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뺑뺑이' 전무…산골생태유학 도시아이들 "여기서 더살래요"
작은 학교는 생존, 농촌엔 활력, 아이들은 친환경 교육 '일석삼조'
(인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한여름 짙은 녹음이 점령한 강원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여름 산 계곡.
여울 거리며 흐르는 계곡물 소리 사이로 아이 여덟 명이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마치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처럼.
도시를 떠나 이곳 설피마을 진동분교에서 유학하는 학생 4명과 기존 재학생 1명, 지난해 진동분교를 졸업하고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1명, 산골생태유학을 맡은 직원의 자녀 2명까지.
모두 8명이 자연이 빚은 천연수영장에서 '놀이'를 즐기고, 송사리와 퉁가리, 이름 모를 물고기를 잡으며 '자연'을 탐구하고, 계곡물과 매미가 빚어내는 하모니를 '음악' 삼아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자연을 탐색했다.
'여기서 지내는 게 행복하느냐'는 물음에 아이들은 하나같이 "예"라고 답했다.
"노는 게 제일 좋다"는 말에서 행복함과 즐거움이 묻어 나왔다.
청정 자연으로 들어가니…학원비 부담 없어지고, 질환 사라지고
정균택(39·경기 구리)씨와 아내 김소연(38)씨에게 산골생태유학은 '신의 한 수'였다.
쌍둥이 아들 지우(7·초교 1학년)·딸 윤서(7·초교 1학년)를 둔 균택씨 부부는 지우와 윤서가 어릴 때부터 눈이 나빠 안경을 쓰게 되자 "바깥 놀이를 많이 하라"는 의사 선생님 조언에 시골 학교를 찾다가 산골생태유학을 결심했다.
"1년만 있으려고 왔는데 선생님이 항상 일대일로 보살펴주고, 방과 후 프로그램도 너무 좋아서 포기하기가 아쉬워요."
균택씨 부부는 구리에 있을 때 아이 돌봄 비용과 학원비를 합쳐 한 달에 200만원을 썼다.
맞벌이 부부라 학원에 보내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학원 뺑뺑이'라고 부를 정도로 극성맞은 부모는 아니라고 여겼지만, 학원비 부담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방과 후 프로그램도, 주말마다 즐기는 승마, 서핑, 텃밭 가꾸기 등 각종 체험이 모두 '공짜'다.
"아이들은 여기서 계속 살고 싶어 해요. 졸업할 때까지 6년 있고 싶대요. 엄마가 일을 그만두고 왔으면 좋겠다고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부모 마음이…딱 1년 생각하고 왔는데 더 있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구리에 직장을 둔 균택씨 부부는 일주일에 주말을 껴서 사나흘 정도를 아이들과 지낸다.
평소에는 처가댁과 시댁 부모님이 두 달가량을 번갈아 가며 아이들과 함께 있고, 균택씨가 회사에 양해를 얻어 금요일은 재택근무를 하기로 하고 목요일 밤이면 인제로 넘어온다.
아동발달센터에서 치료사로 일하는 소연씨는 아직 대체인력을 구하지 못해 온전히 아이들 곁에 있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런 균택씨 부부가 진지하게 이사를 고민하는 이유는 오롯이 아이들 때문이다.
한 달 중 일주일은 병원을 들락거릴 정도로 지우를 괴롭혔던 비염이 이곳에 온 뒤 감쪽같이 사라졌다.
설피마을이 건강에 좋다는 '해발 800m 고지'에 자리한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아이가 귀한 산골 마을에 아이들의 출현은 어르신들에게도 활력소다.
균택씨 부부는 "아이들이 지나만 가도 '너무 잘 왔다', '반갑다', '상추 좀 가져가라', '꽃 심게 놀러 와라' 등 다정다감하게 말을 건네주고, 존재만으로 사랑을 받는 아이들의 자존감도 덩달아 올라간다"고 했다.
'어렸을 때 놀러 갔던 할머니 댁처럼 푸근한 시골 느낌 정도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 마을공동체가 주는 온정에 가족이 조금씩 동화되어 가고 있었다.
영어·운동·악기 배우고, 자연 속에서 창의력 쑥쑥
자연이라는 훌륭한 배움터에서 아이들은 매일 성장한다.
그렇다고 학업능력이 뒤처지는 것도 아니다.
한글을 떼지 못하고 입학했던 지우는 담임 선생님의 밀착 지도 덕에 단 2개월 만에 한글을 뗐다.
집에 돌아온 아이들은 부모에게 "엄마, 발표를 하루에 몇 번씩 해야 해. 도시에선 묻어갔는데, 여기서는 그럴 수가 없다"고 말한다.
두 아이를 데리고 설피마을로 들어온 이숙경(41)씨는 "한 반에 20명이 넘으면 선생님이 아이들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힘들잖아요. 도시에서는 '수업 시간에 말하면 안 된다'라고 한다는데 여기서는 선생님이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노력해요. 외국 교육이 이런 건가 싶을 때가 있어요"라고 말했다.
도심에서는 취학 전부터 '영태피'(영어, 태권도, 피아노의 줄임말)가 필수라지만 이곳에서는 학원으로 동분서주할 필요가 없다.
진동분교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면 체육, 드론, 피아노, 바이올린 등을 끊임없이 배운다. 물론 모두 무료다.
일대일 화상 영어도 매일 30분씩 무료로 하고 있다. 여기에 주말이면 영어 선생님이 마을을 찾아 각종 놀이를 하며 거부감 없이 영어를 배운다.
이처럼 아이들의 체험 시계는 주말은 물론 방학에도 쉼 없이 돌아간다.
승마부터 아궁이 가마솥 밥 짓기, 곰배령 탐방, 제빵, 생태공원 봄나들이, 곤충 바이오센터 방문, 텃밭 만들기, 서핑, 물놀이 등 가짓수만 해도 열 손가락을 다 써서 세야 한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제법 빡빡한 일정인 데다 참여를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참여율은 항상 100%다.
학부모들이 "주말에 근교 여행도 한번 가볼까 싶은데 아이들이 바빠서 못 간다"고 할 정도다
아이들은 그렇게 매일 흙을 밟고, 하늘과 산의 속삭임을 들으며 하루도 빠짐없이 자연과 함께한다.
비가 오면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따라 댐이나 아지트 따위를 만드는 등 아이들 스스로 어떻게 놀지 고민하고, 실행에 옮긴다.
그렇게 콘크리트 벽에 갇힌 도심 생활에서 벗어나 탁 트인 자연 속에서 창의력과 집중력, 독립심을 키운다.
인제군, 매 학기 작은 학교 3곳 유학생 모집…6개월 후 연장 가능
인제군은 도시 학생들을 대상으로 생태 친화적인 자연환경 속 교육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폐교 위기에 직면한 작은 학교를 살리고, 고령화 등으로 침체한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산골생태유학을 기획했다.
2021년 강원도 지역 균형발전 시범사업 공모 선정으로 확보한 사업비 7억원을 바탕으로 2022년 2학기부터 학기마다 달빛소리마을 월학초등학교, 백담마을 용대초등학교, 설피마을 진동분교 등 3개 학교에서 유학생을 모집한다.
산골생태유학 덕에 올해 1학기 재학생이 1명에 불과했던 진동분교는 6명이 새로 들어와 폐교 위기를 면했다.
유학생들은 6개월간 친환경적인 환경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생태·문화·역사를 배운다.
유학 기간을 연장하고 싶으면 한 차례(6개월) 연장할 수 있으며, 실제로 연장한 사례도 있다.
유학생들의 여건에 따라 ▲ 학생이 농가 가족과 생활하는 팜스테이형 ▲ 가족과 함께 이주하는 가족체류형 ▲ 마을 시설을 이용한 지역센터형 등 3개 유형으로 분류해 이주 부담 없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이 최근 모집한 농촌유학 역시 인제군 사례를 본보기 삼아 마련한 것으로, 운영 절차와 방식이 비슷하다.
물론 시골살이로 인해 포기하거나 감내해야 할 불편함도 있다.
우선 아이들이 아픈 경우 가까운 병원을 찾기 어렵다. 겨울에 온수가 잘 나오지 않는다거나, 의류 건조기에 익숙한 나머지 빨래한 뒤 너는 일들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도시랑 비교하면 한참 부족하겠지만, 읍내로 나가면 작은 영화관 등 문화시설도 있다.
부모들은 "참고 지내려면 충분히 참을 수 있는 것들이고, 도시에선 짜증 나는 것들도 이곳에서는 이해하게 되는 편안함 같은 것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생태유학과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인제 산골생태유학센터 누리집(https://www.injetour.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conany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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