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는 손 들어봐"…과거 차별받던 왼손잡이들, 요즘은 어떨까
"왼손잡이 차별은 장애인·다문화가정 차별과 비슷"
(서울=뉴스1) 문혜원 기자 = 어린이집에서 한창 재롱잔치를 준비할 때였다. 교사는 왼쪽과 오른쪽을 잘 구별 못하는 원생들에게 '밥 먹는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당연하게 왼손을 들었다. 하지만 교사는 "너는 밥 먹는 손이 그쪽이니"라며 꾸짖었다.
대학생 하별씨가 최초로 기억하는 '차별' 경험이었다.
하씨는 가족이 모인 명절 때면 집안 어른의 탐탁지 않은 시선을 느꼈다. 부모님조차 그의 손쓰임을 교정해 달라고 어린이집에 요청했다. 모두 그가 '왼손잡이'라는 이유에서다.
과거 주홍글씨였던 왼손은 그가 성인이 되자 큰 도움을 줬다고 한다. 패션디자인 전공인 그는 왼손을 자주 썼던 과거가 학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강조했다.
하씨는 "왼손잡이들은 우뇌를 써서 예체능에 강하다고 하는데 실제로 미대에 왼손잡이 동기가 많다"며 "뻔하고 지루한 걸 좋아하지 않는데 남들과 다르다는 점에서 이제 왼손잡이가 매력적이고 특별하게 느껴진다"고 털어놨다.
◇세계 왼손잡이 '인권' 높이는 날
8월13일은 '세계 왼손잡이의 날'로, 왼손잡이의 인권을 되돌아보고 시민들의 인식 변화를 도모하고자 1976년 제정됐다. 왼손잡이협회는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lefthandersday'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왼손용 물품을 체험하는 행사를 진행해 '왼손잡이의 고충'을 알린다.
오른손잡이는 오른손이 익숙하고 왼손잡이는 왼손이 익숙하다. 왼손잡이라고 해서 오른손잡이와 다를 게 별반 없는데 과거 우리 사회의 편견이 왼손잡이로 향하는 시선을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많다.
신지혜씨(22)는 "어릴 적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왼손으로 글 쓰면 복 나간다고 자주 말씀하셨다"며 "오른손으로 타고난 사람이 오른손을 쓰듯 왼손이 타고난 사람도 왼손을 자주 쓰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대학생인 이규철씨(20대)는 "초등학교 사회 수업 시간에 '약자'에 대해 배우는데 왼손잡이를 사회적 약자로 소개돼 내가 사회적 약자인가 헷갈렸다"며 "왼손잡이로 살면서 생활 속 불편한 점은 있지만 왼손을 사용하는 게 익숙하다"고 했다. 이씨는 "어릴 때 오른손으로 바꾸라는 부모님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왼손잡이의 날'이 있는 것 자체가 아쉽다는 지적도 있다. 왼손잡이 차별이나 편견이 없었다면 이런 날이 애초에 없었을 거라는 의미다.
이홍규씨(25)는 "평생 왼손잡이로 살아서 크게 불편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면서도 "세계 오른손잡이의 날은 없는데 세계 왼손잡이의 날이 있다는 점이 이상하지 않냐"고 반문했다.
어린 시절에는 왼손잡이라는 이유로 편견 섞인 시선을 받았지만 오히려 요즘엔 장점으로 생각하는 이도 많다. 실제 야구 경기에선 왼손 투수와 왼손 타자가 더 각광을 받는다. '오른손잡이' 세상에서 '왼손'으로서 차별화된 강점을 가질 수 있다.
원모씨도 왼손잡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 원씨는 "어렸을 때는 왼손으로 글씨를 쓰면 재수가 없다는 말을 들으며 혼이 났다"며 "억지로 교정을 하면서 어설픈 양손잡이가 됐다"고 말했다.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라는 원씨는 "운동할 때는 왼손잡이가 더 유리하고 때에 따라서 야구나 농구를 양손으로 한다"면서 "왼손잡이가 잘못된 것도 아니고 장애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회 분위기 달라져"
회사원 공혜정씨(33)도 초등학교 시절 왼손잡이라는 이유만으로 방과 후에 따로 남아 오른손 글쓰기를 연습하는 등 차별을 당했다. 어린 시절 미국과 유럽에 자주 오갔던 공씨는 "외국에서는 왼손잡이라고 하면 오히려 좋아하거나 특별하게 여겼다"고 말했다.
공씨는 한국에서 몇 년 전 일본어와 영어를 가르쳤을 때 학생들을 보며 달라진 한국 사회 분위기를 느꼈다.
공씨는 "눈치 안 보고 왼손으로 글 쓰는 학생들이 많았다"며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왼손이라고 차별받는 일은 확실히 없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여자로 태어난 것처럼 왼손잡이로 태어났을 뿐"이라며 "왼손잡이라는 점을 마치 인적 사항처럼 완전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비쳤다.
공혜정씨 어머니 한명숙씨(65)는 "딸이 원하는 대로 왼손잡이로 살게 한 결정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면서 "왼손잡이를 일부러 오른손잡이로 교정하거나 왼손잡이 때문에 고민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전했다.
전문가는 세계 왼손잡이의 날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차별 분위기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요즘은 왼손잡이 아이들에 대한 차별은 좀 없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왼손잡이에 관한 차별은 장애인과 다문화가정에 관한 차별과 비슷하다"면서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서로 존중해 주면 차이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doo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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