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병헌, 끝없는 불안과 강박적 믿음 사이
"보여준 적 없는 얼굴" 연기력 찬사 이어져
이병헌 "관객 보기 전까지 너무 불안했다"
"연기는 결국 주관적 표현…확신 힘들어"
"내 연기에 대한 의도적인 믿음이 필요해"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배우 이병헌(53)이 도달한 새로운 경지를 보여준다. 그가 연기를 잘한다는 건 어쩌면 하나마나 한 얘기. 이병헌의 연기력을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의 연기는 요즘 말로 하자면 '디폴트 값'이다. 놀라운 건 높을 대로 높아진 이병헌 연기에 관한 평가 기준을 그가 넉넉하게 뛰어 넘는다는 점이다. 이병헌은 1991년 데뷔해 30년 간 영화·드라마 60여편에 출연했다. 이제 그의 연기에 새로운 게 없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이병헌은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로 관객 앞에 선다.
김영탁. 이병헌이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맡은 인물이다. 난데 없이 등장해 번잡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주민들에게 도움을 준 그는 얼떨결에 주민 대표가 된다. 서울에 대지진이 발생한 뒤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건물인 황궁 아파트 사람들은 생존을 위한 구심점이 필요했고, 묘한 생존력을 보여준 김영탁에게 의지한다. 리더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김영탁은 주민 신뢰를 바탕으로 점차 권력자의 카리스마를 갖춰 가고, 체제 유지를 위해 손에 피를 묻히는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전진한다. 그러나 김영탁 체제 황궁 아파트는 그의 광기와 불안 사이에서 점차 무너져내리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김영탁은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그리는 세계 그 자체인 인물. 이병헌은 위선과 위악을 수시로 오가며 관객에게 김영탁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이병헌은 자신의 연기에 관해 "불안했다"고 말했다. "이런 극단적인 감정을 보여줬을 땐 그럴 수밖에 없어요. 관객이 내 정서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요."
이병헌은 배우로서 사람들이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어떤 인물을 만나든 그 캐릭터를 이해하고 인물이 처한 상황 속으로 빠르고 깊이 들어갈 수 있다고 자신한다고도 했다. 다만 이해라는 건 결국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에 불안하다고 했다. "어떤 때는 모자르게 보여준 건 아닐까, 어떤 경우엔 과하게 보여준 게 아닐까 확신이 안 서요. 이번 영화가 그랬어요. 몇 몇 장면은 감독님의 디렉션이 조금 과한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감독님이 생각한 방향에 결국 동의했고 그렇게 연기했죠. 하지만 관객이 제 연기를 보고 그게 맞다고 하기 전까지는 확신할 수 없는 거잖아요."
이병헌은 그러면서 김영탁이 그의 정체가 탄로나면서 극이 절정으로 치닫는 대목에 관해 설명했다. 이 시퀀스에서 김영탁은 자신의 무고함과 억울함에 관해 악에 받친 말들을 쏟아낸 뒤 헛구역질을 하기에 이른다. 김영탁이 절규하는 이 장면은 아마도 김영탁이라는 사람을, 그리고 '콘크리트 유토피아'라는 영화를 요약하는 부분일 것이다. 이병헌은 "내가 하는 연기가, 감독과 스태프의 선택한 이 연기가 맞다고 믿는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믿어야죠. 제 연기가 상식적인 선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내 연기가 맞을 거라고요."
이병헌은 자기 연기를 믿을 수 있어서 믿는 게 아니라고 했다. 믿을 수밖에 없기에 믿어야 한다고 했다. 불안을 떨치지 못한다면 다음 연기를 할 수 없다. 계속 불안해하면 캐릭터를 온전히 그려낼 수 없다. "그 믿음이라는 건 의도적이고 반복적인 겁니다. 괜찮을 거라고, 맞을 거라고 여기는 거죠. 글쎄요, 제가 제 연기를 믿을 수 있게 된 어떤 순간이 따로 있었던 것 같지 않아요. 제 연기를 본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내 판단이 맞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제 연기에 관한 믿음이 조금씩 쌓였을지도 몰라요." 그는 "김영탁이 되고 싶어서 발버둥쳤다"고 말했다. 이어 "영탁에게 젖어들기 위해 4~5개월 간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9일 '콘크리트 유토피아' 공개 후 어김 없이 이병헌 연기에 관한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이병헌이 이전 작품에서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눈빛, 표정, 얼굴을 보여줬다는 것. 우스개소리로 '안구를 갈아끼웠다' '얼굴을 갈아끼웠다'는 평가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병헌은 연기를 할 때 자기 얼굴이 어떤 상태일지에 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연기를 하고 나니까 그런 모습을 하고 있더라는 얘기였다. "저도 제가 그렇게 연기한줄 몰랐어요."
"이 지점에서 내 얼굴을 어떻게 만들어야겠다, 혹은 표정을 어떻게 지어야겠다, 같은 생각은 안 합니다. 그건 순서가 안 맞는 거잖아요. 예를 들어 거울을 보면서 연기 연습을 할 수는 없죠. 껍데기를 옮긴 후에 내면을 바꾼다는 얘기인데, 그건 아니죠. 내면이 움직이면 껍데기는 어떻게든 움직이게 돼 있는 거죠. 저도 제 표정을 보고 놀랐어요.(웃음)"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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