 전후 주요한 직책을 맡았던 사람이 있나요?
= 그건 지금부터 알아봐야 합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한 사람 한 사람씩 조사해야 알 수 있겠습니다.

후속 연구를 함께 할 동료나 단체가 있는지 물었다.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명단을 발굴하는 과정부터 쉽지 않았다. '731부대'라는 키워드로는 공문서들이 검색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학자의 연구는 수년, 아니 수십 년이 걸릴 듯했다.

명단 발견 뒤, 일본에서 731부대의 진상규명은 얼마나 더 나아갈 수 있을지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 전 731 부대원을 찾아 물었다‥"아는 사람 있나요?"

먼저 전 731부대원을 수소문해 만났다. 나가노현에 살고 있는 93살의 스미즈 히데오 씨를 만났다. 그는 14살에 소년대원으로 4개월 반 동안 731부대에 있었다. 일본 정부는 731부대의 존재만 인정할뿐, 어떤 활동을 했는지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전 부대원의 증언은 기록으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

스미즈 씨는 '마루타'를 산 채로 해부한 표본실의 기억을 증언한다. 그의 상관은 당시 14살이었던 스미즈 씨에게 외과 의사를 하고 싶다면 이 표본실을 봐야 한다며 데려갔다.

= 도저히 본 적 없는 끔찍한 것이 있었습니다. 끔찍한 것은 여자와 배 안에 있는 어린 아이 표본이 있었고 별의별 표본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마루타를 해부한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 상관은 표본실에 대해 어떻게 취급하고, 무엇이라고 불렀나요?
=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루타'가 된 것 같습니다. 고양이 등과 같은 의미 이지 않았을까 생각 합니다.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니까..

그는 자신 같은 소년대원들도 전쟁이 더 길어졌다면 마루타가 됐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죽은 뒤에 해부하는 것과, 산 채로 해부되는 것은 의학적 데이터가 전혀 달라진다면서 소년대원도 상태가 좋은 마루타이지 않았겠냐고 했다.

그에게 명단을 보여줬다. 명단 속 부대원 중 기억나거나 아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소년대원들이 찍힌 단체 사진을 한 장 꺼내왔다. 그는 몇 명의 이름을 댔고 꽤 시간이 흘렀다. 함께 그가 기억하고 있는 성이나 이름을 찾아봤지만 결국 알아본 부대원은 없었다. 같이 지냈어도 이름을 몰랐던 기밀 부대였다.

명단을 발견한 마츠노 연구원도 이 부대원을 만나는 길에 동행했다. 후속 연구의 단서를 찾아보고 싶은 의지가 강했다. 아쉬운 기색은 내비치지 않았다. 말단의 소년대원들은 공부를 가르쳐 주는 사람의 이름조차 몰랐을 정도로, 부대 운용이 철저히 비밀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됐다고 했다.

= 흔히 731부대는 서로가 무엇을 하는지 모두 모른다고 들었습니다. 이시이 시로와 상급 부대들이 알고 있을뿐, 부하들끼리도 교류가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오늘 스미즈 씨의 증언으로 이름조차 밝히지 않는 철저한 비밀 조치가 행해졌다는 것을 잘 알게 됐습니다. 어렵네요. 역사가로서 할 수 있는 것은 포기하지 않고 자료를 발굴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새로운 것이 나왔으니 또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 731부대 기념관 "기록이 없어서 기록해서는 안 된다"

스미즈 씨의 소개로 731부대 전시관이 있는 나가노현 이이다시의 평화기념관을 찾아갔다. 지난해 5월 문을 열었다. 731 전 부대원을 포함한 일본 시민들로부터 전쟁에 관련한 물품을 기증받아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해 세워진 장소다.

731 부대원 명단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기증품이 있는지 살펴봤다. 전 부대원이 마루타 수백 명을 해부한 수술용품이라며 기부한 물품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731부대 관련 용품"이라는 짧은 문구가 다였다. 바로 옆 다른 주제의 전시물들은 달랐다. 이 물건은 어떤 물건이고,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자세히 적혀 있었다. 대조적이었다.

스미즈 씨를 비롯한 4명의 731 부대원들은 731부대에 대한 증언 전시를 이곳을 걸어두기로 했었다. 개관 2개월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돌연 시 교육위원회는 부대원들의 증언 전시를 무기한 보류했다. 이유는 이제껏 박물관에 731부대에 대해 전시한 곳이 없다는 것.

기록이 없으니 기록해서는 안 된다는 모순이었다. 시 관계자는 촬영하고 있는 동안 옆에서 이 기록들에는 "이견이 있다"는 설명을 이어갔다. 적나라한 설명은 교육 상 좋지 않다, 731부대원의 유가족들이 반발한다는 이유 등이었다. 방송용 정식 인터뷰는 거절했다.

지역 시민단체는 시를 상대로 전시물에 대한 건의를 이어가고 있었다. 해부용품은 대다수 마루타 피해자가 있는 중국에도 없는 귀한 것이지만, 부연 설명이 없기에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731 부대원들의 증언 전시를 걸어야 하고, 피해자에 대한 사죄의 뜻도 함께 적어둬야 한다고 했다.

하라 히데아키 씨는 "가해에 대해서는 없던 것처럼 하려는 움직임이 유감스럽게도 일본 국내에 있다"고 설명했다.

■ 유골 1백여 구 발견되어도‥34년 동안 제자리걸음

이번엔 신주쿠로 갔다. 731부대를 지휘한 옛 육군군의학교 방역연구실 근처다. 34년 전인 1989년, 이곳 후생성(일본의 보건복지부)의 건설 현장에서 유골 1백여 구가 발견됐다. 신주쿠 전 구의원인 가와무라 가즈유키 씨는 이때 발견된 유골이 731부대 생체실험으로 인한 희생자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가와무라 씨는 유골을 다시 매장하려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유골 감정을 가까스로 만들어냈다. 감정 결과 흉기에 찔리거나 베인 흔적, 드릴이나 톱의 흔적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가 만든 유골 진상규명 단체는 731부대 간호사의 증언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수십 년간 노력에도, 신주쿠 구는 "731부대와의 관련성은 알 수 없다"는 결론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후생성이 조사해 발표한 결론도 유골들은 의료용 표본 또는 의료교육용 시신의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유골이 발견된 지 34년이 지났지만 731부대와 연관성이 있다는 결론에도 다다르기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촬영하던 카메라를 껐다. 명단이 공개됐지만 진상규명은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가와무라 씨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한참 어떤 살인사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명단에서 새로 시작되는 이야기


그러던 차에 그가 이번에 공개된 명단에서 '한 이름'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그 부대원을 안다고 했다. 살인 사건을 추적하다 알게 된 731 부대원이었단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명단에서 누군가를 안다는 사람을 처음 만났다. 카메라를 다시 켰다.

그가 말을 꺼낸 살인사건은 결국 범인을 밝혀내지 못한 1948년 도쿄의 제국은행에서 일어났던 독극물 살인 사건이었다. 도쿄 도시마구에 위치한 제국은행 지점에서 한 낯선 남자가 후생성 직원을 사칭했다.

"가까운 곳에서 집단 이질이 발생했습니다. 이 은행을 소독해야 하는데, 소독 전에 여러분들은 예방을 위한 약을 마시길 바랍니다."

은행 안에 있던 직원들은 모두 그 약을 마셨고 중독돼 움직이지 못하는 틈을 타 범인은 현금 16만 엔과 수표 1만 엔을 챙겨 떠났다. 약을 마신 16명 중 11명이 현장에서 숨졌고 한 명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범인을 잡는 수사는 미진했다. 일본 경찰은 특히 731부대 관련자들에게 혐의를 두고 수사를 진행했다. 731부대의 목표가 전쟁에서 총보다도 대량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세균전을 펼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범행에 사용된 특수한 청산화합물을 만들고 다룰 줄 아는 731부대원들이 용의선상에 올랐다.

가와무라 씨는 참고인으로 조사받았던 한 부대원의 성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명단 공개를 통해 그의 정확한 성과 이름까지 확실히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731부대에서 생체실험을 한 의사들뿐 아니라, 고카타 씨 같이 사진으로 기록을 남겨두는 사람도 존재했다는 걸 알려야 한다고 했다. 731부대의 다양한 범행을 기록해둔다는 것에 의미를 뒀다.

그러니까 731부대라고 하면 군의라든가 의학자가 중심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해부해 장기를 조사할 때 그때의 사진 촬영이라든가 혹은 그것을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실제로 있던 것입니다. 이 부대 명단에 의해 지금까지 잘 몰랐던 구체적인 부분이 알려질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의사의 이름까지 한 명씩 써 있으니, 그 사람을 쫓아가면 731부대가 하고 있었던 일의 상세한 내용을 조금 더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파편화된 731부대의 진실‥일본 정부는 알고 있다

731부대의 이 명단이 세상에 처음 나오는 데 83년이 걸렸다. 731부대와 연관된 유골의 진상규명 운동을 34년째 펼치고 있는 사람이 명단에서 한 사람의 이름을 가까스로 알아봤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수사가 미궁에 빠졌을 때 어떻게 731부대원들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할 수 있었을까. 일본 정부는 오래전부터 731부대 대원들 명단을 따로 관리해왔다는 방증 아닐까.

731부대의 진실을 조각조각 알려내고 있는 일본 사람들은 세대 차이가 컸다. 마츠노 연구원 같은 젊은 학자는 거의 없었다. 그 역시 연구의 어려움을 자주 느끼고 있었다. 일본 정부의 침묵과 조직적 은폐 속에서 731부대 기록의 맥이 끊기질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들의 말들을 남겨본다.


[집중취재M] "사람 산채로 해부·전시" 731부대 추적해보니 https://www.youtube.com/watch?v=JKfE7RcxjXQ

MBC 도쿄지국 이장식, 김진호 님과 함께 취재했습니다.

신수아 기자(newsua@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513728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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