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엑스포' '성화 꺼진 아시안게임'... 국제대회 망신사
2000년대 스포츠 대회 운영 미숙 속출
인천아시안게임, '동네 운동회' 오명도
잼버리 파행… "남 탓 말고 철저히 복기"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가 파행 논란 속에 막을 내렸다. 각국 청소년 4만여 명이 참가한 국제대회였지만, 어원인 '유쾌한 잔치'(Jamboree)라는 의미가 무색하게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지난 1일 개막부터 마지막 날인 11일까지 행사 기간 동안 사전 준비부터 대응까지 부족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①폭염으로 온열 질환자가 무더기로 발생하고 ②화장실·샤워실 등 새만금 야영장 내 열악한 시설과 위생 문제가 제기되고 ③태풍 '카눈' 북상으로 인한 조기 퇴영에 전국 곳곳에서 행정 혼선이 빚어졌다. 총체적 부실을 드러낸 이번 대회가 역대 최악의 국제대회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과거 논란이 됐던 국제대회 역사를 살폈다.
폭우로 침수·정전… 대전 엑스포 '물난리'
1993년 치러진 대전 엑스포는 장마철 폭우로 고역을 치렀다. 개막 이틀째인 8월 8일 시간당 30mm를 넘는 강한 비가 쏟아지면서 행사장 안팎이 모두 침수됐다. 엑스포 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은 밤새 양동이로 물을 퍼내고 전기를 복구했다. 당시 벼락으로 모노레일 열차의 전원공급장치가 고장 나 승객 72명이 공중에 2시간 동안 고립되는 사고도 발생했다.
당시에도 엑스포 개막을 앞두고 사전 준비가 부족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당시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개막 3개월 전인 5월 엑스포 일부 시설물 지붕에서 누수 현상이 발생했다. 시공사가 급하게 배수로를 내는 등 보강공사를 했다는 내용도 있다. 엑스포가 끝난 그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감사원은 감사 결과 △오·배수관 및 냉·온수 펌프 설계 부적정 △경비 절감 대책 미흡 △주변도로 건설사업 시행 부적정 등 부당 사항 31개를 지적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폭우와 부실 운영에도 엑스포는 행사 기간 전 국민의 약 3분의 1인 1,400만 명이 다녀가면서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이를 바탕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 등 각종 국제대회 유치의 초석이 마련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스포츠 대회 경험 부족에… 미숙한 운영
2000년대는 다수의 스포츠 국제대회가 국내에서 열렸다. 하지만 국제대회 유치 경험이 부족해 곳곳에서 미숙한 운영이 문제가 됐다. 2002년 9월 부산아시안게임 개막 6일 전 열린 한국과 쿠웨이트 축구평가전에서 경기장 내 조명 3개가 20여 분간 꺼지는 정전 사태가 발생해 경기가 중단됐다. 2011년 8월 열린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도 첫 경기부터 잡음이 빚어졌다. 여자 마라톤 경기에서 출발 신호로 총성 대신 종소리가 울려 선수들이 단체로 출발을 두 번 하는 혼란이 초래됐다. 도로에 주차된 대형버스가 선수들의 진로를 방해해 경기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마라톤 경기에 따른 교통통제 해제 시간을 잘못 정해 인근 지역에는 교통대란이 일어났다. 당시 참가자들은 경기장과 숙소 간 셔틀버스 운행이 부실하고, 식당 등 편의시설 이용에도 불편이 컸다고 토로했다. 한 외신기자는 당시 본보 인터뷰에서 "OECD 국가에서 열리는 대회라곤 믿어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또 흥행 실패로 텅 빈 관중석을 채우기 위해 공무원과 초등학생 수백 명이 동원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동네 운동회' 된 인천아시안게임
2014년 9월 19일 열린 인천아시안게임은 '동네 운동회'라는 오명을 썼다. 개막 후 이틀 만에 대회 상징인 성화가 장치 오작동으로 약 12분간 꺼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같은 날 배드민턴 경기에서도 정전이 발생해 경기가 일시 중단됐다. 또 다른 경기장에서는 발권기가 고장 나 입장권 판매가 지연됐다.
시설과 위생도 열악했다. 주 경기장 화장실 배관에서는 소변이 밖으로 새어 나왔다. 편의시설 부족으로 선수들과 관객들의 불만이 속출했다. 또 선수들의 도시락에서 식중독균인 살모넬라균이 검출돼 조직위가 도시락 76개 전량을 폐기하고, 급하게 빵과 우유 등을 제공해 선수들의 원성을 샀다.
통역과 경호 등 자원봉사 인력이 부족해 선수가 직접 통역을 하는 해프닝도 빚어졌다. 당시 육상 남자 1,500m 경기가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주최 측은 "영어로만 통역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중동 선수들이 대부분인 종목에서 아랍어 통역이 배치되지 않아 결국 금메달리스트 모하메드 알 가르니(카타르)가 다른 선수들의 소감을 영어로 전달해야 했다. 당시 외신들은 "동네 운동회 수준의 대회"라고 혹평했다.
열정페이·부실식단...평창동계올림픽
영하 10도가 넘는 한파에 치러진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도 곳곳에서 문제가 노출됐다. 당시 올림픽 개회식 공연에 예술 전공 대학생과 고등학생 등이 대거 동원됐다. 이들은 한 달 넘는 공연 준비 기간 턱없이 낮은 보수를 받아 '올림픽 열정페이'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한파에 방한용품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이들은 핫팩과 워머 등을 사비로 구입하기도 했다.
올림픽 참가자들의 식단도 도마에 올랐다. 특히 자원봉사자 등 운영 인력들은 한파에 꽁꽁 언 식빵을 아침으로 제공받거나, 반찬 수가 1, 2개에 불과한 부실한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웠다는 폭로도 쏟아졌다. 대회 도중 폭설이 내려 강원도청 공무원 등이 총동원돼 제설 작업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북한의 적극적인 참여로 11년 만의 남북 공동입장이 성사되면서 전 세계에 '평화 올림픽'을 각인시키고 폐막했다.
새만금 잼버리, 91년 고성과 무엇이 달랐나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가 국내에서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1년 8월 강원 고성군에서 제17회 잼버리대회가 열렸다. 고성군은 행사가 치러지기 1년 전 한국잼버리대회를 예비 행사로 열고 △상수도와 화장실·샤워장 부족 △배수시설과 도로망 미비 △활동장의 안전시설 문제 등 미비점을 파악해 개선했다. 사전 점검으로 시설을 보완하면서 당시 잼버리 대회는 무탈하게 지나갔다.
"비싼 수업료 냈다"...반면교사 삼아야
전문가들은 이번 잼버리 대회를 반면교사 삼아 2025년 아시아·태평양 잼버리, 2030 부산엑스포 등 국제대회 유치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9일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과거에 비해 대회 운영 시스템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권위적인 조직 분위기가 다른 것보다 우선시되고 있다"며 "행정이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상명하달식 위계질서에서 운영된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조직위 관계자도 "실질적으로 대회를 주관하는 조직은 여성가족부와 전북도지만, 다른 부처에서 협력을 끌어내기에 조직 역량이나 영향력에서 한계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큰 규모의 국제대회를 개최할 때는 전 부처를 아우를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번 대회 총체적 부실 운영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번 정부가 제대로 복기해 뼈 아픈 교훈으로 삼아 앞으로 유치할 국제대회를 위해 수업료를 충분히 냈다고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회는 6년간 1,170여억 원의 예산을 들여 준비했다.
김소희 기자 kim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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