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스로이스 운전자가 풀려난 이유, 한동훈 때문? 법리적으로 따져보니

이가영 기자 2023. 8. 13.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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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재현 형사판] 형사법 전문가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와 함께하는 사건 되짚어 보기. 이번 주 독자들의 관심을 끈 사건에 관해 전문가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 단계 더 들어가 분석하고, 이가영 기자가 정리합니다.

향정신성의약품을 투약한 채 롤스로이스 차량을 몰다 행인을 치어 중상을 입힌 신모(28)씨가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뉴스1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른바 ‘롤스로이스 사고’ 피의자 석방이 “한동훈식 포퓰리즘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신모(28)씨는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역 인근에서 롤스로이스 차량을 몰다 인도로 돌진해 행인에게 중상을 입혔고, 구금 약 17시간 만에 석방됐습니다. 사건 당시 경찰은 마약 투약 정황을 확인하고도 변호사로부터 신원보증을 받고 풀어줬는데, 그 책임이 검찰 예규를 손보지 않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있다는 취지였습니다.

◇언급된 ‘대검찰청이 만든 예규’는 무엇인가요? 정말 구속을 면하는 ‘프리패스’인가요?

절대 아닙니다. 아마도 국회의원이 오해한 듯합니다. 차근차근 설명하겠습니다.

지금 논란이 된 대검 예규의 정확한 명칭은 ‘불구속 피의자 신원보증에 관한 지침’입니다. 신원보증서에는 피의자의 상세한 인적 사항을 기재하게 되어 있습니다. 피의자가 향후 조사에 불출석하거나 소재 불명 시에 신원보증인을 통해 피의자의 출석을 촉구하거나 소재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2015년 12월 31일부터 시행된 예규인데요, 이 예규가 만들어진 목적은 당시 수사 관행이 거의 모든 피의자에 대해 관행적으로 ‘신원보증서’를 요청하고, 신원보증서를 받기까지 피의자를 대기시키거나 이 과정에서 신원보증인에게 피의자 입건 사실을 알려 피의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폐단이 있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예규입니다. 절대 구속할 만한 피의자를 풀어주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예규는 아니란 뜻입니다. 구속이 불가능한 피의자에 대해 출석을 담보하고, 소재 파악 등을 위해 신원보증서를 요청하는 겁니다.

◇이 예규에 근거해 검사가 수사 지휘를 해 롤스로이스 피의자를 풀어줬다고 볼 수는 없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2023년 현재 경찰은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는 대상이 아닙니다. 검찰과 경찰은 상호 협조하는 관계입니다. 경찰이 독자적으로 수사하는 상황에서 검찰은 문제가 된 롤스로이스 사건 자체를 알 수 없습니다. 언론을 통해 알았을 겁니다. 신이 아닌 이상, 모르는 사건을 지휘할 수는 없습니다.

◇박용진 의원은 “철 지난 예규를 왜 아직도 그대로 뒀느냐”며 “여러 소리 말고 신원보증제도 폐지하라”고 했는데요.

검사의 지휘권이 없는 상황에서 해당 예규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대검 예규를 폐지하라는 박 의원의 의견은 일견 타당합니다.

다만, 신원보증제도 자체는 필요합니다. 구속되지 않은 피의자의 출석을 보장하고, 소재 파악 등 수사의 협조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신원보증을 요청할 수 있는 경찰청 예규는 필요해 보입니다.

솔직히, 검찰 예규만 ‘왜 남겨두냐’고 문제 삼기는 어렵습니다. 각 행정부처 예규 중 현재 필요 없는 예규는 차고도 넘칩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뉴시스

◇그렇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마약 투약 정황을 확인하고도 경찰이 변호사로부터 신원보증만 받고 풀어주어서 논란이 됐는데요.

제가 해당 경찰서 고위직과 통화해 봤습니다. 현행범 체포를 한 후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하는데, 당시 수사에서는 구속영장을 청구할 사유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향후 출석을 담보하고,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변호사의 신원보증을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구속할 만한 사유가 없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은 두 군데가 있습니다.

먼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엔 도주차량 운전자의 가중처벌 규정이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뺑소니 운전입니다. 교통사고 운전자가 구호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도주해 피해자를 상해에 이르게 하면 1년 이상의 유기징역(최장 30년까지 가능)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습니다. 만일 피해자가 사망하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습니다.

당시 롤스로이스 운전자 신모씨가 사고 현장을 떠나는 모습이 CCTV 화면에 명확하게 담겼습니다. 구호 의무를 저버리고 도주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해 신씨 스스로 ‘당시 상황에 대한 기억이 없다’고 진술했습니다. 기억조차 없는 사람이 피해자 구호를 위해 인근 병원에 갔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게다가 그는 119 신고도 하지 않고 사고 현장에서 떠났습니다.

경찰이 이 대목을 적극적으로 수사했다면 구속영장 청구가 가능했다고 보입니다. 범죄가 소명됐고, 도주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뺑소니 운전이라는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의문이 드는 부분은 또 있습니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엔 위험운전치상죄가 있습니다. 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서 자동차를 운전해 사람을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습니다. 신씨는 간이 마약 검사에서 케타민을 복용한 사실이 석방 전에 밝혀졌습니다. 약물을 투입하고 운전한 사실이 입증된 겁니다. 적법한 약물복용의 경우에도 해당 규정이 적용됩니다. 건강검진 때 수면마취를 한 후 운전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신씨 주장대로 적법하게 처방받아 케타민을 투약했다면 마약류 관리법 위반죄가 성립되지 않을 뿐입니다. 당시 CCTV 속 피의자의 걸음걸이는 현저히 이상했습니다. 신씨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 건, 심각하게 약에 취해있었다는 것을 자백한 겁니다. 약물로 인해 운전이 곤란한 상태로 볼 수 있는 정황이 있었음에도 경찰이 왜 위험운전치상죄 적용 여부를 따져보지 않았는지 아쉬울 따름입니다.

비싼 외제차를 운전한다는 이유로, 변호사가 선임되었다는 이유로 수사가 미흡하면 안 됩니다. 따져볼 수 있는 수사를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뺑소니’와 ‘위험운전죄’를 적용할 수 없었다면 풀어주는 것이 맞겠지요. 그러나 해당 경찰서의 초동수사에는 아쉬운 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피의자가 구속되었으니 이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시간입니다. 경찰은 피의자와 관련된 의혹이 한 점도 남지 않도록 수사해야 합니다. 국민은 일 잘하는 경찰, 능력 있는 경찰을 원합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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