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속 퍼져나간 '가짜 뉴스'…조선인 학살은 왜 벌어졌나

김예나 2023. 8. 13.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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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일본 수도 도쿄(東京)를 포함한 간토(關東) 지방 남부가 크게 흔들렸다.

그러면서 "일본인에 의한 조선인 학살을 정당화하려면 '유언비어가 전한 조선인의 범죄는 실재한 것'으로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지금까지도 곳곳에서 나오는 '학살 부정론'에 대해서도 "그랬으면 하는 일본인의 심정을 향해 쏟아지는 새로운 가짜 뉴스라고 해도 좋을 것"이라고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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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부정론' 비판·검증한 신간 '관동대지진, 학살 부정의 진상'
혼란 속 '오보' 이어져…조선인 향한 잘못된 인식 더해져 참상으로
간토 학살 진상공개 및 공식 사과 요구 기자회견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시민모임 독립 관계자들이 8월 1일 서울 율곡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간토 학살 진상 공개와 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일본 수도 도쿄(東京)를 포함한 간토(關東) 지방 남부가 크게 흔들렸다.

규모 7.9의 강진에 평온했던 한낮의 일상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됐다.

도쿄와 요코하마(橫浜)에서는 지진으로 인한 화재가 겹치면서 피해가 더욱 커졌다.

재난의 공포 속에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뿌렸다' 등 확인되지 않은 말이 퍼져 나가면서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 '독립신문'이 추산한 피해자는 6천600여 명. 학살이었다.

끔찍한 일이 벌어졌음에도 이를 부정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일본군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로 규정해 논란을 빚었던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 교수도 그중 하나다.

간토대지진 당시 거리 모습을 담은 사진엽서 [독립기념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의 저널리스트 와타나베 노부유키는 단행본 '관동대지진, 학살 부정의 진상'(삼인)에서 램지어 교수가 2019년 발표한 논문을 검증한다.

이를 위해 램지어가 논거로 제시했던 신문 기사와 배경, 실태를 낱낱이 짚는다.

저자는 여러 자료를 분석했으나 램지어 교수의 주장에 수긍할 수도, 동의할 수 없다고 결론 내린다.

예를 들어 1923년 9월 3일 '오사카아사히신문'이 호외로 보도한 내용은 명확한 사실관계를 드러내기보다는 '∼것을 보았다', '∼것 같다'고 목격담이나 추측을 전한 문장이 많다.

당시 도쿄와 연결되는 교통이나 통신 시설이 끊긴 상황에서 피난민에게 들은 이야기, 철도 통신망을 통해 얻은 정보 등이 교차 확인을 거치지 않은 채 호외로 발행된 것이다.

간토대지진 서술 축소한 일본 초등교과서 (도쿄=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일본 문부과학성은 3월 28일 교과서 검정심의회를 열어 2024년도부터 초등학교에서 쓰일 교과서 149종이 심사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그중 초등학교 사회와 지도 교과서에서는 징병에 관한 기술이 약화하고, 한국 땅인 독도에 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이 강화됐다. 사진은 조선인이 학살됐다는 내용이 포함된 간토대지진 칼럼을 들어낸 일본문교출판 6학년 사회 교과서. 왼쪽이 현행 교과서. [연합뉴스 자료사진]

혼란 속에 진위를 판가름할 수 없는 기사가 보도됐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사실이 아니었다고 책은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 역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책은 1923년 10월 20일 이후 조선인 범죄 기사가 잇달아 등장하는 점도 짚는다.

그해 11월 일본 사법부가 작성한 '지진 후 형사사범 관련 사항 조사서'에 따르면 조선인이 저지른 살상 사건은 살인 2건, 상해 3건이다. 하지만 사건을 일으킨 조선인이 누구인지 불분명하고 피해자도 명확하지 않다.

저자는 이 보고서 내용을 언급하며 "살인, 방화, 독 살포, 강간 등은 존재하지 않았는데 실제 있었던 것처럼, 그것도 지진 재해로부터 50일이나 지나 보도됐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일본인에 의한 조선인 학살을 정당화하려면 '유언비어가 전한 조선인의 범죄는 실재한 것'으로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비판한다.

명확한 실체도 없는 유언비어가 널리 퍼져나간 이유는 뭘까.

'간토학살'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 지난해 일본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99주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저자는 '불령선인'(不逞鮮人)이라 불리던 인식에 주목한다. '불령'은 불평을 품고 순종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당시 일본인들 사이에 이런 생각이 공유됐으리라 추정한다.

잇단 가짜 뉴스와 잘못된 인식이 더해진 결과는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학살이었다.

저자는 지금까지도 곳곳에서 나오는 '학살 부정론'에 대해서도 "그랬으면 하는 일본인의 심정을 향해 쏟아지는 새로운 가짜 뉴스라고 해도 좋을 것"이라고 꼬집는다.

"숨겨진 사실을 파헤치는 작업이나 참극의 사실을 이야기하며 전하려는 움직임은 시민 차원에서 꾸준히 이어졌지만, 사회 속으로 깊이 침투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이규수 옮김. 288쪽.

책 표지 이미지 [삼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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