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옵션' 시행 1달, 5대 은행만 웃었다…'쥐꼬리 수익률'은 여전

김정현 기자 2023. 8. 13.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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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비중이 90%" 5대 은행 원금보장 상품 비중 78%…수익률은 2.18%
제도 도입 목적인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는 요원
디폴트옵션 시장에서도 5대 은행이 '이름값'을 바탕으로 높은 점유율을 가져갔으나 제도 도입의 목표였던 '수익률 제고'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3.6.13/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서울=뉴스1) 김정현 기자 =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지난달 12일 본격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다. 디폴트옵션 시장에서도 5대 은행이 '이름값'을 바탕으로 높은 점유율을 가져갔으나 제도 도입의 목표였던 '수익률 제고'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 공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전체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적립금 1조1019억원 중 은행권의 적립금은 9925억원으로 전체의 90.1%에 달했다.

특히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은행의 적립금만 9766억원으로 전체 적립금의 88.6%에 달해,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시장에서도 5대 은행이 절대적인 주도권을 가져가는 모양새다.

디폴트옵션은 확정기여형 퇴직연금(DC), 개인형 퇴직연금(IRP) 가입자가 만기가 도래한 시점에 별다른 운용 지시를 내리지 않더라도 금융사가 사전에 정해둔 운용방법에 따라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하도록 하는 제도다. 회사가 운용을 책임지는 확정급여형 퇴직연금(DB)은 해당되지 않는다. 퇴직연금 가입자의 수익률을 높이고 노후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2022년 7월 도입돼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달 12일부터 시행됐다.

◇5대 은행 비중 88.6%…원금보장형 상품으로 적립금 '싹쓸이'

은행별로는 신한은행이 3333억원으로 가장 많은 자금을 유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뒤를 △KB국민은행(3118억원) △하나은행(1476억원) △NH농협은행(1203억원) △우리은행(636억원) 순이었다.

신한은행의 적립금 1위 달성은 '신한은행 디폴트옵션 초저위험 포트폴리오' 상품 덕이다. 원금을 보장하는 해당 상품의 6개월 수익률은 2.19% 수준이었지만, 단독으로 3110억원의 적립금을 기록하며 신한은행 디폴트옵션 상품 중 93.3%의 비중을 차지했다.

2위인 KB국민은행 역시 원금을 보장하는 상품인 'KB국민은행 디폴트옵션 초저위험 포트폴리오'에 가장 많은 2546억원(81.6%)의 적립금이 몰렸다. 6개월 수익률은 2.18%로 비슷했다.

다른 은행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하나은행 1351억원(91.5%) △농협은행 1041억원(86.5%) △우리은행 579억원(91.0%) 모두 원금이 보장되는 초저위험 상품으로 대부분의 적립금이 몰렸다. 6개월 수익률도 2.18~2.19%로 '도토리 키재기' 수준이었다.

금융권 전체 총 223건에 달하는 디폴트옵션 상품 중 적립금 상위 5개 상품은 모두 5대 은행의 원금보장형 상품이었다. 상위 10개까지 넓힐 경우 △미래에셋증권 △대구은행 △IBK기업은행 상품까지 더해지지만 해당 상품들 역시 원금보장형 상품이었다.

ⓒ News1 DB

◇"규모 대비 수익률 저조" 지적에 디폴트옵션 도입했지만

근로자가 본인의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할 금융상품을 결정하지 않을 경우 사전에 정해둔 운용방법으로 적립금이 자동 운영되도록 하는 디폴트옵션은 국내 퇴직연금 수익률이 규모에 비해 저조하다는 지적에 도입된 제도다.

디폴트옵션 도입을 골자로 한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2021년 기준 퇴직연금 규모는 295조7000억원이었다. 그러나 수익률은 2% 수준에 불과해,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마이너스'라는 지적까지 나오기도 했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미국, 영국, 호주 등 주요 선진국들에서는 퇴직연금에 디폴트옵션을 도입해 연평균 6~8%의 안정적인 수익률을 내고 있다"고 홍보했다.

이후 하위법령 등 준비과정을 거쳐 지난해 7월 12일 디폴트옵션을 도입했으며, 유예 기간을 거쳐 지난달 12일부터 정식 시행된 상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1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서울에서 열린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 현장 안착을 위한 퇴직연금사업자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2.12.21/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디폴트옵션 '실패' 日 전철 안 밟으려면…"제도적 보완 필요"

일각에서는 이번 결과에 대해 제도 도입 때부터 예견된 결과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디폴트옵션에 실적배당형 상품만 넣도록 한 미국이나 영국·호주 등 서구권 국가들과 달리, 일본처럼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원리금보장 상품을 허용한 일본은 결국 평균 수익률이 크게 떨어져 디폴트옵션 도입 취지를 살리지 못한 실패 사례로 꼽힌다.

국내 금융에서는 가입자들의 선택권 및 투자자 보호 등을 이유로 결국 원리금보장형 상품도 디폴트옵션에 포함시켰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발표한 '퇴직연금 디폴트옵션과 수익률 개선 과제' 리포트를 통해 "원리금보장상품 허용은 수익률 개선에 부정적 요인임은 명백하다"며 "우리나라도 원리금보장상품 허용으로 인한 부정적 수익률 효과를 완화하거나 상쇄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로 디폴트옵션 시장 적립금의 90% 가까운 비중을 차지한 5대 은행 모두 원금보장형 상품에 적립금의 88.3%가 쏠리고, 수익률도 2% 초반대에 머무르며 이같은 우려는 현실이 되는 모양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퇴직연금 고객 특성상 원리금보장형 상품과 안정성이 높은 이미지를 가진 은행으로 쏠릴 것은 당연한 결과였고, 그래서 입법 과정 때부터 은행에서도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지금 상태로 두면 수익률 제고라는 제도 도입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Kri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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