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안준호, 살아서 무사히 제대할 수 있을까

한겨레21 2023. 8. 13.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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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기획]폭력적 ‘군대문화’ 지배하는 사회 현실 초점 맞춘 ‘D.P.’ 시즌1에서 나아가 폭력을 유지·재생산하는 조직과 국가 조준하는 시즌2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는 탈영병을 잡는 병사 보직인 군탈체포조, 일명 ‘디피’(Deserter Pursuit)를 주요 소재로 삼았다. 넷플릭스 제공

*이 글은 ‘D.P.’ 시즌1·2 주요 장면의 정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뭐라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 <디피>(D.P.) 속 조석봉(조현철) 일병의 말이다. 조석봉은 황장수(신승호) 병장이 전역하던 날 자신에게 가혹 행위를 한 것에 사과를 요구했다가 조롱당하자 절망해 탈영을 감행한다. 그러나 차마 황장수를 죽이지는 못하고 자신을 향해 총을 쏜다. ‘조석봉 일병 사건’ 발생 4개월 뒤 군대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한호열(구교환) 병장은 충격으로 말을 못해 병원에 입원하고 안준호(정해인) 이병은 ‘일병’으로 신분 상승한 것만 빼고 변함없이 선임들의 가혹 행위에 시달리며 탈영병 잡는 일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조석봉 일병 사건’은 정신질환을 앓던 개인의 문제로 조용히 처리된다. 한국전쟁 때 쓰던 ‘수통’을 여전히 사용하는 군대답게 국방부의 시계는 고장 난 시계처럼 제자리걸음인 것이다. 그런 군대에서 개인은 폭력에 동화돼 가해자가 되거나, 견디다 못해 죽거나, 탈영해 범죄자가 된다.

가해자 되거나 죽거나 탈영하거나

조석봉 일병의 ‘절친’이자 입대 동기인 김루리(문상훈) 일병도 그중 하나다. 그는 텔레비전(TV)을 통해 조석봉 사건 보도를 접하고 충격받은 상태에서 자기 얼굴에 살충제를 뿌리며 갈구던 선임들에게 총기를 난사하고 탈영한다. 이는 ‘18기갑여단 총기 사건’으로 알려지며 세상이 발칵 뒤집히고 한호열과 안준호는 김루리를 “무사히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고 투입된다. 그러나 군 수뇌부의 생각은 달랐다. “아무 일도 안 터져야 되는 군대에서 뭐가 터졌으”니 사건을 효과적으로 진압해 “빨리 조용해”지길 원한다. 김루리를 정신적 문제가 있는 위험한 흉악범으로 둔갑시켜 사살해서라도.

다행히도 김루리의 어머니 덕분에 ‘18기갑여단 총기 사건’을 아름답게(?) 마무리한 군 수뇌부는 이번에는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재조사 권고를 받은 ‘지피(GP·비무장지대 최전방 감시 초소) 내 지뢰 폭발 사고’ 조사를 박범구(김성균) 중사와 임지섭(손석구) 대위에게 맡긴다. 드라마는 안준호와 한호열도 투입된 이 사건 재조사 과정에서 군대 내 폭력이 어떻게 은폐되고 왜곡되는지 보여준다. 신아휘(최현욱) 일병이 실수로 지뢰를 밟자 두려움에 떠는 병사를 위해 나중석(임성재) 하사가 발을 바꿔주며 지뢰를 제거하려다 지뢰가 폭발해 사망했다고 알려진 이 사건은 사실 반대다. 나중석이 신아휘에게 가혹 행위를 하다가 실수로 지뢰를 밟아 사망한 사건으로 군 수뇌부는 이런 폭력 사건을 ‘없던 일’로 만들기 위해 미화했다. 결국 신아휘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앓게 된다.

넷플릭스 제공

폭력은 개인 간 일이기도 하지만 조직의 방관과 은폐가 폭력적 상황을 영속시킨다는 면에서 구조의 문제다. 그리고 그 구조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방식으로 굴러간다. 그런 면에서 군대는 “뭐라도 해야지!”라는 조석봉의 외침보다는 “뭘 할 수 있는데?”라는 한호열의 냉소가 더 어울리는 공간이다. 시즌1이 개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군대 내부의 불의와 폭력, 나아가 폭력적인 ‘군대문화’가 지배하는 사회 현실에 초점을 맞췄다면, 시즌2는 이런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인 조직과 국가의 책임을 묻는 데 초점을 맞췄다. 왜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가? 누구의 책임인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뭐라도 해야지” 비명과 “뭘 할 수 있는데” 냉소

그래서 시즌2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에 대항해 “뭐라도 해서”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박범구와 안준호와 한호열은 탈영한 사병을 무사히 복귀시키기 위해 애쓰고, 시즌1에서 ‘빌런’에 가까웠던 임지섭은 박범구와 함께 군대가 은폐한 진실을 밝히는 데 기여한다. 또한 탈영한 김루리 체포 작전을 지휘하던 국방부 검찰단 법무실 서은(김지현) 중령은 국방부의 ‘꼬리 자르기’식 대처의 희생양이 돼 불명예 퇴진한 뒤 변호사로 복귀해 김루리의 변호인이 된다. 시즌1에서 탈영 뒤 자살한 신우석의 누나 신혜연(이설)은 군인권보호센터 간사가 돼 군대에서 폭력을 당한 군인들을 대신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선다. 특히 안준호는 우연히 얻게 된 유에스비(USB) 속 군 기밀문서에서 김루리가 쏜 총에 사망한 군인이 사실 총에 맞아 죽은 게 아니라 군 당국의 늑장 대처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이를 세상에 알리려 탈영을 감행한다. 이런 안준호를 박범구와 한호열, 임지섭과 서은, 그리고 신혜연이 도와 마침내 김루리 총기 난사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성공한다. 이런 노력으로 군사재판에서 국가 책임이 일부 인정된다.

시즌1에서 탈영 뒤 자살한 신우석의 누나 신혜연. 넷플릭스 제공

불가능에 가까웠던 국가 책임을 입증했다는 면에서 시원한 결말이긴 하지만 하급자의 항명 등 비현실적 설정이 많다는 면에서 시즌2는 ‘판타지’에 가깝다. 그래서 시즌1의 ‘리얼리즘’을 기대했던 시청자 기대에는 못 미칠 수도 있다. 리얼리즘을 포기하고라도 제작진이 전하려 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한준희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그간 군대에서 발생한 일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몇 건 있었지만 “그 어떤 경우라도 국가는 한 번도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드라마에서라도 개인들이 몸부림치고 발버둥 치며 나아가는 모습과 함께 절반의 승리라도 한 번은 보여주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을 “드라마에서라도”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는 말이다.

시즌1 ‘리얼리즘’보다 ‘판타지’에 기운 시즌2

현실에서 군대 내 사고로 국가를 상대로 한 손배소에서 일부 승소한 경우가 있긴 하다. 2009년 선임들로부터 집단 구타를 당한 뒤 자살을 시도했다가 무산소성 뇌손상 진단을 받은 A씨 쪽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다. 국가가 A씨 쪽에 18억8천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13년 뒤인 2022년에야 나왔다. 2016년에는 B씨가 GP에서 복무할 당시 자신에게 가혹 행위를 일삼은 선임 C씨와 D씨, 그리고 이를 방치한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와 C씨와 D씨는 공동으로 5300여만원을 지급”하도록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났다. 물론 법적 판결일 뿐 국가는 ‘사과’한 적이 없다. 게다가 ‘책임’도 지지 않았다. ‘18기갑여단 총기 사건’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보이는, 2014년 발생한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의 경우도 따돌림과 괴롭힘이 원인으로 지목됐지만 재판 당국은 임 병장에게 사형을 선고했다(그래서 이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도 2014년이다). ‘D.P.’에서 ‘책임’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은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길 때뿐이다.

시즌2의 사실상 최고 책임자이자 변호인 구자운과 행동대장 오민우. 넷플릭스 제공

원인이 드러나지 않은 증상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군대 내 폭력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도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폭력이라는 증상이 반복되는 원인을 드러내기 위해 리얼리즘보다 판타지를 선택한 제작진의 심정이 이해된다. 그 과정에서 제작진이 말하려 한 것은 책임과 사과 아니었을까?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폭력에 관해 누구라도 책임지길, 제대로 사과하길 모든 군대 내 폭력의 피해자를 대신해 바랐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드라마에서는 조직과 국가가 하지 않은 사과를 피해자였던 개인들이 한다. 신우석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가졌던 안준호는 신혜연에게 자신이 입수한 USB 파일을 넘기며 사과한다. 그리고 자신이 구타한 선임 박성우(고경표)에게도 사과한다. 총기를 난사한 김루리는 법정에서 만난 피해자 가족에게 사과한다. 나는 이 사과 장면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드라마는 이 사과를 군 당국과 국가가 하길 원했을 것이다.

사과하는 개인들, 책임지지 않는 조직·국가

그러나 그들은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군대 내 폭력과 죽음의 원인이 밝혀져 국가 책임이 일부 인정됐지만, 진실을 밝힌 박범구는 기밀 유출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고 안준호는 징계받는다. 반면 시즌2의 사실상 최고 책임자이자 변호인인 구자운(지진희)과 행동대장 오민우(정석용)는 무탈했다. 그렇게 드라마는 시원한 듯 시원하지 않게 끝난다.

이 절반의 승리는 도리어 시즌3을 기대하게 한다. 아직 해야 할 이야기가 쌓여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시즌2의 이야기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다. 성폭력을 견디다 못해 탈영한 성소수자 장성민(배나라)의 경우처럼 군대 내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여군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이 존재하지만 군대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최근 구명조끼도 입지 못한 채 수해 피해 지원을 나갔던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급류에 휘말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것은 누구 책임인가? 안전 대책 없이 위험한 명령을 내린 군 당국 책임 아닌가? 그런데도 사건 조사를 지휘한 해병대 수사단장이 책임자들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포함한 문건을 작성했다가 ‘항명’으로 받아들여져 보직 해임되는 등 파행을 겪고 있다. 국방부가 사건 축소·은폐를 시도했다고 여겨질 수 있는 대목이다. 드라마나 현실이나 여전히 조직과 국가는 책임지려 하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는다. 슬프게도 시즌3 제작을 위한 ‘사례’는 이렇게 넘치고도 넘친다.

넷플릭스 제공

364일. 안준호의 전역까지 남은 날이다. 이 숫자는 ‘365일’이라는 꽉 찬 시간에서 하루라도 전진했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아 희망적이지만, 드라마 속 인물들이 절반의 승리만 경험했다는 면에서 이제 겨우 하루만큼 내디뎠을 뿐인 아득한 희망이기도 하다. 이제 겨우 한 걸음, 고작 하루만큼 나아진 군대에서 안준호와 ‘안준호들’은 과연 살아서 무사히 제대할 수 있을까? 안준호와 한호열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오수경 자유기고가·<드라마의 말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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