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나요, 이 들림’…장애를 뛰어넘은 특별한 피아노 연주 [주말엔]

황종원 2023. 8. 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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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발달장애는 어렸을 때부터 말을 배우는 것에 어려움이 크게 있고, 의사소통을 하는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는 장애 증상입니다.” (이들림)

피아니스트 이들림 씨는 차분하게 자신의 장애를 설명했습니다.

이 씨는 인터뷰 내내 유창하지 않지만 확실하게, 빠르진 않지만 분명하게 의사를 표현했습니다.

지난 2일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기는 음악 축제, '2023 국제 스페셜 뮤직&아트 페스티벌' 개막 연주자로 나선 피아니스트 이들림 씨를 만나봤습니다.

■ 장애를 만나다

대부분의 발달장애인들이 그렇듯 들림 씨는 선천적으로 장애를 갖고 태어났습니다.

들림 씨의 어머니 김미연 씨는 아들이 그저 말을 배우는 게 느리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시댁 형제들이 모두 말을 늦게 배웠다고 전해 들었기 때문에 특별히 염려하진 않았는데, 아들이 세 돌이 조금 지나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땐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럴 리가 없어. 내 아이는, 나는 아무 잘못을 한 게 없는 거 같은데 왜?... 처음엔 부정했죠.” (김미연)


■ 피아노를 만나다

어릴 적 들림 씨는 언어 장애도 있었고 자폐 증상도 심했다고 합니다.

미연 씨는 현실을 인정하고 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면서 들림 씨에게 다양한 교육을 시켜보기로 하고 미술과 수영 등을 가르쳤지만 가장 흥미를 가졌던 건 피아노였다고 합니다.

“제가 다른 것을 하는 중에도 계속 머릿속에 피아노가 맴도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계속 피아노를 쳐야 되나 봐, 싶은 거예요.” (이들림)

사실 피아노를 전공했던 미연 씨는 아들이 피아노를 치는 걸 반대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도 연습을 하루 거르면 손이 굳는 걸 느낄 정도로 혹독한 연습을 매일 해야 하는데, 손가락 근육도 약한 들림 씨가 하기엔 어려운 일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악보를 이해하고 외우는 것도 힘들뿐더러 감정표현도 중요한데 들림 씨가 예술적 표현까지 해낼 수 있을 거라곤 더더욱 생각하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들림 씨는 피아노를 배우고 몇 년이 지나도록 실력 향상이 더뎠기에 미연 씨는 아들에게 피아노는 취미로만 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림 씨가 발달장애 학생 연주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곡을 완벽하게 외우고 또 감정표현까지 풍부하게 해내는 겁니다.

그 모습을 보며 펑펑 울었다는 미연 씨는 마음속으로 다짐하게 됩니다. '그래 네가 하고 싶다고 하면 도와줄게.'


기적을 만나다

어머니의 든든한 지원도 얻었겠다, 들림 씨는 정말 매일매일 피아노 연주에 몰두했습니다.

눈 뜨면 연습실 가고 집에서도 연습하는 등 하루에 8~10시간을 연습했습니다.

그렇게 중학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음대에 합격합니다.

“서울대 합격 되니까 진짜 너무 감사합니다. 그 생각이 들었죠. 저에게 많은 큰 기회를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들림)

“그때 느낀 게 뭐냐 하면 얘 가능성은 우리가 눈으로 봤을 때는 요만큼 튀어나온 돌멩이(돌부리) 같은 느낌. 근데 이 밑에 커다란 바위가 있는 거예요. 나는 돌멩이만 보고 그만하라고 했고 얘는 이렇게 묻혀 있는 바위 같은 자기의 열정이 있었던 거죠.” (김미연)

더욱 기적 같은 점은, 들림 씨의 장애 증상이 놀라울 정도로 좋아졌다는 겁니다.

대학교 입학에 필요한 서류를 떼기 위해 받았던 장애 검사에서 어렸을 적 있던 언어 장애나 자폐 증상은 사라지고 발달 장애만 남은 것을 확인합니다.

이렇게 증상이 호전된 명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미연 씨와 들림 씨는 피아노 덕분이라고 믿습니다.

피아노를 통한 감정 표현에 숙달되면서 언어를 통한 표현력도 좋아지고 사람들과 의사소통 능력도 향상됐다는 겁니다.


■ 희망을 말하다

대학에 다니면서 좋았던 점이 뭐냐는 질문에 고교 시절보다 더 많이 연습할 수 있고 더 깊게 배울 수 있는 게 좋았다는 들림 씨.

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꾼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발달장애인 예술단체 ‘제이아트앙상블’에 들어가 꾸준히 공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제10회 국제 스페셜 뮤직&아트 페스티벌 개막연주자로 무대에 섰고, 곧 있을 독주회를 준비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들림 씨에게 혹시 시청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냐고 묻자 의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러분 살아가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으시죠?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누구나 다 어려움이 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부터 많이 어려웠습니다. 어려움에 좌절하지 말고 힘을 내세요. 희망을 가지세요.” (이들림)


자기 자랑이나 꿈을 이야기하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전한 들림 씨.

이런 들림 씨를 여전히 걱정스런 눈으로 쳐다보는 어머니는 당부의 말을 건넸습니다.

“여러분들이 혹시 길 가다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을 보면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하지 말고 그냥 사람으로 봐주시면 좋겠어요. 저 사람은 장애인이니까 뭐를 못 해, 이렇게 보지 말고 조금 다를 뿐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 (김미연)

[연관 기사] [DEEP] 들리나요 이 들림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746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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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원 기자 (ybel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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