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버리가 한국사회에 남긴 ‘유일한 선물’[기자메모]
말도 많고 탈도 많던 ‘2023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의 공식 일정이 지난 12일 마무리됐다. 잼버리의 어원은 ‘유쾌한 잔치’인데 이번 ‘새만금 잼버리’는 유쾌하기는커녕 나라 안팎에 민폐만 주고 막을 내렸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정산’의 시간이다. 잼버리 파행에 일정한 책임을 공유한 여야는 극한 대립을 하며 책임공방을 벌일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정치권의 설왕설래 속에선 잘 드러나지 않을 한국사회의 민낯을 다시 한번 기록해두려고 한다.
잼버리로 나라가 몸살을 앓는 동안에도 중대재해는 ‘성실하게’ 그 숫자를 늘려갔다. SPC 계열사 샤니 성남 제빵공장에서 일하던 50대 노동자가 끼임 사고를 당해 지난 10일 숨졌다. 지난해 10월 SPC 계열사인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끼임 사고로 사망한 뒤 1년도 되지 않았다.
디엘이엔씨(옛 대림산업)에선 잼버리 대회 기간(1~12일) 중 중대재해 두 건이 발생했다. 지난 3일 서울 서초구 건설 현장에서 전기실 양수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물에 빠져 숨졌고, 지난 11일엔 부산 연제구 아파트 재개발 현장에서 20대 하청노동자가 창호교체 작업 중 떨어져 숨졌다. 지난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뒤 디엘이엔씨에선 이번 사고를 포함해 모두 7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중대재해의 칼날은 이주노동자를 비켜 가지 않았다. 지난 9일 경기 안성시 상가 공사현장에서 데크플레이트 콘크리트 타설 작업 중 거푸집이 붕괴해 이주노동자 2명이 숨졌다. 이들은 베트남에서 온 형제였다.
‘잼버리 파행의 소방수’가 된 K팝 콘서트를 빠듯하게 준비하다 보니 무대 설치 공사는 산업안전보건법을 무시한 채 진행됐다. 지난 8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무대 설치를 하는 노동자들 모습이 포착된 사진을 보면, 작업자 중 일부는 고소 작업 중에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았다. 작업 현장 최상부에는 안전난간이나 생명줄이 없었고, 작업 발판은 모든 층에 충분히 설치돼 있지 않았다.
정부는 잼버리 기간 내내 스카우트 대원들의 안전을 거듭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일 “잼버리 대원을 끝까지 챙겨달라”는 ‘꼼꼼한 지시’까지 했다. 이 메시지는 ‘외국에서 온 귀한 손님’을 넘어 하청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노동 약자’에겐 가닿지 못했다.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국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국익, 국격이라는 거창한 명분 앞에서 누군가는 배려를 받고 누군가는 배제된다는 것이 잼버리가 드러낸 한국사회의 민낯이다. 잼버리가 남긴 유일한 ‘선물’은 한국 사회가 이 민낯을 다시 한번 직시할 기회를 줬다는 점이다. 이 기회조차 살리지 못한다면 이번 잼버리는 영원히 ‘악몽’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할 것이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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