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두의 꼬치 COACH] “상무 이기고 D리그 우승하는 게 목표예요” LG 박유진 코치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8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어떻게 농구를 시작했나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용산고로 전학을 갔어요. 사실 중학교 3학년부터 농구하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는데 반대가 심하셨죠.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저를 포기시키기 위해 용산고에서 테스트를 보게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故양문의 선생님께서 농구해도 될 것 같다고 하신 거죠. 그때는 용산고가 어떤 학교인 줄도 몰랐어요. 원래 있던 학교 선생님도 허재, 유재학이 나온 학교인데 네가 거길 어떻게 갔냐고 물어보셨으니까요. 갈 거면 체육대회 뛰고 가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용산고 시절 정선규와 주축 멤버로 뛰며 제22회 협회장배, 제8회 학산배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강하다는 걸 잘 몰랐어요. 대회 나가서 하던 대로 했는데 이겼던 기억이 나요. 특별하게 잘한다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아요. 학교 분위기가 우승을 당연시하기도 했죠. (정)선규와 저뿐 아니라 3학년 5명이 재밌게 농구를 했었어요.
한양대 재학 중이던 2000년에는 고려대를 꺾고 농구대잔치 4강에 오르기도 했는데요?
예전에는 한양대 전력이 좋았어요. (양)동근이와 (성)준모 형, (김)종학이 형 등이 있었죠. 당시 고려대는 감독님이 자주 바뀌셔서 스카우트와 같은 부분들이 제대로 안 되었거든요. 그래서 충분히 이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2002년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순위로 삼성에 지명됐습니다.
농구를 늦게 시작하긴 했지만 이상백배, 존스컵 대표팀에 뽑히면서 자신감이 있었어요. 언론에서는 저를 1라운드 후보로 예상했거든요. 프로팀과 연습경기 할 때도 잘해서 더 기대감이 있었죠. 그래서 지명 순위에 서운한 감정이 들긴 했어요.
제가 삼성에 가니까 (서)장훈이 형이 FA(자유계약선수)로 오더라고요. 외국선수 2명, 장훈이 형, 앞선에는 (주)희정이 형, (강)혁이 형이 있어서 벽을 느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너무 일찍 포기한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D리그를 뛰는 선수들과 저와 같은 마음가짐을 갖지 않도록 지도하고 있어요.
2006-2007시즌 초반 서장훈, 이규섭이 도하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차출되면서 출전 시간을 부여받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장훈이 형과 (이)규섭이 형이 아시안게임에 갈 줄 알았어요. 그래서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죠. 팀에 선수가 없어서 뛰었는데 승률이 나쁘지 않았어요. 해당 시즌에 순위도 괜찮았고요. 나중에 장훈이 형, 규섭이 형이 돌아왔을 때는 팀에 트레이드 요청을 했어요. 하지만 구단에서 안 된다고 하셨고, 그럼 은퇴하겠다고 해서 유니폼을 벗게 됐죠.
돌이켜보면 선수 시절에 대한 아쉬움이 클 것 같은데요?
멋모르고 했죠. 농구가 좋아서 시작했고, 운 좋게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프로까지 갔어요. 심적으로 지친 상태여서 제대로 노력도 안 해보고 은퇴한다고 한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 섣부른 판단이었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같은 선수가 나오지 않도록 옆에서 도와주려 하고 있어요.
“매니저와 전력분석? 추일승 감독님 덕분이죠”
현역 은퇴 후 농구계를 떠났던 박유진 코치는 오리온스 매니저로 돌아왔다. 추일승 감독이 그를 강력하게 원했기 때문. 매니저를 거쳐 전력분석 업무를 맡아 현재의 지도자 생활에 초석을 다졌다. 2015-2016시즌에는 전력분석으로 오리온의 플레이오프 우승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이후 LG 전력분석으로 자리를 옮겼고, 자신의 역량을 더욱 넓혀갔다.
은퇴 후에는 어떻게 지냈나요?
휴식을 취하다가 중소기업을 다녔어요. 인터넷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웹 에이전시였죠. 사람이 없었는지 이력서를 냈는데 운동선수 출신인 걸 모르고 학력만 보고 뽑아주신 것 같아요. 덕분에 말단부터 사무직 일을 배웠죠.
회사 다닌지 1년 반 정도 됐을 시간이었어요. 존스컵 대표팀 감독이었던 추일승 감독님께서 오리온스에 부임하셨어요. 선수 시절에 좋게 봐주셨는지 매니저로 저를 원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서동철 코치님께서 전화를 주셔서 가게 됐어요. 농구가 좋아서 앞뒤 생각하지 않고 회사 그만두고 바로 갔어요.
매니저 일과는 어땠나요?
회사에서 사무직 일을 배워서 그런지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원정 일정부터 물품 관리까지 전체적인 업무를 맡아서 했죠. 팀에 인원이 없어서 예산 짜는 일도 제가 했어요. 그래도 어려운 건 없었던 것 같아요.
오리온스 매니저를 거쳐 전력분석으로 승격됐습니다.
당시에 추일승 감독님께서 팀에 제대로 된 전력분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요청을 하셨어요. ‘네가 일을 잘하니까 전력분석을 맡아라’라고 말씀을 해주셨죠. 저도 마침 해보고 싶던 분야라서 흔쾌히 수락했어요.
전력분석 업무는 처음인데 힘든 점은 없었나요?
사수가 없으니까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박)도경이 형, (손)창환이 형, (배)길태 형을 엄청 쫓아다녔어요. 자주 전화해서 물어보기도 했고요. 형들이 처음에는 귀찮아하셨는데 한 가지 계기가 있었어요. 예전에는 외국선수 트라이아웃 제도가 있어서 열리기 전에 각 팀 전력분석끼리 모여서 동향 파악과 눈치 싸움을 했죠. 그때 600명의 정보를 전부 다 외워서 이름만 나오면 어떤 선수인지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부터 다른 팀 전력분석 형들이 인정을 해주시더라고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오리온이 우승했던 2015-2016시즌 개막 전 추일승 감독님께서 매 경기 전 선수단 앞에서 전력분석 했던 내용을 설명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제가 해도 될지 몰랐지만 감독님 뜻을 받아들여서 정규리그 54경기를 PPT로 만들어서 설명했죠. 영상 편집해서 보여주고, 상대팀의 의도를 파악해서 우리팀이 어떻게 대응해야 되는지 의견을 이야기했어요. 기록, 세부적인 수비 방법 등이 포함됐죠. 어떤 경기에서는 체력전으로 가서 후반에 무너트려야 된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다소 무식한 방법이었는데 다양하게 접근하려고 한 거죠. 다행히 감독님께서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여기서 또 추일승 감독님이 나오세요(웃음). 전력분석을 몇 년째 하고 있는데 오리온 사무국 직원이 되어서 도와달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근데 제가 처음으로 거절을 했어요. 저는 전력분석 업무가 재밌었고 그 시기가 전력분석, 스카우트 능력이 가장 좋았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추일승 감독님 말씀을 거절하고 팀을 나왔는데 다음날 바로 LG 도경이 형한테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LG 전력분석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죠.
“좋은 문화를 가진 건강한 팀을 만들고 싶어요”
3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LG는 2022-2023시즌을 앞두고 조상현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이때부터 박유진 코치는 본격적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D리그 팀을 전담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결승전에서 허훈과 송교창이 버티고 있는 상무에 패했지만 분명 의미 있는 성과였다. 또한 조상현 감독을 훌륭하게 보좌하며 LG에 정규리그 2위에 오르는데 힘을 보탰다.
2022-2023시즌을 앞두고 LG 코치로 승격됐습니다.
조상현 감독님이 새로 오셨는데 팀에서 저를 코치로 쓰고 싶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마침 조상현 감독님도 저를 코치로 생각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지난 시즌에 타 팀에서 코치 제의가 왔었는데 안 갔어요. 당시에 나도 이제 코치할 때가 됐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오리온, LG 전력분석 시절에 원정 엔트리에서 빠진 선수들을 제가 훈련시키기도 했거든요. 전력분석 하면서 많이 배웠죠. 그래서 코치가 됐을 때 엄청 기쁜 마음보다 덤덤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지도자에 대한 생각은 언제부터 갖고 있었나요?
원래 제 꿈은 나이를 먹어서도 스카우트 업무를 계속하는 거였어요. 해외 출장가면 백발의 할아버지 스카우트가 항상 계시거든요. 전력분석을 하니까 안 보이던 게 보이더라고요. 정보가 계속 쌓였고, 스카우트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지도자를 해도 재밌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 코치가 되어서 시행착오는 없었나요?
사실 농구를 가르치는 건 아마추어까지라고 생각해요. 프로팀 코치는 팀이 원하는 방향을 갈 수 있도록 선수들을 훈련시키는거죠. 분석은 당연히 해야되고 거기에 선수 개인별로 코칭을 하는 거예요. D리그 전담 코치를 맡으면서 시야가 많이 넓어졌어요. 훈련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상담을 통해서 멘탈적인 부분도 보살필 필요가 있더라고요. 하나의 작은 팀이라고 생각해서 행복한 지난 시즌을 보냈어요.
지난 시즌 D리그에서 LG가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좀 더 의지를 갖고 열심히 뛰어준 덕분이에요. 이걸 끌어올리기 위해 좀 전에 얘기한 훈련이나 멘탈 부분을 신경 쓴 거죠. 선수들이 잘 따라와 줘서 좋은 결과가 있었어요. 사실 결승전에서 (정)인덕이만 있었어도 상무를 이길 수 있었는데 아쉬워요. 다음날 1군 경기가 있어서 선수들이 많이 빠졌거든요. 전반에 10점 차로만 지면 후반에 승부를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3쿼터에 잘 따라가다가 4쿼터에 잇달아 실점을 내준 게 아쉬웠어요.
우리 팀은 기본을 중요시해요. 조상현 감독님께서 말하고, 보여주고, 행동하는 코칭의 기본 3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그리고 컨디션 조절을 위해 D리그를 많이 활용했죠. 감독님께서 (이)관희와 (이)재도까지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D리그를 뛸 수 있다고 공표하셨어요. 그래서 선수들이 좀 더 경각심을 갖고 이기기 위해 한발 더 뛴 게 좋은 성적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박유진 코치만의 지도자 철학은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는 선수에 맞는 역할을 주고, 육성을 하고, 훈련을 시키는 거예요. 팀적으로는 조상현 감독님과 생각이 같아요. 크게 이야기하면 좋은 문화를 가진 건강한 팀을 만들고 싶어요. 이기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기가 중요하거든요. 원칙을 가진 기본에 충실한 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선수시절 주목받지 못했어도 지도자로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 같은데요?
시대가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예전처럼 준비 없이 지도자를 하시는 분들이 없으니까요. 저는 준비하는 과정을 잘 배웠다고 생각해요. 그걸 그대로 꾸준하게 실천하다 보니 이렇게 기회가 온 것 같아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공부하고, 준비하고, 노력해서 계속 나아가고 싶어요.
앞으로 지도자로서 목표는 무엇인가요?
큰 목표보다 D리그 전담을 한번 더 해서 상무를 이기고 우승해보고 싶어요. 올 시즌에 (양)홍석이가 합류했지만 (김)준일이가 이적하면서 높이가 낮아진 건 사실이거든요. 불안하지만 재밌을 것 같아요. 즐거운 마음으로 긴장도 하면서 다가오는 시즌을 준비하고 싶어요.
▼ 박유진 코치 프로필
생년월일_1978년 9월 5일
신장/체중_195kg/90kg
출신학교_우장초-마포중-용산고-한양대
선수 경력_2002~2008 서울 삼성
지도자 경력_2022~현재 창원 LG 코치
# 사진_유용우 기자, 점프볼 DB, KBL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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