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배제한 첨단 공급망 구축 가능할까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이차전지 강점 있는 중국은 우회 전략으로 대응
(시사저널=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최근 미국 고위 관계자들의 '중국행'이 잇따르고 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에 이어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했다. 이를 계기로 양국이 '대결 국면'에서 '대화 국면'으로 전환을 꾀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첨단기술 분야에 대한 미·중 간 경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미국은 2022년 10월7일 중국에 대한 인공지능(AI) 및 반도체 기술 수출통제 정책을 발표했다. 이후부터 집요하게 AI 관련 고성능 칩의 중국 유입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와 반도체 제조장비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차단해 중국 내에서 고성능 첨단 반도체 생산이 불가능하도록 해왔다.
미 고위 관계자들이 중국 방문한 이유
사실 미국은 2015년 이후 중국군과 직접 관련 있는 기관 등에 대한 반도체 공급을 차단해 왔다. 하지만 민수용 시장을 통한 접근은 허용함으로써 중국이 페이퍼컴퍼니 등을 통해 관련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를 확보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민수와 군수의 구별 자체가 무의미한 노력이라고 간주하고 중국의 접근 자체를 막는 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해외직접생산품 규정(FDPR)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FDPR은 외국산 제품일지라도 미국의 기술, 소프트웨어, 장비, 소재 등을 사용하거나 관련된 시설을 통해 생산된 경우 미국 당국의 수출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2020년 중국 화웨이를 대상으로 FDPR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그 위력과 잠재력을 인식하게 됐다. 현재 첨단 제품과 관련된 모든 공급망은 미국 기업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다. 미국 기술이나 부품에 대한 접근이 차단된 화웨이의 반도체 부문은 일시에 몰락했다. 이후 미국의 대중국 견제는 동맹국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2023년 3월 일본과 네덜란드는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제조장비 수출통제를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일본, 네덜란드가 전 세계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장비의 90%를 제공하고 있는 점을 이용해 중국의 반도체 산업 성장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전기차에 사용되는 이차전지의 핵심 광물과 부품을 북미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일정 부분 이상 조달할 경우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보조금을 받고 전기차를 판매하기 위해서는 중국산 부품이나 핵심 광물과 거리를 두도록 하면서 미국 내 이차전지 생산시설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이끌어낸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차단과 고립 시도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했다. 자국의 반도체 역량을 키우기 위한 막대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한편으로 중국 내에 위치한 미국 기업의 활동에 대한 간섭과 통제를 강화하면서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갈륨 등 일부 자원에 대한 수출통제를 통해 미국과 맞설 수 있는 수단을 보유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 역시 이러한 대응의 일환인 것이다.
첨단기술을 둘러싼 중국과 미국의 대립은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더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반도체 관련 장비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 기업들은 현재 정부의 허가를 얻어 제한된 범위 내에서 중국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첨단 공정을 필요로 하는 반도체와 그렇지 않은 범용 반도체에 대해 미국은 차별화된 정책을 적용하고 있다. 미국이 막더라도 중국이 충분히 개발하거나 도입할 수 있는 경우 억지로 통제하지는 않고 있다.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핵심 노광장비는 네덜란드의 ASML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첨단 공정에 대한 중국의 진출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최근 중국은 자체적으로 28나노급 노광장비를 개발했다고 알려지고 있지만, 성능이나 신뢰성 등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차전지의 경우 반도체와 상황이 다르다. 배터리셀 부품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일부 품목에서는 70% 이상을 중국이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를 한국과 일본이 담당하고 있다. 동아시아 3개국이 중간 스트림 부품의 92%에서 10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한국과 일본의 이차전지 제조 노하우와 투자를 북미에 유치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중국 업체들은 한국과 일본이 독점하는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규제를 우회하고 있다. 세계 최대 이차전지 업체인 CATL은 미국 포드사와 합작으로 지난 2월 미국 내 공장을 건립한 바 있다. 형식적으로 포드사가 100% 지분을 보유한 형태지만 실제로는 CATL이 기술 및 장비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규제의 취약점을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다른 이차전지 업체인 궈시안의 경우도 독일 폭스바겐에 최대주주 지위를 넘겨주고 스위스에 상장하는 등의 방식으로 최근 미국 내 이차전지 공장 건립 허가를 받아낸 바 있다. 중국의 화유코발트는 LG화학과 협력해 한국 새만금에 전구체 공장을 건립하기로 했는데, 이 역시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규제를 우회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중국의 우회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은 중국이 이차전지 원료 및 기술과 관련해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규제 우회해 미국 진출하는 中 기업
이차전지의 경우 니켈, 코발트 등 특정 광물자원이 매우 중요한데, 중국은 이 분야를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다. 채광, 정련, 제련 및 가공에 이르는 전 과정에 중국 업체들이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원하는 중국 배제 전략은 최소한 이차전지 분야에서는 쉽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중국은 전 세계 니켈의 약 4분의 3을 제련·가공하고 있으며, 리튬 처리 용량의 약 3분의 2를 보유하고 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중국이 앞서가고 있다. 인도네시아 니켈 산업에서 주로 사용되는 고압산침출법(HPAL)의 경우 기존에는 이차전지 소재로 가공하기 어려웠던 산화광 순도를 높일 수 있는 기술인데 모두 중국의 기술과 운영능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현재까지 미국의 의도는 일정 부분 달성되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 제정 이후 미국의 이차전지 생산능력은 20배 이상 증가했으며, 2030년대까지 신규 판매 차량의 50%를 전기차로 공급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구축이 실제로 가능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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