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넘어 운동하니 키도 크더군요”…81세 ‘몸짱 할아버지’ 이순국 전 신호그룹 회장[서영아의 100세 카페]
협심증으로 쓰러진 뒤 운동에 진력
“뭔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
“일흔 넘어 운동하니 키가 크더라”
재계 25위 그룹, IMF로 물거품 돼
“강을 건넜으면 뗏목은 버려라”
돈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것
건강보다 더 값진 재산은 없다
이순국 전 신호그룹 회장(81)의 인생 후반전은 68세에 시작됐다. 일본 여행 중 협심증으로 쓰러진 게 계기였다. 평생 운동과는 담을 쌓고 지내던 그가 마침내 ‘운동할 결심’을 했다.
이후 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신체 개조를 단행했다. 이론공부에도 뛰어들어 74세에 서울과학기술대에서 체육학 석사, 76세에 상명대에서 체육학(운동생리학) 박사, 81세에는 순천향대 의대에서 의학박사(예방의학)를 취득했다.
건강서 ‘나는 일흔에 운동을 시작했다’를 펴내고 건강전도사로 활약하기 시작한 건 2018년부터. 이듬해에는 전작의 실천편인 ‘몸짱할아버지의 청춘운동법’을 펴냈다. 최근 낸 세 번째 책 ‘다시 시작하는 인생수업(동양북스)’은 인생후반전을 사는 법을 논하고 있다.
요즘도 매일 2~3시간씩 체계적인 운동을 한다는 그를, 지난달 28일 서울 광화문 본사에서 만났다.
혼신 다해 일궈낸 재계 25위 그룹이 물거품으로
맨손으로 시작해 한때 재계 25위까지 사업을 키워냈지만 아시아 금융위기로 모든 것을 잃었다.
1997년 태국 바트화의 폭락으로 촉발된 아시아 금융위기는 한국의 IMF 외환위기로 이어졌다. 1998년부터 기업의 줄도산과 대량 해고 사태가 확산됐다.
1997년 신호그룹은 최정상에 있었다. 제지업에서 철강, 전자, 화학, 금융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해 총매출 1조 원 규모에 35개 계열사를 거느렸다.
세상은 그를 ‘부실기업 조련사’, ‘무서운 작은 거인’, ‘마이다스의 손’ 등으로 불렀다. 하지만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이었다. 30여 년 젊음을 바쳤던 기업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한창 때 ‘비즈니스맨의 신화’라는 말씀을 들었다고요.
“망해가는 기업을 인수해 살려내는 것으로 유명했죠. 한 번 그렇게 성공하고 나니 은행에서 부도위기에 빠진 기업을 맡아달라고 자꾸 제안이 왔어요. 그러다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았지요. 당시 태국에 신문지 공장이 있었고 국내에도 설비투자를 많이 했어요. 외화차입이 많았는데 환차손이 크게 났지요.”
강을 건넜으면 타고 온 뗏목을 버려라
우리는 각자의 시대를 각자의 인생사이클에 따라 겪게 된다. 그는 2006년 신호제지 매각을 끝으로 모든 사업을 접었다.
-큰 재앙이 닥치면 때마침 가장 많은 것을 일군 세대가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되지요.
“전 그때 50대 중반이니 젊은 축이었죠. 30대 그룹 가운데 절반은 날아갔어요. 진로 한보 해태 삼미 쌍용 동아건설 그 다음에…”
-옛날 얘기가 나오면 조금 억울하거나 아쉽지 않으세요.
“어쩌면 그건 숙명이었어요. 모두가 중소기업만 했다면 우리나라가 매년 10%대 성장을 할 수 있었을까요. 전체 파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대우처럼 해외로 뻗어나가는 회사가 필요했던 거죠.
부채도 그래요. 한국은 1960년대부터 ‘부채도 자산’이라며 외자를 도입해 경제를 팽창시켜왔죠.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이 커졌는데, 어느 순간 구조조정이 필요해진 거죠. ‘아…, 우리는 하나의 주춧돌로 쓰였구나’하고 받아들여야죠.
그걸 억울하다고 해야 됩니까? 전 자부심을 갖는 쪽이예요. 내가 30년 간 대한민국 경제부흥의 주춧돌로 사명을 다하고 물러났다고 보는 거죠.”
-지금 와서는 그렇게 생각하시겠지만 그 과정에서는 괴로우셨을 듯해요.
“물론이죠, 인간인데…. 그래도 담담하게 정리했다는 얘기죠. 제 신조가 강을 건넜으면 타고 온 뗏목은 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과거에 연연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지요.”
68세에 닥친 협심증…신체개조 돌입
협심증으로 쓰러진 것은 스스로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얼마 뒤 친형인 이순목 전 우방그룹 회장이 74세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 더 큰 충격을 안겨줬다.
“기업하는 사람은 본인 건강관리는 뒷전일 수밖에 없어요. 형님이 갑자기 돌아가신 것도 사업할 때 스트레스에 찌든 생활습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사업할 때 폭탄주 10잔은 기본이던 술을 끊고, 생활습관 자체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맥박 재는 기계니 러닝 머신도 사고, 제대로 운동을 시작한 거죠.”
무작정 열심히 운동하려다 보니 의문이 생겼다. 고령자에게 적절한 운동이란 무엇일까. 운동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014년 서울과학기술대 스포츠과학과 대학원에 입학, ‘고강도 저항성 운동이 남성 고령자의 신체 구성 및 활동 체력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을 위해 필리핀에 가서 사람들을 모아 3개월간 운동시킨 뒤 골밀도 등 신체변화 데이터를 비교했다.
이어 ‘저항성 운동 강도가 남성고령자의 신체 구성, 체력 및 산화 스트레스에 미치는 영향(2018)’을 주제로 상명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때는 광주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3개월간 운동을 하게 한 뒤 혈액검사 등을 통해 체내 활성산소의 변화양상을 연구했다.
여기에 3년간 운동을 하며 자신이 겪은 체중과 골밀도, 근육량 변화 등도 자료가 됐다.
“뭔가를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는 없다”
처음 대학원에 지원했을 당시 나이가 72세. 교수들 사이에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제일 문제가 ‘통계’였다.
“논문 쓰려면 엑셀, SPSS같은 통계를 잘 다뤄야 하는데 전 컴퓨터를 만져본 적이 없었어요. 평생 비서가 다 해줬으니까. 타자를 쳐본 일도, 계산기를 두드려본 일도 없었지요. 당연히 교수들이 반대하죠. 제가 책임지고 배우겠다고 맹세를 했습니다.”
엑셀 책과 컴퓨터를 사서 더듬더듬 익혀 갔다. 지금은 노트북을 늘 끼고 다니며 능수능란하게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드는 경지에 이르렀다. 뭔가를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는 없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해보인 셈이다.
“처음에는 컴퓨터 자판을 놓고 ‘ㄱ(기역)’이 어디 붙어 있나부터 찾았어요. 인터넷으로 입학원서 하나 쓰며 몇 번을 문의하고 난리를 쳤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겼지요.”
-2월에는 의학박사 학위를 받으셨는데.
“운동의 효능을 의학적으로 보면 어떨지 궁금해졌습니다. 꾸준히 운동하며 건강하게 사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이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답을 찾고 싶었어요.”
일흔에 운동 시작하자 키 크고 근육량↑체지방↓
일반적으로 노인은 키가 줄어든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운동을 시작한 뒤 오히려 키가 커졌다.
그가 운동을 시작한 시점인 70세 11월과 80세 11월의 데이터를 비교하면 신장은 156.5cm에서 157.3cm로 0.8cm 커졌다. 체중은 52kg에서 53.4kg으로, 골격근량은 17.8kg에서 26.5kg으로 늘고 체지방은 20.58%에서 11.4%로 줄었다.
“운동으로 노인의 몸도 바람직하게 변하는 거죠. 지금 제 심장의 산소섭취도는 30대 수준입니다.”
-이제 협심증 걱정은 내려놓아도 되는지요.
“현재로서는 그렇지요. 혈액의 점성을 묽게 하기 위해 평소 물도 열심히 마십니다.”
그는 격일로 아침에 1시간 정도 조깅을 하고 매일 오후 헬스클럽에서 2시간씩 근력운동을 한다. 그에 따르면 근육은 72시간까지 운동을 기억한다. 그래서 72시간이 넘기 전에 다시 해당 근육을 운동시켜줘야 한다.
그는 몸의 근육부위를 크게 6개로 나눠 하루 두 군데씩 2시간, 3일간 돌아가며 운동해주는 방식으로 몸 전체의 근력운동을 이어간다. 이렇게 운동을 시작한 이래 십여 년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고 코로나 바이러스에도 감염되지 않았단다.
“‘어차피 죽을 건데…’는 자신에 대한 모독”
-건강전도사 활동에 열심인 이유는?
“제가 운동에 열심인 것은 내 인생을 책임지기 위해서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에 대한 책임을 자기가 져야 한다고 알리고 싶어요. 내가 몸져눕거나 병원을 내집처럼 드나들면 가족에게 끔찍한 고통을 주게 되지요.생로병사는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지만 가급적 오래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추는 것은 자신은 물론, 가족과 타인을 배려하는 일이예요.”
-‘누군들 아프고 싶어 아프냐’는 반론이 있을 듯합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잖아요. 그러니 미리미리 운동하고 건강해지자는 얘깁니다. ‘늙으면 어차피 죽을 건데, 뭘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 그냥 술이나 마시자.’ 이렇게 말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이런 말은 자신에 대한 모독이고 가족과 타인에게 무책임한 말이예요. 이런 친구들일수록 어딘가 몸이 안 좋더군요.”
“혼자 하는 최후의 여행, 제대로 준비해야”
이번 신간 표지에는 홀로 배를 타고 노를 젓는 사람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인생이라는 배를 타고 혼자 노저어 서해로 가는 사람을 그린 겁니다. 제가 아이디어를 냈어요. 저는 65~70세에 전반전을 끝낸 뒤 혼자 서해바다를 향해 마지막 항해를 하는 게 후반전이라고 봐요. 서해로 간다는 건 죽으러 가는 건데, 그걸 자기 힘으로 가자는 거죠. 혼자 노를 저어 바다로 가라. 노인이 되면 그런 주체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건강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모든 고령자가 회장님처럼 운동해야 할까요.
“그건 어렵겠죠. 그래도 하루 최소한 30분 걷고 30분 근육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주장하는 게 운동일지를 적는 겁니다. 어려우면 달력에 운동한 날을 체크만 해놓아도 1년간 내가 며칠 운동했는지 알 수 있죠. 우리가 전반부를 잘 살기 위해 하루 8~9시간씩 학교에 가잖아요. 후반부에 그거 하루 한 시간도 못 하느냐고요.”
-앞으로의 계획은.
“모 대학 노년학 박사과정에 지원했는데 떨어졌어요. 가을에 다른 곳에 시험 쳐야죠. 혹 노년학이 어려우면 심리학을 공부할까 생각 중입니다. 80대에는 노년학이나 심리학, 90대에는 종교학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너무 열심히 사시는 것 아니냐고 물으려다 퍼뜩 드는 생각. 이 세대는, 혹은 이 분에게는 이게 최선이 아닐까. 산업화 세대는 맨손으로 시작해 자신을 갈아넣어 한국의 굵직한 성장을 이뤄낸, 그 성취의 기억이 습관처럼 몸에 배어버린 세대다. 어쩌면 ‘노력’은 그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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