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檢이 썼다는 민주당 저격 고발장…기억상실증 깰 묘약은?
지난 대선 국면에서 여의도를 강타한 사건 중 지금까지 그 파장이 이어지고 있는 사건이 있습니다. 대검찰청에서 근무한 손준성 검사가 김웅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을 통해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에 대한 고발을 사주했다는 '고발사주 사건'입니다.
이 의혹이 사실이라면 검찰은 민주당 인사들을 2020년 총선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선거에 개입한 것이 됩니다. 당시 검찰총장은 윤석열 현 대통령이기 때문에 파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고요.
첫 의혹 제기 보도가 나온 것은 2021년 9월로, 국민의힘 대선 경선이 한창이던 때였습니다. 사건의 본질 대신 보도 시점을 놓고 같은당 경쟁자였던 유승민 캠프에서 언론에 흘린 것이라는 음모론부터 민주당의 마타도어라는 설왕설래가 이어지기도 했죠.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2020년 3월 MBC가 일명 '검언유착'이라 불리는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사건을 보도하자 '누군가' 제보자 지모씨와 보도한 기자들, 최강욱 당시 민주당 후보(현 의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는 겁니다.
친민주당 성향 기자들이 허위보도를 함으로써 윤석열·한동훈 등 검찰 지휘부와 김건희 여사 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에서였죠. 고발장은 총선 직전인 4월 초 두 번에 걸쳐 작성됐고, 이 고발장은 국민의힘 관계자이자 이 사건 제보자인 조성은씨에게 텔레그램을 통해 전달됩니다.
문제는 텔레그램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손준성 보냄'이라는 흔적이 남았다는 겁니다. 손 검사는 당시 윤석열 총장의 참모인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이 흔적만 놓고 검찰이 고발장 작성에 개입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재판부는 지난 7일까지 조성은씨와 김웅 의원, 사건을 처음 보도한 A기자에 대한 증인신문을 마쳤는데, 이번주 법정B컷에서는 이들의 증언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제보자 입에서 시작한 고발사주 의혹…김웅이 최강욱 보낸다?
2023. 6. 2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고발사주 공판 中 |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사: 김웅 의원은 통화에서 고발장 초안을 만들어 보내겠다거나 남부지검에 내라, 남부지검이 아니면 조금 위험하다고 말한 적 있죠. 누군가에게 들은 말을 전달한 것으로 보이죠? 조성은: 그 당시에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검사: 증인(조성은)은 MBC (검수완박) 보도 캡처도 (김웅 의원으로부터) 받았죠? 조성은: 네 검사: 최초 전달자는 손준성이죠? 조성은: 네 검사: 김웅 의원에게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조성은: 어떤 걸 자료로 제출하면 좋을지 확인차 질문했습니다. 검사: 2020년 4월 3일 10시 12분경 캡처 사진을 보내면서 '제보자X는 지현진임'이라는 메시지도 보냈죠? 조성은: 네. 검사: 이후 13시 47분경 지현진 실명 판결문도 전달했죠? 조성은: 네, 맞습니다 검사: 같은날 16시 19분경 피고발인 황희석과 최강욱, MBC와 뉴스타파 기자 등 1차 고발장을 촬영한 사진을 텔레그램으로 전달했죠? 조성은: 네, 맞습니다 검사: '고발장 초안을 저희가 만들어서 일단 보낼게요'라는 메시지에서 '저희'는 누구인가요? 조성은: 최소 김웅 의원 선거 캠프 사람들이나 법률 전문가로 생각했습니다. |
1차 고발장 제출 당일에도 김 의원과 조씨는 관련해 논의를 한 겁니다. 같은달 8일, 선거 일주일 전에도 김 의원은 조씨에게 2차 고발장을 주면서 민주당 인사들에게 적개심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2023. 6. 2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고발사주 공판 中 |
검사: 2차 고발장 사진 파일 관련해서도 김웅 의원으로부터 따로 증거자료를 받은 게 있나요? 조성은: 제 기억으로는 마지막 고발장 전달이었습니다. 4월 8일이면 (선거가)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라, 사실 본인 선거 잘 치러야 하는데 저는 왜 이런 문제로 전화하는지 굉장히 의아했습니다(웃음). 첫번째 고발장, 실명 판결문(을 전달한 뒤에도) 통화했지만 2차 고발장은 던지듯이 전달만 하고 이 고발장을 어째야 한다 등의 구체적 설명은 없었습니다. 검사: 2020년 4월 5일 당시 김웅 의원이 최강욱 후보에 대한 고발장을 선거 전에 접수해야 당선되더라도 유죄 선고를 받고 의원직을 상실시킬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나요? 조성은: '보낸다'는 표현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검사: '보낸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요? 조성은: 적절한 고발 조치나 법 조치를 통해서 정치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취지 아니었을까요. 제 추측입니다. 재판부: 검사님이 물어본 워딩으로 말을 했나요? 최강욱 등 고발장을 선거 전 미리 접수해야 나중에 당선돼도 유죄 판단이 나오면 의원직을 상실시킬 수 있다고 김웅 의원이 말했나요? 조성은: 그 취지로 기억하고 제 기억에 최강욱 후보에 대해서는 몇 차례나 적대적인 표현을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
표현이 다소 과격하긴 하지만 선대위원이었던 조씨와 후보였던 김 의원, 두 사람끼리만 민주당 인사들을 저격한 고발장에 대해 논의하고 제출했다면 별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습니다. 큰 선거 때마다 상대 당에 대한 마타도어식 고발은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종종 있어왔거든요. 문제는 최초 전달자가 '검사'라는 데 있죠. 조씨 주장이 맞다면 말입니다. 조씨는 어떻게 검사가 고발장을 쓴 주체라고 확신하게 됐을까요?
2023. 6. 2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고발사주 공판 中 |
검사: 김웅 의원이 피고인(손준성) 또는 다른 검찰 관계자를 언급했어요? 조성은: 그냥 계속 '우리가'라는 표현을 했어요. 검사: 실명을 언급했어요? 조성은: 기관을 말했지 개인 이름을 말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검사: 증인은 2020년 4월 3일 당시 고발장 초안 파일, 실명판결문, SNS 게시물 등을 받을 때는 누가 작성했는지도 몰랐고 누가 취합했는지도 몰랐다는거죠? 조성은: 네. 검사: 근데 4월 3일 김웅으로부터 고발장을 전달받을 당시에 '손준성 보냄'표시가 있는 것을 확인했어요? 조성은: 당연히. 전달 문서라는 것을 인식했어요. |
조씨는 2020년 4월 고발장을 전달받을 당시엔 손 검사를 캠프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2021년 A기자에게 제보를 하면서 텔레그램 캡처를 줬고, A기자가 "손준성, 검사야"라고 설명해주고 나서야 검사라는 사실을 인식했다는 게 조씨 주장입니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김웅…선택적 기억상실증일까
공수처는 이 사건 공소사실에서 "손준성과 김웅은 범여권인사 최강욱, 황희석 등이 입후보한 2020년 4월 15일자 국회의원선거에 부정적인 여론형성 등 영향을 미치게 할 것을 공모했다"라고 적시했습니다. 하지만 조씨의 증언만으로 공소사실이 범죄로 입증되는 건 아니죠. 손 검사의 자백은 가당치 않은 일이라 하더라도, 적어도 김 의원만이라도 조씨의 증언을 뒷받침해줘야 공소사실이 입증됩니다. 김 의원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2023. 7. 10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고발사주 공판 中 |
검사: 증인(김웅)이 조성은씨와 통화한 직후 보낸 자료를 보면 '손준성 보냄'이라고 기재된 자료들이 있습니다. 조성은씨랑 통화하기 전에 피고인(손준성)에게 미리 받아놓은 자료 아닌가요? 김웅: 모르죠. 검사: 모르는 거예요, 기억이 나지 않는 거예요? 김웅: 기억나지 않고 추정도 어렵습니다. 검찰: 이따 고발장 보내주겠다는 건 약속한 거니까, 조씨와 통화 전 고발장을 보내주겠다는 말을 들은 게 있나요? 김웅: 기억에 없습니다. 우리가 보통 자료를 보낼 때 고발해야 할 만한 상황이 있으면 고발장을 보내고 자료도 보내드리는 것이 통례입니다. 검사: 고발장도 만들어 보내요? 김웅: 네. 예를 들면 공정선거감시단 같은 것을 꾸려요. 여기서 고발장을 법률지원단에 보낼 때 관련 자료도, 고발장도 만들어 보내겠다고 합니다. |
김 의원은 조씨와의 통화 녹음에 대해서도 "내 목소리는 맞는데, 이런 통화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고, 고발장 초안을 전달한 것에 대해서도 "기억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중요한 질문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니, 숨김과 보탬 없이 진실만을 말하겠다는 증인 선서가 다소 무색해지는 듯 했습니다.
2023. 7. 10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고발사주 공판 中 |
검사: 조성은씨는 증인(김웅)에게 고발장 내용을 전략본부회의에서 상의하겠다고 하고, 증인은 "'우리'가 어느 정도 초안을 잡아봤다. 이정도 보내면 검찰에서 알아서 수사해준다. 이렇게 하시면 돼요"라고 했어요. 검찰에서 알아서 수사해준다는 말이에요? 김웅: 이 사건 처음 보도 나왔을 때 "우리가 어느 정도 초안을 잡아봤다, 이정도 보내면 검찰에서 알아서 수사해준다"라고 하면서 이게 검찰이 결정적으로 고발을 사주한 증거라고 했어요. 저도 그렇게 알았고, 왜 '내가 이렇게 얘기했지'라고 생각도 했습니다. 근데 공수처 조사받으면서 이 녹취록을 처음 봤더니, 앞에 "예를 들면"이라는 표현과 "이렇게 하시면 돼요"라는 표현을 빼놓고 썼어요. 저는 이게 '와꾸 수사'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조성은 당신이 선대본부에 가서 얘기하라, 초안 잡았다고. 구체적 내용을 모르면 "이 정도 보내면 검찰에서 알아서 수사해줘요"라고 얘기한 겁니다. 우리라는 것은 조성은과 김웅 말하는 거죠. |
언론 보도를 짜깁기 하다시피 한 고발장을 제출해도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는 판국이니, 김 의원의 말에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재판부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증인이 답답했던 걸까요? 증인신문이 끝난 뒤 직접 나서 김 의원에게 질문을 쏟아내다시피 했습니다.
2023. 7. 10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고발사주 공판 中 |
재판부: 기억이 나지 않는데, 피고인(손준성)이 보낸 것이 100% 아니라고 할 수 있나요? 김웅: 만약 피고인이 보냈다면 이 자료에 대해 제가 조금 더 신경을 썼을 겁니다. 그리고 조성은씨에게도 '이런 이런 자료니까 좀 신경 써서 봐달라'고 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것도 전혀 없고, 그리고 손준성 검사와 개인적으로 무슨 통화를 해 본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느닷없이 손 검사가 나한테 이런 걸 보내서 고발해 달라고 부탁했을 가능성이 진짜 희박하다고 봅니다. 재판부: 이 사건이 기소된 결정적인 이유가 증인을 통해서 조성은씨에게 전달된 자료에 '손준성 보냄'이라는 글자가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은 이 워딩을 그냥 스쳐갈 수 있지만, 증인은 지인이니까 아닐 것 같은데, 전혀 기억이 없나요? (※손 검사와 김 의원은 사법연수원 동기) 김웅: 만약에 제가 그걸 봤다면, 조성은씨한테 안 보내고 직접 확인했을 겁니다. 그렇다고 '손준성 보냄'이라는 그 자체가 조작됐다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
재판부의 추궁에도 김 의원은 단호했습니다. 하지만 김 의원의 답변에 의문은 남습니다. '손준성 보냄'이라는 표식을 봤다면 직접 확인했을 거라는 답변은, 두 사람이 사전에 미리 짜고 고발장을 조씨에게 전달했느냐는 이 사건 핵심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지 않을까요?
제보자 편 든 기자…"김웅이 검찰에서 받아온 고발장"
2023. 8. 7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고발사주 공판 中 |
검사: (텔레그램 캡처를 보여주며) 1·2차 고발장과 청구 자료 파일은 어떤 방식으로 조성은씨로부터 전달 받았나요? 기자: 1·2차 고발장과 첨부 파일은 처음에 USB에 담아서 받았고, '손준성 보냄'이라고 전달된 텔레그램 메시지들처럼 텔레그램으로 전송 받은 것들이 있습니다. 검사: '손준성 보냄'이라는 걸 보신 것도 2021년 7월 21일이네요? 기자: 정확히 인지한 건 그날 맞아요. 검사: 2021년 5월 27일경 증인이 조성은씨를 만났을 때 조씨가 증인에게 "저한테 김웅이 검찰에서 써서 준 거라면서 나한테 고발하라고 했다"는 말을 했어요? 기자: 그런 취지로 이야기한 적 있습니다. 검사: 조성은이 김웅과 자신의 텔레그램 대화방을 보여준 게 맞아요? 기자: 보여준 것이 맞고 그 당시 상황이 정확히 기억 납니다. (중략) 피고인 측 변호인: 맥락을 짚어가기 위해서 증인(기자)과 김 의원 사이 통화 내용을 말할게요. 증인이 김 의원에게 "손 검사가 보낸 고발장을 조성은한테 전달했던데 최종적으로 국민의힘 선대위에 보고됐다고 들었거든.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따로 요청 받은 거냐"고 물었죠? 그러자 김 의원이 포괄적으로 "그건 아닙니다, 그쪽과 연결된 것 없어요. 윤 총장과 전혀 상관 없어요"라고 대답했죠? 기자: 그럴 수 있는데 그 이후 맥락 보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변호인: 증인은 김 의원에게 "손준성이 보낸 걸로 되어있는데" 라고 하니깐 김 의원이 "그건 잘 모르겠어요, 준성이에게 물어봐줄 수 있겠죠"라고 합니다. 결국 잘 모르겠다고 답하는 거잖아요. 부인하는 취지도 있지만 결국 모른다는 취지 아니에요? 기자: 그 중간에 보면 고발장 내용을 이야기하지도 않았는데 의원님이 공직선거법에 대해 먼저 말하거든요. 이거 보고 고발장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구나 확신했습니다. |
자, 이번주로 이 사건 주요 증인들의 신문이 마무리됐습니다. 텔레그램 기록만 보면 손 검사가 김 의원에게 고발장을 보낸 것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를 '인지'하고 있었는지는 사건을 처음 보도한 기자의 증언을 보더라도 100% 확신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더욱이 제보자와 기자의 증언을 제외하면 공수처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건 '손준성 보냄'이라는 텔레그램 포워딩 메시지 하나뿐인 것도 같습니다.
김 의원처럼 "기억나지 않는다(I don't recall)"라는 답변을 되풀이한 사람이 있습니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대선 캠프와 러시아 간 유착 의혹과 관련한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서 법무장관이었던 제프 세션스는 시종일관 "기억나지 않는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는데요. 결국 청문회도, 특검 수사도 빈손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남은 건 미국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했다는 미국인들의 심증 뿐입니다.
물론 "기억나지 않는다"는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일견 떳떳해 보이지 않는 답변이긴 하지만, 이를 뒤집을 결정적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요긴한 전략이기도 합니다. 김 의원의 기억을 되살릴 묘약을 공수처는 남은 재판 과정에서 제시할 수 있을까요? 재판부는 심증만으로 판결을 내릴 수는 없으니까 묻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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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박희원 기자 wontim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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