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가 무슨 뜻인지 아시나요? 보이는 게 다가 아닙니다 [김기정의 와인클럽]
블랙핑크와 비슷한 반전이 와인에도 있습니다. ‘화이트 버건디’라고 들어 보셨나요? 네 맞습니다. 기승전-와인입니다. 와인 칼럼이니까요.
그래서 버건디하면 레드와인이 먼저 생각납니다.
부르고뉴에선 이 레드에 못지않은 최고급 화이트 와인이 생산됩니다. 부르고뉴 지역 레드 와인이 ‘피노 누아’라는 단일 포도품종으로 만드는 것처럼 화이트 와인도 ‘샤르도네’라는 단일 포도품종으로 만듭니다. 이걸 ‘화이트 버건디’라고 부릅니다. 와인업계의 ‘블랙핑크’가 바로 이 ‘화이트 버건디’입니다.
세계 최정상급 레드와인을 만드는 버건디의 양조장인들이 화이트 와인을 생산합니다. ‘파리의 심판’을 이끌어낸 미국 와인 샤토 몬텔레나가 있고, 저의 최애 화이트 와인 피터 마이클이나 시부미 놀 같은 쟁쟁한 와인들이 화이트 버건디의 명성을 위협합니다. 그럼에도 화이트 버건디는 결이 다릅니다.
화이트 버건디는 부르고뉴의 5개 지역에서 많이 생산됩니다. 첫 번째가 ‘샤블리(Chablis)’입니다. 다음은 가성비 좋은 샤르도네가 유명한 코트 샬로네즈(Cote Chalonnaise)와 마코네(Maconnais)지역 입니다. 코트 드 본(Cote de Beaune)에서는 상대적으로 고급 화이트 버건디가 생산됩니다.
로마테 콩티와 같은 유명 레드와인 포도밭이 몰려있는 코트 드 뉘(Cote de Nuits)에서도 화이트 버건디가 소량이지만 나옵니다.
올해 신설된 ‘레스토랑 와인 어워즈’는 레스토랑 와인리스트에 오를만한 ‘품질’이 담보된 와인을 발굴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 첫 번째로 ‘샤르도네’ 포도품종으로 만든 30개 와인을 심사했습니다. 이중 9개 와인이 금,은, 동상을 받았습니다. 이들 와인들은 울프강 스테이크 하우스 등 국내 최정상 레스토랑의 와인리스트에 오를 기회가 주어집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이동훈 울프강 스테이크 하우스 대표는 “레스토랑 와인 어워즈를 통해 선발된 좋은 와인들을 고객들에게 소개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입상한 9개의 와인중 4개가 화이트 버건디였고, 화이트 버건디 중에서도 ‘동상’을 수상한 레 파셀레르 드 쏘 샤블리 2020은 입상한 와인 중 유일한 ‘샤블리’ 지역 와인이었습니다.
저도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는데 ‘레 파셀레르 드 쏘 샤블리 2020’에 평가대상 30개 와인 중 가장 높은 점수를 줬습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진행했기 때문에 저도 결과를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함께 심사에 참가한 소믈리에들이 이 와인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주재민 정식당 소믈리에는 “풍미가 전체적으로 수준이 높다. 과일향, 절제된 오크 바디, 알코올 질감 등 밸런스가 좋은편”이라고 평가지에 적었습니다. 김진범 모수 소믈리에는 “깊이가 느껴지는 와인으로 특히 입안에서 굉장히 오랫동안 남는 여운이 일품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샤블리에는 7개의 그랑크뤼 밭이 있습니다. 부그로(Bougros), 프뢰즈(Preuses), 보데지르(Vaudesir), 그레누이(Grenouilles), 발뮈르(Valmur), 레 클로(Les Clos), 블랑쇼(Blanchot)입니다.
덜 숙성된 영(young) 빈티지 피노 누아 그랑크뤼는 지금 마시는 건 ‘범죄행위’라고 부르고 싶어질 정도로 ‘산도’가 짱짱하게 살아 있습니다. 반면 화이트 버건디는 5년 이상만 지나도 ‘거의’ 실패없이 맛있습니다.
화이트 버건디 중에 샤블리 그랑크뤼 올드 빈티지를 몇 번 마셔본 적이 있습니다.
테이스팅 노트가 남아 있는 것을 찾아보니 도멘 루이 미셸 에 피스의 샤블리 그랑크뤼 보데지르 2008년, 2012년, 2014년과 도멘 크리스티앙 모로의 샤블리 그랑크뤼 발뮈르 2010년, 2012년, 2014년을 버티칼 테이스팅한 기록이 있네요. 화이트 와인의 새로운 세계를 맛보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샤블리 그랑크뤼가 눈물이 나게 맛있는 건 아닙니다.
샤블리의 ‘명가’ 도멘 윌리엄 페브르(Domaine William Fevre)의 샤블리 그랑크뤼 부그로 ‘코트 드 부그로’ 2011, 2010, 2009년을 버티칼 테이스팅했을 때는 신선한 샤블리가 숙성되면서 어떻게 부드러워지는 지를 잘 나타냈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같은 윌리엄 페브르가 만든 샤블리 그랑크뤼 레 클로 2018을 2022년에 마셔봤는데 조금 아쉽고 힘이 약하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일반 샤블리 와인들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훌륭한 맛이었지만 눈물이 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보관 상태나 브리딩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 와인은 개인 취향이고 그때는 맛이 없었으나 지금 마셔보면 맛이 있을 수 있는 게 와인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지니 조 리 마스터 오브 와인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몇몇 지인들과 저녁을 함께 했는데요. 그날 지인 한 분이 알베르 비쇼 샤블리 그랑크뤼 무톤 모노폴 2018(Albert Bichot Chablis Grand Cru Moutonne 2018)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제8의 그랑크뤼 밭인 ‘무톤’ 포도밭에서 만든 와인인데 정말 깔끔하게 맛있었습니다. 샤블리 그랑크뤼는 ‘이런 맛이다’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습니다.
이번 레스토랑 와인 어워즈 평가에서도 ‘가성비’에 가중치를 높게 뒀습니다. 레스토랑을 찾는 소비자들이 좋은 품질의 와인을 합리적인 가격에 마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은상을 받은 샤르도네 와인 2개가 모두 부르고뉴 코트 샬로네즈의 ‘륄리’마을 와인이었습니다. 레스토랑 와인 어워즈 기사에서 이미 한 번 소개했지만 정보전달 차원에서 심사에 참여한 소믈리에들의 평가를 다시 첨부합니다.
박준영 페리지 소믈리에는 은상을 받은 도멘 로아 마쥬 륄리 ‘플랑트 모렌느’ 블랑에 대해 “과실향과 양조향, 미네랄리티 모두 우수하면서도 트렌디한 양조와 우수한 지역성이 돋보이는 와인”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다른 은상 와인인 도멘 미셸 브리데 륄리 블랑 2020도 코트 샬로네즈의 ‘륄리’마을 와인입니다.
고동연 솔밤 소믈리에는 이 와인에 대해 “아직 맛에서 영(young)한 면모가 있으나 포텐셜이 좋고 퍼포먼스도 보여줘 1년 정도 묵히면 더 좋겠다”고 평가했습니다. 김진범 소믈리에도 “맛, 향, 보디 모두 좋은 밸런스를 이루고 거기에 섬세함까지 더해져 있다”면서 “시간이 지나 좀 더 숙성된다면 굉장히 뛰어난 와인으로 발전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레스토랑 와인 어워즈에서 동상을 수상한 루이 자도 페레 푸이 퓌세 2020이 마코네 푸이 퓌세 마을 샤르도네 와인입니다.
박준영 소믈리에는 “근래 가장 사랑받고 있는 화이트 와인 스타일의 전형이며 모든 요소들에서의 균형이 잡혀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레스토랑 와인 어워즈 평가를 계기로 샤블리, 코트 샬로네즈, 마코네의 ‘화이트 버건디’를 살펴보았습니다. 맛있는 와인을 얘기하다 보니 글이 길어졌네요. 나머지 코트 드 본과 코트 드 뉘의 화이트 버건디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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