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신동엽' 아니다…'MZ'들에 하면 안 되는 것들[이승환의 노캡]

이승환 기자 2023. 8. 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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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반생도 MZ세대라고요?…'낀 세대'의 고민

[편집자주] 신조어 No cap(노캡)은 '진심이야'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캡은 '거짓말'을 뜻하는 은어여서 노캡은 '거짓말이 아니다'로도 해석될 수 있겠지요. 칼럼 이름에 걸맞게 진심을 다해 쓰겠습니다.

1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70회 프랜차이즈 창업박람회에서 참관객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이 기사와 사진은 관계 없습니다.2023.8.10/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올해 마흔 살인 필자와 또래이거나 연차가 비슷한 중간 관리자급 기자들을 만나면 '하지 말자'고 다짐하는 것들이 있다. 대부분 'MZ세대' 저연차 기자들을 마주했을 때 지켜야 할 사항들이다.

구체적으로 △'애인 있니' 묻지 않기(사생활 묻지 않기) △성적 농담 하지 말기(당신은 성적 대화 주제를 유쾌한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연예인 신동엽이 아니다) △'라떼'(나 막내시절엔 안 그랬는데 너는 왜 그러냐) 하지 말기 △업무 시간 외 되도록 연락하지 않기(연락할 경우 '미안하다'고 양해 먼저 구하기) 등이다.

위 준수 사항들을 지키지 않는다면 요즘 '꼰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심할 경우 불편한 업무 환경을 조성해 팀 내 사기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 다행히 준수 사항들을 대체로 지켰던 것 같다. 그러나 고민이 하나 생겼다. 필자의 노력이 부족한 탓일 수 있지만 후배들과 회식이나 점심식사를 함께하면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하지 말기' 항목들을 준수하다 보면 대화의 소재가 한정된다는 의미다.

결국 초년병 기자들을 붙잡고 '공적인 얘기'에 돌입한다. 거창하게 표현해 '공적인 얘기'이지, '일'과 관련된 대화이다. 급기야 '기사는 이렇게 써야 하고 취재는 저렇게 해야 하며 취재원 관리는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는 훈수를 회식 자리에서 늘어놓는다. 후배들 표정은 점점 딱딱해지고 반응은 사뭇 진지해진다.

그러나 속으론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업무시간 외 시간인데 업무를 대화 주제로 삼으면 일의 연장 선상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2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MZ노조 '새로고침'과의 노동자협의회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기사와 사진은 관계 없습니다.2023.3.22/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업무 얘기만 할 수 없지만 사적인 얘기는 더 조심스럽다. 적당한 '선'이 명확하면 좋으련만 현실적으로 구획하기 어렵다.

이런 딜레마의 근본 원인은 1980년대 초반생인 필자가 MZ세대라는 점이다. 도대체 MZ세대 연령대가 왜 그렇게 규정됐는지 여전히 논란거리다. 어찌하든 MZ세대는 1980년대 초반생부터 2000년대 초 출생자까지 가리킨다.

10살 이상 어린 막내 기자와 같은 MZ로 묶이다 보니 남몰래 끙끙대며 그들의 상황과 가치관을 이해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행여나 '꼰대'로 취급받을까봐 '하지 말기' 사항들을 하지 않는 솔선수범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되뇌곤 한다.

◇"요즘 외계어란 말 안 써요"

주목할 것은 적게는 5살 미만, 많게는 10살 이상 차이 나는 윗세대와의 관계다. 'X세대'라 불리는 선배들과 장시간 대화하면 세대 차이만 느끼는 게 아니다.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 배워야 할 점도 있다. 그런가 하면 10살 이상 차이 나는 'MZ후배들'이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다.

지난 6월 서울 상수역 인근 회식 자리였다. 팀 최고참으로서 후배들에게 당부했다. "곧 신입 기자들이 들어오는데, 그들에게 외계어 사용을 지양하라고 해줘." 그러자 30대 초반 후배 기자가 박장대소를 터트렸고, 여기저기에서 '풋'이라는 효과음이 뒤따라 울렸다.

후배는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필자에게 친절하게 일러줬다. "요즘 누가 외계어란 말을 써요? 그런 말 쓰면 갓 입사한 후배들은 잘 못 알아들어요." 외계어는 인터넷 용어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온라인 커뮤니티가 확산하던 2000년 초중반에 주로 쓰였다.

이제 막 50대가 된 선배에게 이 일화를 들려줬다. 선배는 사람 좋은 표정을 지으며 위로해 줬다. "외계어라는 표현이 어때서? 난 충분히 알아듣는데." 그러나 위로가 잘되지는 않았다.

가장 큰 딜레마는 후배와 선배 입장 모두 이해되거나 양쪽 다 이해되지 않을 때 찾아온다. 이럴 경우 어느 쪽에 서야 할지 번민하는 실존적인 상태에 놓인다. 밤늦게까지 술이라도 마신 날이면 '나는 누구며, 여기는 어디인가'를 읊조리게 된다.

물론 다음날 아침이면 부리나케 출근한 뒤 숙취에 허덕이는 와중에도 오늘 해야 할 일을 점검해야 한다. 유명 소설가는 '모든 먹는다는 동작에는 비애가 있다'며 '밥벌이의 지겨움'을 설파했는데 딱 그런 상황 아닐까?

◇'낀 세대'가 내린 결론은?

그래서 결론이 무엇이냐고? '낀 세대' 사회구성원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업무 얘기 외 사적 대화를 나누려면 먼저 '라포르'(rapport·상호 유대감)를 형성해야 한다. 그것이 전제되기 전까지 되도록 후배들과 사적인 대화를 지양하는 편이 낫다.

상호 유대감이 생겼다면 이해와 공감의 폭이 확대돼 사적인 고민을 공유해도 문제 될 일이 별로 없을 것이다. 오히려 선배는 멘토, 후배는 멘티로 자리 잡는 모범적인 신뢰 관계가 될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에서도 의사와 환자 간 유대감이 가장 중요한 상담 방법론으로 꼽힌다.

직장인들은 가족보다 동료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긴데 신뢰관계를 형성하려는 노력은 그런 동료들을 존중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라포르는 프랑스어로 '다리를 놓는다'는 뜻이다. 나와 그 사이에 불신의 강이 흘러 차마 다리를 건너 다가오지 못하는 후배나 선배가 없는지도 살펴봐야겠다.

이승환 사회부 사건팀장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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