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골퍼들이 유럽 원정을 두려워하는 이유 [임정우의 스리 퍼트]
골프채 실종 사건 연이어 보도돼
올해도 예년처럼 분실·지연 발생
에비앙 때 김수지 클럽도 늦게 도착
지난해 이재경은 모든 짐 잃어버려
현장에서 급하게 구해 대회 출전
디오픈과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 아문디 에비앙 챔피언십을 최근 다녀온 선수들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다. 몇몇 선수들은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에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대회가 열리는 매년 7월과 8월에 단골로 등장하는 ‘골프채 실종 사건’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처럼 보물과도 같은 골프채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걱정으로 인해 유럽 원정에 두려움을 느끼는 프로 골퍼들이 많다. 골프채가 제때 도착하지 않아 마음 고생을 한 선수는 얼마나 될까. 한 골프계 관계자에 따르면 매년 10명 이상이 넘는다고 했다. 지난 6일 막을 내린 LPGA 투어 프리디그룹 스코틀랜드 위민스 오픈 정상에 올랐던 셀린 부티에(프랑스)도 골프채가 예정보다 늦게 도착해 1라운드를 하루 앞둔 수요일이 돼서야 연습을 시작했다.
런던 히드로 공항과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공항은 선수들 사이에서 골프채를 분실하지 않는 것을 운에 맡겨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악명이 높다. 외국 선수들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한국 여자골프의 살아 있는 전설’ 박인비와 2017년 스코티시 우먼스 오픈 우승자 이미향 등도 골프채를 분실해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지난해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에서는 골프채와 옷, 신발 등을 모두 분실해 현장에서 직접 구매해서 사용한 선수도 있다. 올해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대상 포인트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재경이다. 히드로 공항 관계자의 실수로 에딘버러행 비행기에 실리지 않은 이재경의 골프채를 비롯한 모든 짐은 대회가 끝날 때까지 도착하지 않았다.
어떻게서든 대회에 출전해야 했던 이재경이 가장 먼저 연락을 취한 건 용품 후원사 타이틀리스트다. 타이틀리스트 한국 관계자들로부터 이재경의 클럽 스펙을 전달받은 타이틀리스트 PGA 투어 담당자는 급하게 14개 클럽을 제작했다. 이재경은 개막 전날 저녁에 골프채를 전달받았고 가까스로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 첫 티샷을 날리게 됐다.
옷과 신발, 모자 등을 구하는 데 도움을 준 특별한 인물도 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다. 이재경의 짐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정 회장은 직접 연락해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재경은 “비행기에 들고 탄 배낭을 제외하고 모든 짐이 도착하지 않아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는 줄 알았다”며 “정 회장님과 매니지먼트, 용품 후원사의 도움이 없었다면 기권하고 돌아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용품사 담당자들은 디오픈과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 아문디 에비앙 챔피언십 등 유럽에서 열리는 대회 기간에 비상 근무 체제에 돌입한다. 한 클럽 브랜드 관계자는 “미국과 아시아 등에서 열리는 대회보다 분실 사건이 많이 발생해 평소보다 클럽 헤드와 샤프트, 그립 등을 더 많이 준비해놓는다”며 “내년에는 단 한 명도 골프채를 분실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전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리디아 고(뉴질랜드)는 골프채 분실을 예방하기 위해 위치 추적기를 골프백에 달아놓는다. 리디아 고는 “내 손에 익은 골프채를 잃어버리는 것만큼 슬픈 일이 없다”며 “여러 고민 끝에 위치 추적기를 사용하고 있는 데 만족한다”고 말했다.
KLPGA 투어와 KPGA 코리안투어를 주무대로 삼고 있지만 가끔씩 유럽 원정에 나서는 한국 선수들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KLPGA 투어의 한 선수를 담당하고 있는 매니저는 “골프채가 좋은 성적을 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공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며 “올해 가장 기뻤던 순간 중 하나가 런던 히드로 공항에 모든 짐들이 정상적으로 도착했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라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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