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10명 중 3명 정신과 찾았다

남보라 2023. 8. 13. 07: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신과 진료받는 교사 6명 인터뷰]
①악성민원 ②관리자 무책임 ③과도한 업무
최근 5년간 정신과 진료받은 교사 26.6%
밤낮 이어진 부모민원· 교장 "사과해라" 반복 
일본 정신질환 휴직 교사 6,000명 육박
전문가 "교사 정신 건강 신경 써야"
지난 5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교사와 학생을 위한 교육권 확보를 위한 집회'에서 한 교사가 사망한 서이초 교사 유족의 발언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제가 겪은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보다 심한 일 당한 선생님들이 더 많아요.”

지난달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인터뷰한 10여 명의 교사들이 공통적으로 한 얘기다. 교권 침해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넓고 깊게 퍼져 있다고 한다. 이들은 교사라는 이유로 악성민원에도 목소리를 낼 수 없었고, 피해자지만 사과하는 것에 익숙했다. 그래서 속이 곪았다.

올해 4월 교사노동조합연맹이 교사 1만1,37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 중 26.6%(3,025명)가 '최근 5년간 교권침해로 정신과 치료나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정신과를 찾는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6개 지역(경북, 부산, 인천, 전남, 충남, 충북) 초교 3~24년 차 남녀 교사 6명이 답했다. 이들은 ①학부모의 악성민원 ②민원에 대한 관리자의 무책임 ③과도한 업무 등을 공통적인 문제로 꼽았다.


"애 옷 늘어났는데 뭐 했냐" "인성 쓰레기"...학부모 악성민원

사망한 서이초 교사의 아버지가 쓴 편지가 지난달 29일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대규모 집회’ 현장에서 공개됐다. 아버지는 "딸내미는 많이 아팠구나"라며 안타까워했다. 온라인커뮤니티 캡처

9년차 교사(34·충남)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잊어버렸다"

“또 전화가 왔다. 그날 친구들과 잡기놀이를 했던 학생의 부모다. ‘애 새 옷이 다 늘어났는데 왜 나한테 전화 안 했냐’고 다그쳤다. 다른 부모들은 '옆 반처럼 우리 반도 소통하자'며 아이들의 사진을 요구했다. 온라인 학급 커뮤니티를 만들어 30여 명의 학생 사진을 한 명씩 찍어 매일 올렸다. 그랬더니 '사진 보니 우리 애가 왕따인 것 같다'는 전화가 왔다.
갈수록 교사로서 자존감이 떨어졌다. 학부모 서비스라도 잘해야겠다 싶어 요구를 다 맞춰줬다. 그러다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잊어버렸다.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인지, 학부모에게 잘 보일 생각만 하는 사람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무슨 활동을 하든 학부모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생각부터 든다. 그래야 내가 안전하니까. 2년 전부터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게 됐다."

24년 차 교사(45·인천) “부모가 297줄의 메시지를 보냈다”

학부모가 자녀가 틀린 단원평가 문제를 끝까지 맞다고 우겼다. 결국 문제를 출제한 출판사에 연락해 정답을 다시 확인해줬다. 모든 학생이 온라인으로 해야 하는 정서행동검사를 기간 내에 하지 않아 아이에게 따로 검사지를 줬더니 망신을 줬다고 따졌다. 내 생활지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등교를 거부하기도 했다. 이 학부모는 학습지를 나눠줄 때 던지듯이 줬다는 등의 이유로 교육청에 두 번이나 나를 신고했다.

교감은 ‘해명하면 괜히 긁어 부스럼이 되니까 무조건 사과하라’고 했다. 그 후로 그 학부모는 아이 기분이 조금만 나빠도 사과를 요구했다. 학부모의 채팅은 밤낮, 주말도 없었다. 학부모 혼자 297줄의 메시지를 보낸 날도 있다. 아이까지 내게 ‘인성 쓰레기. 이제 잘리겠네요’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날 아동학대로 신고당했다. 무혐의로 결론 났지만, 나는 여전히 정신과 약을 먹는다.”


"교장도 믿을 수 없다"...눈감은 관리자

2년 전 교사 2명이 잇따라 자살한 경기 의정부시의 한 초등학교에 9일 추모객이 남긴 메시지와 꽃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12년 차 교사(35·충북) "교장은 늘 '선생님이 사과하세요' 했다"

“퇴근길 주차장에서 학부모 전화를 받았다. ‘네가 뭔데 우리 애를 조퇴 안 시켜. 아는 변호사랑 경찰 데리고 갈 거니까 그대로 있어.’ 스피커폰을 켠 것처럼 그의 욕설이 주차장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아이 조퇴를 문의했을 때 집에 보내지 말라고 한 건 그 학부모였다.

알코올 중독 문제를 겪고 있던 학부모는 다른 학년 자녀의 담임도 괴롭혔다. 교사 두 명에게 악성민원을 반복하는 그를 교장이 직접 상담해 교사들을 보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교장은 ‘부모에게 사과하라’고만 했다. 결국 사과했고, 학부모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같은 시민 대 시민이었다면 112신고를 할 수도, 따질 수도 있었겠지만 교사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허허벌판에 혼자 서서 언제 공격받을지 몰라 불안했다. 교장도 믿을 수 없었다. 그 후 다른 교사들로부터 신경정신과 병원을 소개해달라는 문의를 종종 받았다. 그런 문의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14년 차 교사(40·경북) “갑작스러운 발병, 교감은 진단서만 요구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을 할 때였다. 어머니가 아이를 때려서 이웃이 아동학대로 신고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담당자와 함께 아이 집에 방문했다. 어머니와 잘 이야기하고 귀가했다. 그런데 저녁 늦게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아이 가르치다가 그럴 수도 있지. 애들 등교 안 하는데 선생은 뭘 하느냐.’

계속되는 폭언에 판단력이 흐려져 연신 ‘죄송하다’ 사과하며 울었다. 다음 날까지 계속 숨이 가빠서 출근을 못 하고 병원에 갔다. 공황장애라고 했다. 정신과 진단서는 한 달간 상담해야 나오는데, 교감은 진단서가 없으면 병가를 못 내준다고 했다.

‘나만 죽으면 이 복잡한 문제가 끝날 것’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남편이 일을 그만두고 24시간 옆을 지켰다. 한 달 후 복직하니 학교가 기간제 교사를 구하지 않아 동료들이 내 일까지 하고 있었다. 교감이 교사를 괴롭히려면 이렇게까지 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수업, 학예회 준비, 원어민 강사 관리까지...업무폭탄

지난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추모 및 공교육 정상화 촉구 집회에 참석한 전국의 교사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3년 차 교사(27·전남) "1년 차에 난청, 정신과 치료가 시작됐다"

“전남은 교사들이 기피하는 지역이다. 왜 그런지는 출근 첫날 알게 됐다. 10년 차 넘는 교사가 학기 중 사직한 반을 맡게 됐다. 일을 시작한 지 3시간도 안돼 학교 시스템에 로그인해 본 적도 없는 내게 교감이 수업 중에 전화했다. ‘공문 올리세요.’ 업무폭탄의 시작이었다. 애들이 공부는 잘하는지, 왜 싸웠는지엔 관심이 없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숫자와 공문을 채우는 데만 급급했다. 소리를 지르고 수업 중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 교감과 교장에게 하소연했다. ‘어떻게 합니까. 선생님이 연구하고, 학생들을 이해해야죠.’
전체 학생의 30%가 기초학력이 미달인 학교였다. 1년 차 교사인 내게 기초학력 업무를 맡겼다. 담당 교사 연수에 가보니 90% 이상이 20대였다. 모두 신규교사에게 기피 업무를 맡겼다. 갑작스레 난청이 왔고, 아직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재발한다. 정신과 치료도 6개월간 받았다.”

6년 차 교사(29·부산) “도움 요청하러 갔더니 TV 보고 있었다”

첫 발령 학교에서 영어와 음악 전담 교사를 하면서 방송, 다문화 업무까지 맡았다. 큰 학교에선 교사 한 명이 합창부만 따로 맡고, 영어는 4, 5명이 같이 하는 업무다. 내 수업을 하며 영어 강사 2명을 관리하고, 영어 학예회, 영어공모사업까지 담당했다. 온갖 행사가 겹쳐 도저히 혼자 감당할 수 없던 날, 교무실에 도움을 요청하러 갔다. 한 교사는 TV로 축구를 보고 있었다. 학교 측에 업무를 덜어달라고 하면 ‘그 교사는 일을 못해서 못 맡긴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출근길에 버스를 타기 위해 건너는 횡단보도. 거기서 안 좋은 생각을 자주 했다. 신경정신과에 갔더니 의사는 우리 학교 교사를 많이 진료해 본 눈치였다. 필요하면 언제든 진단서를 써주겠다고 했다. 학교가 바뀐 후 조금씩 호전됐지만 그때 생긴 불면증은 아직도 나를 괴롭힌다.”


"도움받을 수 없다는 느낌은 자살과 관련된다"

교사 사망 사건이 발생한 서울 서초구 서이초를 방문한 한 교사가 7일 오전 추모 공간에 헌화하고 있다. 뉴시스

홀로 학생과 학부모를 대하면서 온갖 행정 업무까지 도맡는 곳, 학교는 교사들에게 너무 가혹한 공간이 됐다. 그럼에도 도움을 요청할 곳은 없는 곳.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서이초 교사 사망 후 발표 성명에서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느낌’은 자살 위험과 큰 관련이 있다”며 “학생들은 교내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하는 등 고충 해결 시스템이 수년간 개선됐지만 교사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과 돌봄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한국 사회만의 일은 아니다. 일본도 학부모 민원과 초과근무로 인해 정신질환을 호소하며 휴직한 교직원 수가 2021년 5,897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우리의 미래가 되지 않기 위해선 교사의 정신 건강 문제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교사의 정신건강은 개인 건강을 넘어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교사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고충을 상담하고, 심리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