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이 여기 온다면 어떤 강을 선택할까

김규원 기자 2023. 8. 13.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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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영주댐 건설로 풀, 나무 자랐던 내성천 회룡포 모래밭, 호우·홍수로 10여 년 만에 제 모습 되찾아
2023년 8월2일 이번 장마의 큰비와 큰물로 풀과 나무가 쓸려내려가 10여년 만에 비교적 깨끗한 모래밭이 드러난 내성천 회룡포의 모습. 박승화 선임기자
내성천 상류에 영주댐이 생긴 뒤 물 흐름이 일정해지면서 회룡포 모래밭에 풀과 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 2023년 7월 중순 홍수가 나기 전인 6월21일의 회룡포 모습. 김진수 선임기자

“야~!”

제1뿅뿅다리 주차장을 나서자 타는 햇볕 아래 5만평가량의 거대한 모래밭이 좌우로 펼쳐졌다. 2023년 8월2일 한낮, 경북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 내성천의 회룡포 백사장이었다. 모래밭에 들어서자 발을 디딜 때마다 푹푹 빠졌다. 푹신한 소파 같았다. 동행한 이철재 환경운동연합 생명의강특별위원회 부위원장과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기다렸다는 듯 물가로 달려가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10년 만에 자연의 힘으로 회복된 회룡포 백사장

“앗, 뜨거워.” 맨발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철재 부위원장이 까치발로 뛰며 말했다. 뒤따라 맨발로 백사장에 들어선 나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우리 두 사람은 얼른 바지를 걷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정수근 처장은 여전히 여유 있는 태도로 모래밭을 걸었다. 그는 슬리퍼를 준비해와서 신고 있었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달랐다.

강물 속에 들어가 덴 발바닥을 식히며 사방을 돌아보니 온통 모래밭과 강물, 푸른 산, 파란 하늘, 흰 구름뿐이었다. 섭씨 30도를 훨씬 넘는 날이어서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광막하다’는 표현이 절로 나오는 풍경이었다. 강가엔 모래 외에 자갈과 작은 돌이 쌓인 곳도 있었다. 이 부위원장은 “영주댐 사업 전에 왔을 때와 비교하면 모래가 많이 굵어지고 거칠어졌다”고 말했다.

신곡보에 막혀 흐르지 않는 서울 한강만 보다가 시원하게 흐르는 내성천을 보니 가슴이 뻥 뚫렸다. 흐르는 물 가운데 서 있으니 내가 뒤로 밀리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어린 시절 가까운 시냇물에서 여울 낚시를 할 때 느끼던 그 감각이었다.

2023년 8월2일 회룡포의 모래밭과 얕은 모래여울은 모래가 많고 강바닥이 느린 한국 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김규원 선임기자

발바닥을 좀 식히고 나오니 모래밭의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물가 바로 옆에 어린 독사가 몸을 좌우로 잔뜩 구부린 채말라죽어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모래밭에 고라니와 수달 , 새들의 발자국이 어지러웠다 . 저 멀리 보이는 모래밭엔 마치 아스팔트에서처럼 아지랑이도 피어나고 있었다 .

하류인 동쪽으로 걸어가니 높이가 2~3m에 이르는 커다란 모래언덕이 나타났다. 한쪽으로는 7월 중순 홍수에 쓸려 내려가지 않은 달뿌리풀이 하류 쪽으로 쓰러진 채 버티고 있었다. 강 건너엔 뿌리가 뽑혔지만 떠내려가지 않은 버드나무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그래도 회룡포 전체로는 흰 모래밭 천지였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천 백사장으로 알려진 내성천 회룡포 모래밭이 10여년 만에 제 모습에 가깝게 돌아왔다. 회룡포는 국가 명승이고, 낙동강가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물돌이 마을이다. 그러나 2009~2016년 건설된 영주댐으로 물흐름이 일정해지면서 모래밭이 육지화하고 풀과 나무가 자라 예전의 아름다움을 잃었다. 영주댐은 영주시 평은면 내성천에 1조1천억원을 들여 지어졌다. 낙동강 수질 개선이 주요 목적이지만, 해마다 녹조가 들끓어 골칫덩이가 됐다.

한동안 사라졌던 아름다운 백사장을 되살린 것은 7월 중순 경북 북부의 호우와 홍수였다. 2023년 7월13~15일 경북 북부에는 누적 강수량 230~398.5㎜의 호우가 쏟아졌고, 홍수와 산사태가 이어지면서 모두 24명이 숨지고 3명이 실종됐다. 이때 낙동강 상류의 여러 댐이 대량 방류를 시작했는데, 내성천 상류 영주댐도 7월13일부터 초당 최대 700t의 물을 방류했다. 8월8일까지 모두 1억8천만t의 물을 하류로 쏟아냈다. 이 엄청난 홍수와 방류가 회룡포 백사장을 되살려낸 것이다.

2023년 8월2일 회룡포 백사장엔 7월 장마와 홍수로 상류에서 쏟아져내려온 자갈과 돌이 쌓인 곳도 있었다. 박승화 선임기자

홍수라는 자연이 만들어놓은 설치미술

정수근 처장은 “원래 내성천은 비가 오면 물이 차오르고 상류에서 모래가 쏟아진다. 또 비가 오지 않으면 물이 빠지면서 홍수 때 쌓인 모래밭이 드러난다. 물이 들고 나면서 자연스레 백사장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영주댐이 들어서면서 늘 일정하게 물이 흘렀고, 이로 인해 백사장이 육지처럼 굳으면서 풀과 나무가 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제1뿅뿅다리를 건너 회룡포 마을의 제방 위 정자에 앉았다. 불더위 속에서도 정자 아래 그늘은 강바람이 불어서 시원했다. 거대한 백사장을 바라보던 이철재 부위원장은 “영주댐으로 사라졌던 회룡포 백사장을 자연의 힘이 되돌려놓은 것이 정말 경이적이다. 이번엔 일시적이지만, 영주댐을 상시 개방하거나 철거하면 회룡포의 아름다운 백사장이 돌아오는 건 시간문제일 것 같다”고 말했다.

다시 제1뿅뿅다리를 건너 주차장 쪽 뿅뿅다리 쉼터 가게로 갔다. 홍수로 가게가 1m 넘게 잠겼고, 파는 상품도 물과 캔커피뿐이었다. 백사장에 관해 묻자 주인 김호남(58)씨는 “원래는 정말 좋은 백사장이었는데, 영주댐 짓고는 아주 버렸다. 자갈과 나무 천지로 바뀌었다. 관광객들도 와서 많이 아쉬워한다. 이번에 홍수 피해도 컸지만, 백사장이 돌아온 걸 보니까 기분은 좋다”고 말했다.

2023년 8월2일 회룡포와 함께 물돌이 마을로 유명한 내성천 무섬마을 앞의 비교적 고운 모래밭. 박승화 선임기자

낙동강 유역에서 회룡포와 하회마을 다음으로 유명한 물돌이 마을은 ‘무섬마을’이다. 회룡포에서 42㎞ 상류로 가자 무섬마을 어귀의 수도교가 나왔다. 수도교 주변은 이날 돌아본 내성천 백사장 가운데 모래가 가장 곱고 풀과 나무가 거의 없었다. 수도교 다리기둥마다 상류에서 쓸려 내려온 나무들이 걸려 있었다. 홍수라는 자연이 만들어놓은 설치미술 작품이었다.

여기서 5㎞ 상류에 있는 영주댐을 찾아갔다. 호우와 홍수가 있은 지 2주밖에 안 됐는데, 갇힌 강물에 푸른 녹조기가 가득했다. 영주댐 건설의 주요 목적인 ‘낙동강 수질 개선’이란 말이 무색해지는 광경이었다. 영주댐 하류의 무섬마을이나 회룡포에선 녹조가 없었는데, 오히려 상류의 영주댐에 녹조가 가득했다. 흐르는 물과 고인 물의 차이일 것이다.

이철재 부위원장은 “영주댐 녹조 물을 수질 개선용으로는 쓰는 것은 불가능하니 차라리 홍수조절댐으로 바꿔쓰는 게 어떤가 싶다. 평소에 댐을 비워뒀다가 홍수 때만 잠시 물을 가두는 것이다. 내성천은 모래가 풍부해서 수질 정화 기능이 강한데, 굳이 댐에 물을 가둬 녹조를 만들 이유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23년 8월2일 내성천 영주댐의 상류는 녹조 빛깔이고, 하류는 흙탕물이다. 박승화 선임기자

강물 쪽으로 200m나 펼쳐진 모래강 감천

다음날인 8월3일 낮엔 경북 구미시 선산읍 원리 구미보 부근의 감천-낙동강 두물머리(합류부)로 갔다. 정수근 처장이 모래강의 진면목을 보여주겠다고 소개한 곳이었다. 선산파크골프장에 차를 대고 감천 합류부 백사장으로 갔다. 널따란 백사장에 발을 디디니 어제 찾아간 내성천의 모래밭과 다른 감각이 전해졌다. 훨씬 더 곱고 부드러운 모래밭이었다. 걸을 때마다 10㎝ 이상 발이 빠졌다.

강가로 가니 맑고 얕고 물살이 빠른 모래강 여울이 백사장만큼이나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얕은 모래강물엔 송사리 같은 작은 물고기들이 재빠르게 모였다 흩어졌다. 강물 쪽으로 들어가자 모래밭에서처럼 발이 모래 속으로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발가락 사이로 모래가 파고드는 느낌이 좋았다. 어느새 정수근 처장은 얕은 모래강물 쪽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가 우리에게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이철재 부위원장과 함께 정 처장 쪽으로 걸어갔다. 부분부분 빠른 물살도 있었지만, 감천 모래강물은 무릎 이상으로 깊어지지 않았다. 한 200m 정도 걸어 들어가자 그제야 깊은 강물이 나타났다. 1㎞ 상류의 구미보에서 흘러온 시푸른 낙동강 물줄기가 저만치 앞에서 흐르고 있었다. 심연처럼 두려움을 일으키는 물빛이었다. 감천의 희고 얕은 모래강물과 낙동강의 깊고 푸른 강물이 극단적 대비를 이뤘다. 정 처장은 “낙동강 쪽도 원래는 저렇게 깊지 않았는데, 4대강 사업 때 깊이 6m 준설을 하면서 저렇게 됐다”고 말했다.

2023년 8월3일 경북 구미시 감천-낙동강 합류부의 모래밭에 동물 발자국이 가득하다. 박승화 선임기자

감천-낙동강 합류부 한가운데서 얕은 모래강과 깊은 준설강을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갑자기 멀리 구미보 쪽에서 가느다란 방송이 들려왔다. “잠시 후에 구미보 방류를 시작하니 강가에 있는 사람들은 주의하라”는 내용이었다. 당황스러운 방송이었다. 모래밭에서 강물 쪽으로 200m나 들어와 있는데 구미보 방류라니. 급히 물살을 헤치고 허겁지겁 모래밭 쪽으로 이동하는데, 이 부위원장이 농담을 던졌다. “아마 정 처장이 온 것을 알고 방류하는 모양이다.” 낙동강 지킴이로서 정 처장의 활동이 오래됐고 두드러졌으니 얼마든지 그럴듯한 추론이었다.

이 아름다운 감천과 내성천 등 4대강의 주요 지천에 대해 정부는 준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8월3일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전문가 간담회에서 “내성천과 형산강을 가보니 준설 등 하천 환경 정비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을 느꼈다. 준설 등 하천 정비를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감천 백사장과 돌아온 회룡포 내성천 백사장을 볼 날도 많지 않은 것이다.

이철재 부위원장은 “말이 정비 사업이지 사실상 준설을 해서 모래와 돌 등 양질의 건설 골재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4대강을 망가뜨린 데서 그치지 않고 지류, 지천까지 망가뜨리려 한다”고 말했다. 문득 여기 감천-낙동강 합류부 모래밭에 이명박 전 대통령을 초대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가 여기 와서 직접 눈으로 본다면 아름다운 감천 모래강과 무시무시하게 준설된 낙동강 사이에서 여전히 준설된 강을 선택할까?

감천-낙동강 합류부에선 감천의 희고 얕은 모래강(왼쪽)과 낙동강의 푸르고 깊은 준설된 강(오른쪽)이 만난다. 멀리 구미보가 보인다. 김규원 선임기자.

모래알 연대 “물길은 흘러야 한다”

최근 영주댐 건설로 아름다움을 잃은 내성천을 되살리자는 운동이 시작됐다. 경북 예천군이 고향인 안도현 시인의 제안으로 시작된 `내성천 자연성 회복을 위한 모래알 연대'다. 여기엔 정수근 처장과 영주댐 건설 전후 내성천 사진으로 유명한 박용훈 사진가 등이 참여했다. 이들의 제안서 한 대목은 이렇다.

“낙동강에 맑은 물을 보낸다는 핑계로 내성천의 허리를 끊어내 영주댐을 세웠습니다. 강물을 가두자마자 댐 저수지는 간독성 녹조를 배양하는 커다란 공장이 되었습니다. (…) 잃어버린 아름다움은 얼마가 될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영주댐은 내성천의 경관과 생태를 파괴하고, 낙동강 수질을 더욱 떨어뜨리고 있으며, 모래의 이동을 막아 낙동강의 복원을 요원하게 합니다. 물은 물길을 찾아 흘러야 합니다.”

2023년 8월3일 감천-낙동강 합류부엔 모래밭에서 200m 떨어진 곳까지 얕은 모래여울이 형성돼 있었다. 모래여울을 걷고 있는 <한겨레21> 김규원 선임기자와 정수근 대구환경연합 사무처장, 이철재 환경운동연합 부위원장(왼쪽부터). 박승화 선임기자

예천·영주·구미=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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