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 꺾은 '바비', 한국에서 망한 이유 [Oh!쎈 이슈]
[OSEN=김보라 기자] 지난달 21일(현지 시간) 북미에서 동시 개봉한 영화 ‘바비’와 ‘오펜하이머’는 일명 ‘바벤하이머’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예비 관객들의 관람 욕구를 끌어올렸다.
두 작품이 같은 날 극장을 강타했던 만큼 어느 영화에 더 많은 관객이 들지 관심이 쏠렸었는데 결과는 ‘바비’의 압승이었다. ‘오펜하이머’가 모은 수익보다 북미는 물론 전세계에서 ‘바비’가 2배로 앞섰다.
12일(현지 시간) 미국 박스오피스 모조의 집계를 보면 ‘바비’(감독 그레타 거윅)는 북미에서만 4억 9260만 8894달러를 벌었고, ‘오펜하이머’(감독 크리스토퍼 놀란)는 그의 절반 가량인 2억 4546만 9475달러를 모았다. 북미에서 ‘바비’가 격차를 두 배나 벌린 것이다.
월드와이드 수익면에서도 ‘바비’가 ‘오펜하이머’보다 2배나 많은 수치를 기록했다. ‘바비’는 전세계에서 10억 6680만 8894달러를 벌어 영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13억 5619만 570달러)에 이어 전체 2위에 올랐다. ‘오펜하이머’의 글로벌 수익은 5억 7267만 6475달러다.
이렇듯 ‘바비’가 북미를 포함한 전세계에서 ‘오펜하이머’를 크게 앞질렀지만, 국내에서 낸 성적은 영 시원찮다. 해외만큼 열광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영진위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를 보면 ‘바비’는 12일까지 100만 명도 모으지 못한 54만 8947명의 누적 관객수를 기록했다. 개봉 전부터 해외에서 높은 이슈를 몰고 왔지만 국내 흥행 전선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것이다.
‘바비’는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바비랜드에서 살아가던 바비(마고 로비)가 현실 세계와 이어진 포털의 균열을 발견하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켄(라이언 고슬링)과 예기치 못한 여정을 떠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국내에서 흥행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동시기 개봉한 외화들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높았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명탐정코난: 흑철의 어영’(감독 타치카와 유즈루)이 하루 늦게 개봉했음에도 오랜 팬들을 만족시킨 액션과 눈물샘을 자극한 탄탄한 서사 덕분에 관객 유입이 더 쉬웠다.
또한 입소문으로 인한 애니메이션 ‘엘리멘탈’(감독 피터 손)의 역주행 흥행과 배우 톰 크루즈를 향한 충성심이 ‘바비’보다 ‘미션 임파서블7’(감독 크리스토퍼 맥쿼리)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여름 텐트폴 영화로 편성된 한국영화 ‘밀수’(감독 류승완)가 박스오피스 1위를 2주간 차지하면서 ‘바비’에게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 쏠린 요인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바비 인형, 켄 인형이라는 소재가 북미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소구력이 적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흥행에 실패한 세 번째 원인은 ‘바비’를 둘러싸고 페미니즘 논쟁이 불거진 것도 어떠한 의미를 지닌다. 여성 감독에, 여성 배우 주연인 ‘바비’를 페미니스트 영화로 규정지음으로써 반대급부를 따져 관람하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다.
영화를 본 일부 관객들은 가부장적 남성 중심의 지배 문화 속 폐단을 직접적으로 지적하고, 여성 우월주의적 메시지를 주입하려는 듯한 그레타 거윅 감독의 연출 방향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이는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여성영화에 대한 무관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스트,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혐오의 대상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유행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낙인을 우려해 단순히 영화를 즐기고 싶었던 여성 관객들마저 기피하게 된 것이다.
‘바비’는 애당초 여성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여성영화가 맞지만, 말하려는 궁극적인 지향점은 남성의 반대급부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남성과 동등한 입지를 갖고 동반자적 관계를 구축하자는 여성 캐릭터를 시각적으로 재현한 것에 있다. 바비 역의 배우 마고 로비가 “완벽히 페미니즘 DNA에 기반하고 있고 환상적인 휴머니스트 영화”라고 말한 그대로다.
우리나라에서 다소 변질된 페미니즘은 오직 여성을 추앙하자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남성에 대항하자는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바비’는 여성영화에 대한 사유를 가능하게 해주는 하나의 도구로써 관객들에게 유의미하게, 아니 오히려 더 활발하게 논의되어야 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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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 포스터, 영화 스틸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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