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대회인데 ‘3심제’+양상문에 막말까지…해도 해도 너무한 WBSC 조직위 [야구월드컵]

황혜정 2023. 8. 13.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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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연맹 주관 대회는 ‘4심제’인데
세계야구소프트볼협회 주관 대회는 ‘3심제’
호주전 주심, 양상문 감독 무시 발언도
서툴고 늦은 행정처리로 선수단 컨디션 엉망
4회초 시도한 2루 도루가 아웃 판정을 받자 박소연이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선더베이(캐나다) | 황혜정기자. et16@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 선더베이(캐나다)=황혜정기자] “세계 대회인데 동네 대회보다 못하네요?”

화가 났지만 눌러 참았다. ‘빨리빨리’가 익숙한 대한민국이 아니고 ‘캐나다’이니 그러려니 싶었다. 그래도 이건 너무했다. ‘2024 여자야구 월드컵’ 예선에 출전한 대한민국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이 대회 조직위원회인 ‘세계야구소프트볼협회(WBSC)’의 서툰 행정에 피해를 보고 있다.

경기 심판진부터 문제가 많았다. 지난 11일(한국시간) 호주전에서 1-5로 지고 있던 4회초, 선두타자 박소연이 깨끗한 좌전 안타로 출루했다. 대표팀이 점수를 따라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주은정의 타석 때 박소연이 2루로 도루를 시도했다. 몸을 날리는 슬라이딩으로 2루에 세이프될 것 같았던 박소연. 그런데 판정은 아웃.

박소연이 4회초 2루로 도루하는 순간. 3루에 있던 심판이 판정을 위해 2루로 황급히 달려오고 있다. 선더베이(캐나다) | 황혜정기자. et16@sportsseoul.com


일순간 모두가 당황했다. 박소연이 강하게 ‘세이프’임을 주장했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그는 허탈한 나머지 한동안 2루 베이스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세이프를 아웃으로 판정하는 오심은 야구 경기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다. KBO리그는 물론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도 종종 나온다. 그런데 이번엔 경우가 조금 달랐다. 바로 ‘3심제’였기 때문이다.

박소연이 헤드 퍼스트로 슬라이딩한 순간, 2루에는 심판이 없었다. 도루하는 박소연을 보고 3루에 있던 심판이 황급히 2루로 달려왔을 뿐이다. 이날 경기 3루심이었던 엘리스 랄레멘트(캐나다) 심판이 2루로 달려오느라 해당 장면에 대한 판정을 얼마나 정확히 했을지 의문만 남았을 뿐이다.

미국-캐나다전에 나선 3명의 심판진. WBSC는 여자 야구 월드컵 모든 경기에 심판 3명만 배치했다. 사진출처 | WBSC.


캐나다 선더베이에서 열리고 있는 ‘2024 여자야구 월드컵’ 예선은 ‘3심제’로 경기가 치러지고 있다. 비디오 판독은 당연하게도 없다.

그런데 여자야구 국제대회가 모두 이런 것은 아니다. 지난 5월 말 홍콩에서 열린 ‘2023 여자야구 아시안컵(BFA)’에서는 ‘4심제’였다. 주심·1루심·2루심·3루심이 함께 투입돼 경기를 치렀다. ‘여자야구 월드컵’보다 한 단계 낮은 지역 예선에서도 ‘4심제’로 경기를 치렀는데, 정작 세계대회에선 ‘3심제’다.

선수단을 이끌고 캐나다에 온 한국여자야구연맹(WBAK) 황정희 회장은 “이렇게 어이없는 판정 하나하나에 그간 땀 흘려 열심히 연습한 선수들의 노력이 허사가 되고 있다”며 성토했다.

실제로 홍콩과 경기에서 주심의 일관성 없는 ‘스트라이크 콜’에 루킹 삼진으로 돌아선 몇몇 대표팀 선수들은 홍콩에 8-9 한 점 차로 역전패하자 경기 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황 회장은 “우리 선수들이 실력 차는 나지만, 외국 선수들과 한번 열심히 맞붙어보고, 또 좋은 선진 야구 문화를 보고 배워가려고 20시간 걸려서 힘들게 여기까지 온 거다. 그런데 이런 판정과 이런 조직위원회의 서툰 행정 때문에 최선을 다해 준비한 것들이 무의미하게 끝나게 될까 봐 그게 아쉽고 화가 난다”라고 말했다.

대표팀 양상문 감독이 11일(한국시간) 열린 호주전에서 주심에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선더베이(캐나다) | 황혜정기자. et16@sportsseoul.com


“너 야구 규칙에 대해서 알기나 해?”

호주전에서 대표팀 양상문 감독이 통역을 대동하고 항의하러 나오자 이날 주심을 맡은 알레시아 치코니(이탈리아) 심판이 양 감독의 통역을 맡은 남학생에 했던 말이다.

통역을 통해 항의하자 “규칙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항의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다분히 대한민국 대표팀과 양상문 감독을 무시하는 언사였다. 그러자 양 감독이 격분하며 “내가 야구를 안다”며 심판과 설전을 벌였다.

이날 치코니 심판은 마운드에 구원등판한 투수 이지숙이 로진 가루를 털어낼 때 침을 묻힌다고 트집 잡으며 페널티 규정에도 없는 주자 이동 조처를 내렸다. 양 감독이 더그아웃에서 뛰쳐나와 항의하자 해당 발언을 한 것이다. 그러나 치코니 심판은 결국 자신의 오판을 인정하고 볼카운트 1개를 부여하는 판정으로 정정했다.

WBSC 대회 조직위가 한국여자야구연맹(WBAK)에 보낸 우천 취소 메일. 보내주겠다고 예고한 시간보다 31분, 54분 늦게 공지했다. 사진제공 | WBAK 황정희 회장.


WBSC의 만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12일(한국시간) 대표팀은 캐나다와 예선 네 번째 경기를 치를 예정이었다. 이날 아침부터 비가 내려 앞선 두 경기가 모두 우천 순연됐다.

대회 조직위는 한국여자야구연맹 관계자들에 이메일을 보내 “오후 2시에 경기장 상황을 알려줄 테니 기다려라”라고 했다. 그러나 2시가 돼도 연락은 오지 않았고, 31분이 지나서야 “앞선 두 경기가 모두 취소됐으나, 캐나다-한국전은 조금 더 기다려봐야 한다. 오후 5시에 다시 한번 공지하겠다”라고 메일이 왔다.

이에 한국여자야구연맹 관계자가 조직위에 항의를 했고 그제서야 조직위는 이날 5시에 연맹 관계자에 전화로 “우천으로 대한민국-캐나다의 경기가 순연됐다. 경기는 14일에 열릴 예정이나 시간은 미정”이라고 했다. 공식 이메일은 54분 뒤에 왔다.

결국 선수단은 이날 제대로 쉬지도, 운동도 하지 못한 상태로 어정쩡하게 방에만 있다가 하루를 다 보내게 됐다.

방수포로 뒤덮인 포트 아서 스타디움. 사진출처 | WBSC.


이밖에도 조직위는 호주전 당시 구장 사정으로 경기를 지연시켰는데, 그 과정이 국제대회를 주관하는 협회답지 않았다.

호주전이 열릴 예정이던 포트 아서 스타디움의 펜스가 경기 전날 강한 바람 때문에 무너졌는데, 미리 구장 상황을 확인하지 않고 있다가 대표팀이 훈련 뒤 경기장으로 향하자 그제서야 조직위는 대표팀에 “펜스를 수리 해야하니 숙소로 들어가 있어라”라고 했다.

그런데 대표팀을 숙소로 데려갈 버스가 20분 넘게 도착하지 않았다. 결국 대표팀은 길바닥에서 20분을 허비했고, 대표팀 버스가 아닌 호주 대표팀의 짐이 가득 실린 호주 대표팀 전용 버스를 타고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10분 뒤에 다시 나와 구장으로 향해 경기에 임했다.

황정희 회장은 “대회 조직위의 서툰 행정으로 대표팀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우리 실력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여러 이유로 경기에서 제 기량을 내지 못하고 있다. 전날에 2.1이닝 투구한 글러브도 쓸데없는 트집으로 다른 글러브를 쓰라고 하고 여러모로 주최 측의 경기 진행이 아쉽다”고 했다.

황 회장은 “이런 일들이 쌓여 선수들이 상처받고, 세계대회에 또다시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사라질까 봐 그게 걱정이다”라며 가장 피해를 보고 있는 선수들의 마음을 걱정했다.

한국여자야구연맹은 12일(한국시간) 열리는 멕시코전을 앞두고 대회 조직위에 정식으로 항의 서한을 보내는 것은 물론, ‘여자야구 월드컵’ 조직위원장을 찾아가 면담을 요청할 예정이다. et1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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